[74호*] 지금은 패션의 시대

2023. 9. 22.

[74호*] 지금은 패션의 시대

지난 73호 Footnoters' Pick에 참여해주신 충북도서관 애용자님께 『박물관 소풍: 아무 때나 가볍게』를 보내드렸어요!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 『패션의 시대: 단절의 구간』을 가져가실 분, 나만의 Footnoters' Pick 쓰기*에 참여하세요.

추석 연휴는 길고, 읽을 책은 많으니까요.🌕

바야흐로 패션의 시대

🦻 팔랑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베트멍, 파이렉스 비전, 구찌 고스트...

패션은 먼 얘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는 저에게 이 원고는, 거의 처음 배우는 지정학 교과서처럼 놀랍고 흥미롭기 이를 데가 없었습니다. 교정을 본 시간보다 저자에게 질문하고 답을 듣는 시간이 더 길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주식과 부동산 분야에만 까막눈인 줄 알았는데, 또 있더군요, 보이지 않는 세계가. 😰) 저는 명품은 기능과 관련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합목적성에 의거 최적의 효율을 발현하는 도구, 제품만이 명품이라는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여 패션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하이 패션의 세계에는 '심리'라는 예측 불가 항목이 지나치게 큰 범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여겼어요. 물론 '옷 생활'에는 나름 관심이 지대했습니다. 옷을 잘 입고 싶었단 말씀이죠. 그럼에도 나 같은 사람의 '옷 생활'과 '패션'은 무지 동떨어져 있어 저 건너를 거들떠볼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눈을 감았지요. 그런데 박세진 선생이,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알면 재미있고, 재미가 있으면 보이고, 보이면 파악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파악하고 나면 가치 판단을 할 수 있고, 가치 판단을 하다보면 자신만의 세계를 꾸릴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파이렉스 23' 셔츠를 본 적 있으세요? 밈으로 떠돌던 "파이렉스처럼 대충 살자." 할 때의 그 파이렉스가 떠오르시죠? 그 파이렉스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유명한 브랜드는 사실 '가짜'입니다. 정확한 브랜드 이름은 '파이렉스 비전'이고, 버질 아블로가 론칭한 브랜드입니다. 팔리지 않고 재고 창고에 쌓인 셔츠를 싼 값에 사들여 '파이렉스'라는 로고를 프린트하고 몇 십 배의 가격으로 팔았고, 전 세계의 유명인들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호응했습니다. 그가 설립한 '오프-화이트'라는 브랜드는 이케아부터 리모와까지 인연이 닿는 여러 브랜드와 협업을 진행했는데, 나이키와 함께한 조던 스니커즈 시리즈는 전설처럼 호가가 치솟은 시리즈라고 합니다. 가나 이민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이자 건축 전공자 버질 아블로가 2018년 루이 비통 남성복 예술 감독으로 발탁이 된 후, 하이 패션의 세계는 훨씬 더 크게 요동치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전조도 있었어요. 2015년 알렉산드르 미켈레가 구찌의 디렉터로 발탁된 사건입니다.
박세진 선생은, 이 사건을 '단절과 경계'의 분기점으로 분석합니다. 이 '단절'이란, 기존의 하이 패션 세계와 완벽히 달라졌다, 나뉜다는 뜻입니다. 하이 패션은 그간 대중적인 것과 '다른 점'을 내세워 시장을 창출해왔습니다. 더 비싸고, 더 고급이고, 더 멋져 보이는 지점들. 그런데 미켈레가 등장하더니 구찌는 '구찌 고스트'를 만듭니다. 'GUCCI'와 'FAKE'를 나란히 프린트하고, 'FAKE'를 쓴 가방을 '진짜'라고 하며 매장에 전시합니다. 구찌를 복제한 뎀나 바잘리아와 공식적으로 협업을 제안하고, 원본-복제-복각을 블랙코미디처럼 연출합니다.

게다가 sns의 폭발적 확장은 스트리트 패션이 하이 패션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매장이 일시에 문을 닫은 호재도 큰 역을 해냅니다. 2018, 2019년에 들어서자 하이 패션 브랜드는 sns의 정치적인 물결에 앞장섭니다. 인종 차별 이슈에 반응하고, 2019 파리 협약을 통해 '모델 가이드'를 선서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마른 몸, 백인 중심 패션쇼 등을 멈추겠다는 선언과 함께, 유명 디자이너들도 행동에 나서기 시작합니다. 그라치아 키우리(1946년 디올 설립 이래 최초의 여성 디렉터)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We Should All Be Feminists)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컬렉션을 선보이고 이 문구를 티셔츠에 프린트했어요. 버버리의 디렉터였던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패션쇼에서 성소수자의 상징인 6색 무지개를 버버리를 대표하는 트렌치코트, 머플러, 가방 등의 제품에 담아 LGBTQ+에 대한 존중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표현했습니다. 싱가폴에서 태어나 네팔 카트만두에서 자란 디자이너 프라발 구룽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이민자에 대한 압력이 커지자 “나는 이민자다”(I am an Immigrant)라고 적힌 티셔츠를 패션쇼에서 선보이며, 성 다양성, 페미니즘과 관련된 구호를 담은 옷들을 만들었습니다. 구찌가 총기 규제 강화에 50만 달러를 기부하고 지지 성명을 내는가 하면, 나이키는 이민자 축구단을 위해 후원합니다. 이런 일들은, 이전의 하이 패션이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들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단절'이 아니라 '구간'입니다.
저자는, 이 특출난 변화가 '끝이 났다'고 판단합니다. 어째서일까요? 그렇다면 지난 수년간의 흥미로운 일들은 그냥 사라져버리는 걸까요? 더 이상 발렌시아가-아디다스의 콜라보도, 질 샌더-유니클로의 콜라보도,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버버리의 시위도, 동물의 윤리적 사용을 촉구하며 모피 반대 운동을 펼치는 샤넬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걸까요?
블랙핑크, 에스파, 뉴진스도 모두 하이 패션의 엠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 K-팝스타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활약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까요?

『패션의 시대: 단절의 구간』은 이 급변의 기로에서, 독자가 무엇을 기준으로 패션을 판단하고, 옷 생활을 이어갈지, 그 관전포인트를 짚어줍니다. 패션의 문외한'이었던' 저는 네오가 0과 1의 배열을 이미지로 읽어내듯, 이제 홍대의 엄청난 인파 속에서 젊은이들의 옷차림의 연원이 눈에 쏙쏙 들어옵니다. 낯설지만 요상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네요. 거참, 신기합니다. 바야흐로, 패션의 시대입니다.

『아메토라』(워크룸)를 국내에 기획, 번역해 소개한 패션 칼럼니스트의 진단과 예언으로, 앞으로의 옷을 비롯한 다양한 소비생활에 유용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1, 2부가 트렌드 분석이었다면, 3부는 실용적인 '가이드'입니다. 저는 3부를 통해 앞으로 옷을 산다면 어떤 브랜드를 고집할지 '픽'할 수 있었어요. 😙)

무추름하다 / 무추룸하다

마음속 못마땅하게 여기는 빛이 얼굴에 드러나다.

“졸지에 옷 하나 유행따라 차려입지 못하는, 보살핌 없이 자란 처녀 티를 내며 무추름하게 서 있는 도란이 대신 내가 몇 가지 옷을 골라봤다.”

— 정미경, 「내 아들의 연인」, 『내 아들의 연인』, 문학동네, 2008.

🟡 표준국어대사전 미등재 단어(방언)여서, 2020년 조선일보에서 진행한 ‘말모이’를 참고해 뜻을 적었습니다.

💢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릅니다 💢

무르춤하다

뜻밖의 사실에 놀라 뒤로 물러서려는 듯이 하여 행동을 갑자기 멈추다.

🟡 표준국어대사전 등재 단어입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대한 답변.

출판사에서 공모전이 열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요즘, 만약 마티에서 공모전을 연다면 그 주제는 무엇이 될 것 같은가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을 맞아 마티 편집부 일동은 얼음이 되었습니다. 눈동자 굴리는 소리가 들리시나요?

땡! 이후에도 편집부는 웅성거릴 뿐이었습니다. 뭐 하고 싶은 주제 있어? 공모전에 상금이 있지? 근데 공모전을 그렇게 많이 한대? 어우, 우리는 어디 외따로 사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소식을 몰라. 각주*에 질문이라도 안 들어왔으면 공모전들을 하는지 영영 몰랐겠지. 웅성웅성. 수군수군. 이렇게 2주째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티가 출판계와 독자에게 기여할 주제가 생각나면 각주*를 통해 알리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책방 밀물 x 무슨서점 1주년 기념

❝ 기다리는 일, 기억하는 일 ❞

서울 연남동 끝자락에는 서점이 모여 있어요. 책방서로와 서점 리스본이 6, 7년째 끝남동을 지키고 있고, 이제 막 1주년을 맞은 책방밀물과 무슨서점은 "기다리는 일, 기억하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팝업 전시와 행사를 준비 중!

서점이 사랑한 출판사 마티와 다람, 안온북스, 녹색광선, 시간의흐름, 에이치비프레스 & 어떤책도 함께합니다. 같은 골목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커피집, 빵집, 꽃집 등도 느슨하게 연결되어 끝남동 골목 가을 야유회 느낌도 날 것 같아요. 10월 7일(토요일), 8일(일요일)에 책방으로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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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서유미, 이서주 작가 오프라인 북토크 신청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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