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쓰기』 북토크 후유증
🌱 죽순
“소설의 핵심은 글에서 시간이 흐른다는 거예요.”
지난주에 있었던 『계속 쓰기』 북토크에서 한유주 소설가가 한 말입니다. 당연한 소리거늘, 일주일이 지나도록 저는 이 한마디가 새삼 신선해서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지금까지 읽은 소설들에서 시간을 감지해본 적이 있었나? 골똘히 생각하면서요.
“소설 한 편이 1시간을 담을 수도, 100년을 담을 수도 있죠.” 다시 한유주 소설가의 말.
그럼 300쪽짜리 이야기에 하루만 담는다면, (그럴 리 없지만) 그중 290쪽의 텍스트가 1시간만을 다루고 오직 10쪽에 23시간을 압축해 넣을 수도 있을까? 그렇게 무자비하게 일그러뜨린 설정도 가능할까? 정교하게 설계한 시간의 양과 속도는 소설을 즐기는 데에 얼마나 중할까? 해결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질문을 머릿속에 채우는 동안 북토크는 끝났습니다.
한동안 손을 놓았던 소설을 집어 들었습니다. 어떤 소설이든 크게 상관없었고, 그냥 소설의 시간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읽었고, 읽고 있고, 읽을 소설들을 여러분과 나눠요.
『9시에서 9시 사이』,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열린책들, 2019)
서점극장 라블레에서 발견. 서점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읽기 시작해 내리 읽고 다음 날 퀭하게 출근했더랬죠. ‘왜 저래?’라는 불쾌한 의심을 품게 하는 주인공에겐 9시에서 9시 사이를 요란스럽게(그러나 은밀하게) 보내야 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6월들」, 『사물들(랜드마크)』, 박서련, 한유주, 한정현(아침달, 2022)
한유주 소설가가 쓴 단편 「6월들」은 장소, 이동, 여행자라는 신분, 어디에나 있을 법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풍경…을 그리고 있어요. 시간에 집착하게 된 저는 6월이 어떻게 복수형으로 뭉쳐 있는지, 아니면 펼쳐져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읽으면서 시간에 집착하지 말아야겠다고 반성했습니다.
『토요일』, 이언 매큐언, 이민아 옮김(문학동네, 2007)
2003년 2월 15일, 토요일. 유능한 신경외과 의사 헨리 퍼론의 평범한 토요일. 하루가 무려 영어로 72,250단어의 이야기가 되려면, 얼마나 촘촘해야 할까요? 소설가가 헨리 퍼론이라는 인물을 설명(묘사)하는 데에 할애한 초반부가 인상적이에요. 읽는 중.
『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최세희 옮김(문학동네, 2012)
“시간은 깡패야, 그 깡패가 널 해코지하는데 가만있을 거야?”라는 카피에 동해서 구입. 한강 작가의 시 「그때」의 한 구절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가 떠오르면서 아직 안 읽었는데 괜히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