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싸늘해진 요즘, 붕(잉)어빵을 들고 퇴근하시나요? 부들부들하고 따숩고 편한 옷으로 환복하고 식기 전에 붕(잉)어빵을 베어 물고, 이 다음은 뭔가요?
이 다음이 아리송한 구독자 분들을 위해 가을과 어울리는 저음의 음악을 준비했어요. 첫 꼭지를 장식한 『식민지 건축』 표지에 괜히 깜짝 놀라셨다면, 🔈모베의 추천곡으로 마음을 달래보시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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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건축: 조선, 대만, 만주에 세워진 건축물이 말해주는 것
🔈 모베
한국 현대문학사가 다루는 범위를 정하는 걸 뭘까요? 아마 ‘한글’이 아닐까요. 한국인이 한글로 쓴 작품이 일차적인 대상이 될 겁니다. 한국인이 외국어로 쓴 문학과 외국인이 한글로 쓴 문학 중 먼저 고려 대상이 되는 건 아마 후자이지 싶습니다. 맨부커상 등도 국적이나 혈통보다 문학의 언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추세니까요. 건축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한국 현대건축사를 쓴다면 한국인이 외국에 지은 건축물보다 외국인이 한국에 지은 건축물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언어 대신에 영토가 제한 조건이 되는 겁니다. 이화여대 ECC,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아모레퍼시픽사옥, (한창 공사중인) 국립건축도시박물관 등 외국건축가들의 작업을 빼놓고는 최근 한국 건축을 이야기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선을 과거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일제 강점기로 가면 사태가 꽤 복잡합니다. 일본인들이 지은 관사와 사택 같은 건물들은 한국의 주거가 근대화되는 과정의 한 단계로 다루어지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같은 건물을 한국 현대건축사에서 한 장을 할애할 수 있을까요? 해야 하겠지만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과제입니다.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식민 지배의 모든 것이 축약되어 있는 상징물이니, 건축의 문제를 가볍게 뛰어넘기 때문입니다. 이 부담감은 시야를 넓힘으로써 조금 덜어낼 수 있습니다. 조선과 함께 식민지였던 대만, 그리고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워 통치한 만주에 세워진 다른 건축물과 함께 조선총독부를 파악하는 식으로요. 한일관계에서 20세기 초 동아시아로 옮겨가면 운신의 폭, 이해의 여유가 생깁니다. 식민지 시기 정치나 경제, 문화 정책에 대한 책은 꽤 풍부하고, 만주국에 관한 책도 제법 쌓여갑니다만, 식민 지배의 네트워크라는 포괄적인 문맥에서 일본이 지은 건축물을 바라보는 책은 찾기 힘들었습니다.
한창 마감중인 『식민지 건축: 조선, 대만, 만주에 세워진 건축물이 말해주는 것』은 바로 이 문제를 파헤칩니다. 저자 니시자와 야스히코는 식민지 시기 건축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2008년 『일본 식민지 건축론』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출간해 이듬해 일본건축학회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식민지 건축: 조선, 대만, 만주에 세워진 건축물이 말해주는 것』은 『일본 식민지 건축론』의 요약 정리하고 일반인들을 위해 새롭게 편집한 책입니다. 저자는 일본제국주의 시기에 누가 왜 언제 어떤 방식과 양식으로, 어떤 기술과 재료로 식민지 각지에 건물을 지었는지, 그리고 여기에 동원된 지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세세히 추적합니다. 당시 각국에서 벽돌을 몇 장 생산했는지, 관련 인물들이 어떤 인맥과 경로로 각국을 돌아다녔는지 등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정보가 한가득입니다. 건축, 역사, 식민지시기, 만주국, 만철 등에 관심이 있는 모든 분들이 흥미롭게 읽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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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저음
🔈 모베
최근 여름 다음에 바로 겨울이 오는 듯했는데, 올해는 유달리 가을이 긴 느낌입니다. 해가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아무래도 바이올린보다는 첼로가 트럼펫보다는 베이스 소리를 더 찾게 됩니다. 그래서 낮은 음들에 귀 기울여볼 만한 음반을 몇 개 골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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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고른 음반은 베이스 연주자 게리 피콕(Gary Peacock)이 키스 재릿(Keith Jarrett, 피아노), 잭 디조넷(Jack DeJohnette, 드럼)과 함께 한 <Tales Of Another>입니다. 이 세 사람은 전설의 피아노 트리오입니다. 1983년부터 2018년까지 키스 재릿의 “스탠더즈 트리오”로 활동하며 22장(그중 6장짜리 세트, 2장짜리 세트 등도 있습니다)의 앨범을 발표했으니까요. 이 앨범들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키스 재릿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발매한 음반 가운데 유일하게 키스 재릿이 리더가 아닌 음반이 하나 있습니다. 1977년 게리 피콕이 리더로 나선 <Tales Of Another>입니다. 스탠다드 곡 없이 6곡이 모두 게리 피콕의 작곡입니다. 키스 재릿 특유의 흥얼거림이 유독 자주 크게 등장하지만 여기에 신경을 빼앗기지 말고 게리 피콕의 베이스 연주에 집중해야 합니다. 베이시스트가 작곡한 곡이더라도, 솔로로 등장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간에 베이스는 좀처럼 주인공이 되기 힘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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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앨범도 피아노 트리오입니다. 빌 에번스(Bill Evans) 트리오의 <Portrait in Jazz>(1960년 발매)입니다. 베이스는 스캇 라파로(Scott LaFaro, 베이스)와 폴 모션(Paul Motian, 드럼)입니다. 빌 에반스는 다른 멤버들과 16번 트리오를 결성했는데, 비평가들과 애호가 모두 이견 없이 스캇 라파로와 폴 모션이 함께한 시기의 트리오를 최고로 꼽을 겁니다. 피아노라는 독주 악기와 이를 돕는 리듬 섹션이 아니라, 세 악기가 동등한 지분으로 참여하는 이상을 보여줬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불행히도 스캇 라파로가 1966년 6월 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그 시기는 대단히 짧았습니다. <Portrait in Jazz>와 <Explorations> 단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몇 장의 실황 앨범을 남겼을 뿐입니다. 빌 에반스는 스캇 라파로의 죽음을 대단히 비통해 했다고 합니다. 빌 에반스에 대한 탁월한 전기를 쓴 피터 패팅거는 이들이 남긴 녹음은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발전에 있어서 하나의 정점과 에반스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성과에 대한 하나의 매개체”라고 말하며, 라파로의 죽음을 “이상적인 삼두체제의 종말”이자 “에반스 자신 속에서도 그 무언가를 살해”했다고 평합니다. 씨디플레이어, 턴테이블, 핸드폰이나 노트북 등 무엇으로 듣든 첫 소절이 흘러나오는 순간 이런 평이 무슨 말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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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음반은 쇼스타코비치의 다니엘 샤프란의 <첼로 소나타, Op. 40>(1961년 발매)입니다. 함께 수록된 곡은 첼로 소나타 중 가장 유명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입니다만, 이 앨범의 백미는 쇼스타코비치입니다. <아르페지오네>는 좋은 연주가 무척 많아서 꼭 샤프란의 연주를 찾아 듣지 않아도 되지만, 쇼스타코비치 곡은 이 앨범을 듣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함께 한 연주자 리디아 페셰르스카야는 샤프란을 충실히 보좌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깁니다. 샤프란은 연주 파트너에게 독재적인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의 첼로 소리는 대단히 대단히 아름답고 분명합니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곡이 쉽게 귀에 들어올 만큼 명쾌하고 확신에 찬 연주입니다. 많은 러시아 출신 연주자들이 망명해 활동 무대를 넓혔지만, 샤프란은 소련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클래식 녹음의 황금기와 그의 전성기는 완전히 겹치지만, 녹음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이 앨범은 샤프란이 서구 레이블에서 녹음해 정식 발매한 거의 유일한 음반입니다. 1961년 RCA 녹음팀은 이 귀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샤프란의 아마티 첼로 소리를 탁월하게 포착했습니다. 녹음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서일까요, 재킷 디자인은 해적반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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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올해 발매된 신보로 골랐습니다. 근래 들어 재평가와 함께 최근 활발히 녹음되는 작곡가가 바인베르크입니다. 1919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소련에서 활동했고, 쇼스타코비치가 높이 평가했지만 생전에는 콘서트홀이나 녹음스튜디오에서 자주 연주되는 작곡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사이 바이올린 연주자 기돈 크레머 등의 노력으로 바인베르크의 음반이 속속 출시되고 있습니다. 클래식 음반을 상징하는 노란 딱지 도이치그라마폰이 처음 장기계약을 맺은 여성 지휘자 미르가 그라지니테-틸라(mirga gražinytė-tyla)가 데뷔 음반으로 선택한 작곡가도 바인베르크였어요, 온 시리즈 세 번째 책 『작가 피정』(근간)을 쓰신 노시내 선생님의 러시아어 선생님이 바인베르크의 딸이었다고 해요. 이런 여러 호기심과 인연에 기대 저도 바인베르크의 음반을 속속 모으고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와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더 서정적인 측면이 많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고른 음반은 피터 비스펠베이와 라파엘 페예 등이 연주한 <첼로콘체르티노,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판타지, 실내교향곡> 입니다다. 콘테르티노와 판타지 모두 첼로의 중저음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첼로 연주자가 (다소 의외인) 피터 비스펠베이입니다. 음반사는 생소한 evil penguin인데요, 주요 레퍼토리만 반복해서 녹음하기보다 음악가들이 원하는 곡을 녹음해 발매하는 걸 목표로 하는 독립 레이블입니다. 가볍고 경쾌한 시대악기 연주로 유명세를 얻은 비스펠베이는 이 녹음에서 두터운 현대 첼로를 들려줍니다. 비스펠베이도 비발디나 바흐만 연주하기 지겨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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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대해 할 말 많았던 사람들
『도서관은 살아 있다』 구산동도서관마을 북토크 후기
🌱 죽순
“미국 도서관은 폐기한 장서를 중고로 파나요?”
“장기 연체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겉싸개 표지를 벗겨서 서가에 놓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꿀 묘안이 있을까요?”
“지역 아티스트, 지역 서점과 협업하는 사례를 듣고 싶어요.”
지난 화요일 구산동도서관마을에서 있었던 『도서관은 살아 있다』 북토크에 예비/현직 사서님들께서 많이 참석하셨어요. 시작하기 전 “사서님들 계시면 살짝 손들어주세요”라고 했을 땐 대여섯 분에 불과했는데, 중간중간 한국 도서관의 현실을 말씀해주시고 미국 도서관의 여러 프로그램에 대해 질문하시는 걸 보니 적어도 스무 분은 사서님들인 것 같았습니다.
장기 연체자에 대한 고민, 양장본의 겉싸개 표지를 벗겨서 서가에 놓아야 하는 재정과 관리의 문제 등 아주 실무적인 이야기부터, 공공도서관이 점차 사회복지의 역할을 늘려감에 따라 사서의 업역이 어디까지이며, 어디까지 어떻게 가능할지 같은 거시적인 이야기까지 다양한 차원의 질문과 답변이 오갔어요.
사회자로 참여한 🌱죽순은 도서관을 지키기 위해 인간 띠를 둘렀던 시민들의 사진을 보며 남몰래 시큰해진 코를 훌쩍이기도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귀여운 생명체 고양이 사서들의 사진을 보면서는 비실비실 웃었고요.
책을 만들면서도 느꼈지만, 공공도서관이 이 시대에 남은 (어쩌면) 마지막 공공성의 보루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공도서관을 민간위탁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언제까지 이 보루를 견고하게 지킬 수 있을지 걱정도 됐어요. 사서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아무리 작은 도서관이라도 사서를 두어 장기적인 계획 아래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책만 대여하는 이용자가 아니라 도서관이 하는 다채로운 일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말을 얹는 시민이 되는 것, 『도서관은 살아 있다』가 거듭 말하는 그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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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척스카이돔 지하 1층에 예술책 중심의 문화공간 '서울아트책보고'가 문을 열었어요. 새 공간에서 정지돈의 『스페이스 (논)픽션』 세 번째 북토크가 열립니다.
사회자는 박세미 시인. 『스페이스 (논)픽션』 뒤에 실린 코멘터리를 읽어보신 분들은 기억하시죠? 박세미 시인은 건축 전문잡지 『스페이스』에서 기자로 일하는 동안 정지돈 작가에게 연재를 제안했어요. 그렇게 1966년 창간 이래 처음으로 소설가의 에세이를 잡지의 첫머리에 배치하게 되었죠.
건축 전공자로 오해받는 정지돈 소설가와 건축 전공자 박세미 시인이 공간을 둘러싼 이야기를 나눕니다.
🗓 29일(화) 19시 30분📍서울아트책보고 열린무대
(서울 구로구 경인로 430 고척스카이돔 지하 1층)
↳ 신청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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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살아 있다』 북토크는 계속됩니다. 2시간이 너무너무 아쉬울 정도로 재밌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놀러오세요!
🗓 23일(수) 19시 30분📍관악구청 1층 용꿈꾸는작은도서관(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45 (봉천동) 관악구청 본관 1층)
온라인 신청 마감 / 문의 02-878-3200
🗓 30일(수) 16시📍 강동구 해공도서관(서울시 강동구 올림픽로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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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마티
matibook@naver.com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127-1, 레이즈빌딩 8층 (03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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