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멸균우유
“방학식 끝나고 17번, 28번은 집에 가지 말고 교무실로 와서 우유 받아 가세요.” 17번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키가 작은 남자아이였고 28번은 나였다. 우리 둘은 친구들이 다 떠날 때까지 교실에서 시간을 죽이다가 교무실에 갔다. 그러면 작년에도 만난 다른 반 아이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선생님이 서울우유 멸균 팩 스물네 개가 들어 있는 상자를 두 개씩 나눠줬다. 열한 살이 들기에는 묵직했다. 나는 운동장에 아는 얼굴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질긴 비닐로 덮인 우유 팩의 윗부분을 쓰다듬으며 교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우유 상자를 들고 언덕배기에 있는 금곡주공아파트로 올라가는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내가 고수했던 콘셉트는 공부도 잘하고 학원도 여러 개 다니고 엄마, 아빠에게 사랑도 듬뿍 받는 아이였다. 그 콘셉트를 지키려면 이 정도 수고는 들일 수 있었다. 그래도 한둘은 집에 가다가 마주쳤다. 한번은 어떤 아이가 왜 너만 그걸 받느냐고 물었다. 나는 반장이어서 우유를 받으러 오는 다른 아이들을 도와줬는데 선생님이 남은 걸 가지고 가라고 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빠는 그 우유가 참 고소해서 좋다고 했다. 아빠를 위한 우유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윳값이 굳어 엄마의 독박 살림에 보탬이 될 테니 그것으로 족했다. 방학식에 멸균우유 두 상자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아이. 그것이 내 기억 속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첫 번째 모습이다.
우리 집은 아빠의 술안주나 때때로 입이 심심한 나의 간식으로 그 우유를 소비했지만, 같은 반 남자아이 A는 그 우유를 상당히 소중하게 여겼다. 나와 A는 2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한번은 나란히 교무실에 서 있다가 내가 우유를 들고 아파트 언덕을 오르는 게 짜증난다고 투덜거렸더니, 그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우유 덕분에 할머니가 빈속에 약을 드시지 않아도 된다면서. 자기는 남자라서 네 상자쯤은 거뜬히 들 수 있으니 언제든지 우유를 넘기라고 똑똑히 말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두 상자 다 주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한 상자라도 A에게 주면 내가 간식으로 마실 우유를 아빠 술안주로 전부 뺏길까 봐 “무거워서 짜증이 난다는 거지 안 들고 간다고는 안 했어. 그리고 여자도 네 상자는 들 수 있거든” 하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A가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A가 우유를 안고 가는 뒤에서 나도 내내 우유를 안고 갔다. 다른 친구들이 A와 내가 사귀는 게 아니냐며 주위에서 키득댔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사실 나도 이 우유가 꽤 고마워. 아까 내가 했던 말은 조금 철이 없었지?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많고 많은 음료와 음식 중에 ‘멸균우유’를 나눠준 것은 어떤 ‘배려’였을 것이다. 멸균 제품이라 실온에서 3개월쯤 보관할 수 있고, 복지 대상 아동보다 더 어리거나 소화기관이 약한 고령자도 섭취할 수 있다. 지금은 ‘배려’가 좀 더 추가돼 우유를 학생이 들고 가도록 하지 않고 택배로 보내준다고 한다.
당시에도 결식아동을 위한 식비 지원 제도가 있었다. 내가 살았던 부산시의 경우 2000년부터 결식 우려가 있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급식 사업을 실시해왔다. 처음엔 식권을 배부하는 형태였다가 2009년 무렵에 아동급식카드로 바뀌었다. 왜인지 나는 이 제도를 이용하지 못했다. 행정복지센터 담당자와 통화하던 아빠가 식권은 됐고 쌀이나 받으러 가겠다고 말했던 사실만 어렴풋하게 기억날 뿐이다. 나는 성인이 된 후에야 뉴스를 통해 아동급식카드를 알게 됐다. 아이들이 스스로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기사는 아동급식카드를 거부하는 식당이 많다고 지적했다. 아동급식카드는 내밀기만 하면 식당에서 무료로 음식을 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한 끼에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지자체마다 다른데 대부분 8,000원 선이다. 물가를 반영해 오르고 있다지만 8,000원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한정적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 ‘아동급식카드 환영’이라는 문구가 붙은 식당을 보면 일부러 메뉴를 더 시켜 매출을 올려주거나 계산을 하며 1-2만 원을 더 내곤 했다. 아이가 1식 결제 금액을 상회하는 메뉴를 골라도 기꺼이 내어달라는 마음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동안 나는 다른 형태의 멸균우유들을 받아왔다. 전기요금과 통신요금 일부를 감면받았고, 매달 일반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다섯 장씩 지급받았으며, 1인당 5만 원씩 지원된 문화누리카드로 엄마와 가끔 영화를 봤다. 무료 급식, 수학여행비 지원, 대학 입시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참 고마웠다. EBS 교재는 다른 참고서의 반값 정도였고, 개중 수능 연계 교재는 사회적 배려 대상 학생을 위해 과목별로 몇 권씩 학교에 납품되었다. 학생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선택 과목의 교재도 항상 여분이 있었다. 나는 이것을 ‘가난하니까 공짜 교재로 공부해라’라는 값싼 동정이 아니라, ‘너는 공부할 권리가 당연히 있으니 과목을 잘 고르라’는 격려와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교무실에서 받아 온 것이 멸균우유가 아니라 수능 교재가 되었을 즈음, 나는 그것이 여전히 무거웠지만 짜증이 나지는 않았다.
지은이 안온
가난하고 지난한 날에서 지나간 불온을 기록하는 사람. 나의 불온한 나날에 대한 기록이 당신의 생을 안온하게 덥히는 땔감이 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