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수급생활자로 살아온 97년생 저자 안온은 '요즘' 가난이 어떤 모습인지 일인칭으로 써 내려갑니다. 거침없이, 그러나 신중하게 쓰인 『일인칭 가난』 출간 전 연재를 시작합니다. 11월 출간 예정이에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3화 우리를 아는 건 우리뿐이야
열음은 내 자매다. 징그러운 가족사와 가족보다 징그러운 가난을 나눈 자매.
열음의 엄마 은아와 나의 엄마 지영은 중학교 동창이다. 지영과 내 아빠가 된 경훈의 결혼식장에서 은아 이모와 아빠 대학 선배 영창이 만나 부부가 됐다. 그들의 첫 아이가 나와 열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열음은 세 살이었다. 다섯 살의 나와 엇비슷한 키에 포동포동한 볼살이 귀여웠다. 귀여운 만큼 고집이 어마어마했다. 내가 입은 잠옷을 당장 내놓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겠다고 울며 떼를 썼고, 내가 먹는 것을 죄 한입씩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외출하면 제 엄마 손을 놓고 꽁무니 빼는 것을 즐겨 하던 열음의 뒤를 쫓는 일은 늘 내 몫이었다. 은아 이모와 열음을 만나는 날이면 내게 특별한 미션을 주어졌다. 열음이가 뛰면 너도 뛰어. 쫓아가서 잡으면 주변 어른들한테 네 목걸이에 새겨진 엄마 전화번호를 보여줘. 알았지?
어느 날, 다섯 살이 된 열음이 마트 계산대에서 꿈지럭거리던 엄마를 기다리지 않고 또 달음질을 쳤다. 나도 따라 뛰었다. 후문을 나서니 꽉 낀 정장을 입은 언니가 춤을 추고 있었는데, 열음이 그 앞에 멈춰 선 것이 보였다. 춤추는 언니를 한참 쳐다보더니 이윽고 제 몸을 들썩들썩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습득한 단어에서 이때의 내 감정을 설명하라면, ‘벙쪘다’가 맞을 것이다. 목적 없는 뜀박질, 의미 없는 춤사위. 마트 안에서 흘러나오는 미아 안내 방송이 희미하게 들리고, 열음의 춤사위가 슬슬 허물어질 즈음 은아 이모가 나타나 열음을 낚아 올렸다. 하지만 그날 등짝에 나비처럼 새겨진 은아 이모의 손바닥 자국도 이후 여러 차례 반복된 열음의 탈주를 막지 못했다.
우리가 10대가 됐을 무렵, 열음네 사정이 확 나빠져 금곡주공으로 이사를 왔다. 우리의 대화 주제는 대부분 탈출이었다. 가족으로부터, 이 동네로부터,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먼저 탈출한 사람은 나였다. 두 살 많은 내가 먼저 대학에 진학하며 대구로 도망쳤다. 남은 열음은 종종 내게 전화했다. 언니, 나 여기 싫다. 나도 나갈래. 언니, 거긴 좋나.
우린 서로를 끔찍하게 아꼈다. 아빠가 자살했다는 그 방에, 나는 차마 들어가지 못했던 그 방에 열음이 들어가 죽음의 잔여물을 치웠다. 대구에서 아빠의 자살 소식을 듣고 벙찐 상태로 부산에 내려와 장례를 치렀다. 염하는 장면은 보지 않았다. 자살을 택함으로써 나와 엄마에게 죄책감을 심어준 아빠의 파리한 입술과 짙은 속눈썹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10여 년 전에 자살한 할머니의 무덤 옆에 아빠를 묻고 뒤돌아 바로 대구로 올라왔다. 엄마를 다독일 체력도, 정신도 없었다. 그때 엄마 곁에 은아 이모와 열음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정신이 좀 돌아왔을 때, 열음이 그날을 언급했다. 언니가 그날 번개탄 지름 크기로 그을려서 뜯긴 장판을 봤으면 집주인 걱정부터 했을걸. 지독한 현실보다 독한 개그를 치며 지내온 사이인지라 나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러게, 엄마가 장판 물어줬으려나?
열음과 내가 끈끈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빠들이었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된 후 알코올중독에 빠진 경훈과, 벌이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은 영창은 간헐적 폭력배였다. 경훈의 조준 실력은 형편없어서 나는 날아오는 소주병을 더러 피할 수 있었으나, 열음은 무지막지하고 무식하게 주먹질을 해대는 제 아빠 영창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가 흘린 피가 우리를 피를 나눈 자매보다 더 자매 같은 사이로 만들어주었다.
내가 백석을 공부하겠다고 결심하고 대학원 입학을 결정한 해에 열음은 영화과로 전과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만 이해할 수 있고, 우리만 웃을 수 있으며, 우리만 울 수 있는 대화를 나눴다.
[대화 1]
열음: 언니, 오늘 받은 습작 주제가 사진이랑 하늘이거든? 무슨 생각나?
나: 화명주공 살 때, 갑자기 남자 어른들이 엄청 큰 노란색 카메라를 들고 와서 하늘을 막 찍던 거.
열음: 오, 그럴싸해. 그게 뭐였는데?
나: 화명주공 재개발하려고 아파트 측량하는 거였는데, 난 하늘 찍는 건 줄 알았지.
열음: 크~ 안온 삶, 맵다 매워. 존나 웃기네.
나: 웃기냐? 이게 웃겨? 내 가난이 웃겨?
열음: 어, 웃겨.
[대화 2]
열음: 예술은 다 돈이야.
나: 그치. 예술대가 학비도 비싸고. 너 입봉 영화 찍는 거, 네 주머니에서 나와야 하잖아. 책도 뭐, 정가가 만 원 안팎인데, 작가 인세는 그중 10퍼센트야. 야, 그래도 고흐를 생각해 봐.
열음: 뭐야, 밸런스 게임이야? 평생 가난하게 살고 죽어서 엄청 유명해지기 vs. 살아 있을 때 예술로 쥐콩만큼이라도 돈 벌기.
나: 열음아, 나 귀가 좀 큰 편이잖아…?
열음: 그냥 접어둬. 언니, 나 유명해져서 투자받아 영화 찍게 되면, 영창의 장례식을 첫 장면으로 할 거야.
나: 그럼 영정 사진 앞에서 춤추는 역으로 날 써줘.
열음: 좋아.
[대화 3]
열음: 하, 언니. 내 친구가 엄청 심각한 고민이 있다는 거야.
나: 왜, 아빠가 아빠답지 못하대?
열음: 우리 얘긴 됐고. 자기는 영화가 하고 싶어서 지금 입시 학원을 다니는 중이고, 부모님도 그 꿈을 응원하는데 스스로 확신이 없대. 그러면서 막 울더라.
나: 지랄하네.
열음: 그러니까! 나도 속으론 그렇게 생각했지. 그래도 그냥 들었거든? 그랬더니 걔가 열음아, 넌 그런 생각 안 들어? 예술을 하려면 삶에 풍파가 좀 있어야 하는데 난 그런 게 너무 없어서… 예술가의 자질이 있는지 모르겠어, 이 지랄.
나: 그거 너 저격한 거 아니냐?
열음: 나 풍파 많은 거 들켰나? 아무튼 참 복에 겨운 눈물이 많아. 나는 내 또래들 고민이 그냥 같잖게 들려. 부모가 영화 하는 걸 반대한다는 고민마저도 그래. 애비가 어쩌다 전화해서 딸 노릇 잘하라고 폭언하는 나에 비하면 늘 그래.
나: 그러게나 말이다. 할머니랑 아버지가 자살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죽고 싶지만 죽지 않아요, 이런 것도 아니고. 매일 일하는데 자꾸만 가난해질 것 같아요, 20년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더니 강박이 있어서요, 이런 것도 아니고.
열음: 그니까. 근데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잖아. 내가 너무 가난해서 남들의 아픔을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닐까.
나: 안 그래야지.
열음: 안 그래야지 하다가도 통장을 보면 내가 제일 아픈 건 어떡해?
나: 어쩌긴. 좆됐다 생각해야지.
열음: 우린 좆도 없는데 늘 좆되는구나. 내일 언니 일 몇 시라고?
나: 아침 10시부터 애들 수업.
열음: 지금 새벽 2신데? 니 뭐해?
나: 대학원 과제.
열음: 좆됐네.
언젠가 열음이 말했다. 언니, 우리를 아는 건 우리뿐이야. 마치 전쟁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가난을 수군거리며 서로를 껴안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