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는 지난 몇 년 동안 출판계에서 인기 있는 작곡가였습니다. '날도 스산한데 쇼스타코비치를 들어볼까...?' 하는 생각 끝에 여덟 번째 마티의 각주를 띄웁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지난 몇 년 동안 출판계에서 인기 있는 작곡가였습니다. 올해 200주년을 맞아 쏟아진 베토벤 책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책이 나온 작곡가가 아닐까 합니다. 최은규 선생님도 『교향곡』에서 쇼스타코비치에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습니다. 어느덧 찾아온 긴 저녁을 함께 하기 좋은 책과 음악을 모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권의 신간 소식도 함께 전합니다. 날도 스산한데 쇼스타코비치를 들어볼까 by 에디터 S 지난 10월 30일, 11월 3일과 4일은 각각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1957년), 9번(1945년), 8번(1943년)이 초연된 날이었습니다. 어둠이 더 짙어지는 가을, 겨울과 잘 어울려서일까요, 일명 ‘쇼타’의 교향곡 15곡 중 7곡이 이 계절에 초연됩니다. 하지만 그는 한가하게 계절을 따지며 작품을 발표하는 시절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20세기 작곡가를 논할 때 단연 가장 처음 거론되는 쇼스타코비치는 정치 검열이 극에 달했던 스탈린 시절에 음악을 만들며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여기에 2차 세계대전의 비극까지 겹쳤지요. 그는 당의 방침에 따라 음악의 성격을 바꾸거나 아예 발표를 포기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구소련’ 출신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도 1980년대 중반까지는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은 연주된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엔 부자유에 대한 고통, 전쟁으로 잃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서려 있습니다. 엄혹한 시대를 살았던 만큼 그의 교향곡은 언제나 역사나 이념의 거울처럼 해석되곤 하지만, 음악 칼럼리스트 최은규는 『교향곡』(마티, 2017)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20세기 이후 점점 심각해져가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경고이자 황폐해진 정신을 일깨우는 각성제와도 같다. 역사적 비극을 다룸으로써 악을 자행하는 ‘인간’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것이 쇼스타코비치의 진정한 목표”였을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처음 들어보신다면, 좀 생소하실지도 모르겠어요. 저도 『교향곡』을 편집하며 하이든부터 도장 깨기 하듯 음악을 들었는데, 말러에서 한 번 움찔하고 ‘쇼타’에서 또 한 번 콕콕 찌르는 느낌을 받았었답니다. 낯선 그 느낌을 더 확실하게 새기고 싶어 ‘쇼타’ 작품을 연주하는 콘서트가 없나 뒤져보기도 했죠. 몸을 늘어뜨린 자세로는 그의 음악을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꼿꼿하게 앉아 소리를 응시하듯 온 감각을 집중하며 듣곤 했답니다. 그래야 그의 비탄과 한숨을 더 잘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요.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마티는 음악을 더 깊게 즐길 수 있는 책들을 꾸준히 내려고 해요. 음악이 흐르는 여러분의 생활에 마티가 늘 함께 하길 바라봅니다. 💬 같이 읽으면 좋은 책 M. T. 앤더슨,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장호연 옮김(돌베개, 2018) 쇼스타코비치, 『증언』, 김병화 옮김(온다프레스, 2019) 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 송은주 옮김(다산북스, 2017) 스티븐 존슨,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 김재성 옮김(풍월당, 2019) 쇼스타코비치 앞에서 연주한 쇼스타코비치 5번 by 에디터 P 쇼스타코비치 관련 책과 함께 들어볼 곡으로는 교향곡 5번을 골랐습니다.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와 함께 가장 자주 연주되고 녹음되는 곡이라 명반도 즐비합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소련이라는 정치 환경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기에, 구 소련 출신 지휘자들이 훌륭한 녹음을 많이 남겼습니다. 최은규 선생님은 마리스 얀손스와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레퍼런스로 삼았는데요, 얀손스도 구 소련에 속했던 라트비아 리가 출신입니다.
“각주”에서는 냉전시대 소련의 주적이었던 미국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소개할까 합니다. 전후 미국의 주요 오케스트라였던 시카고, 필라델피아, 보스턴,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포디엄은 유럽에서 건너온 지휘자들이 휩쓸었습니다. 뉴욕만 미국인을 지휘자 자리에 앉혔습니다. 레너드 번스타인입니다. 1958년 뉴욕 필하모니의 음악감독에 취임한 번스타인은 미 국무부의 후원으로 이듬해 유럽 투어에 오릅니다. 1959년 8월 3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해 10월 10일 영국 런던에서 끝난 이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소련 모스크바 공연이었었습니다. 번스타인은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해 소련의 음악가들이 객석을 찾은 이 공연에서 쇼스타코비치 5번을 연주했고, 그 기록이 음반으로 남아 있습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의 오케스트라가 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해 작곡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한 흥분과 열기가 연주에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가 칭찬했다는 이 연주의 특징 중 하나는 4악장의 놀라운 속도입니다. 얀손스의 연주가 약 11분인데 반해, 번스타인의 연주는 9분이 채 되지 않습니다. 휘몰아치는 에너지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이 연주는 유튜브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연주 직후 무대에 올라 함께 박수 갈채를 받고 있는 쇼스타코비치와 번스타인의 모습을 커버에 담은 엘피입니다. 지난 호에 소개했던 신간 『감정, 이미지, 수사로 읽는 클래식』은 이제 본문 인쇄를 마치고 표지 박 작업과 제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악보가 많이 나오지만, 악보를 읽어 음을 정확히 떠올리지 못해도 충분히 읽을 만합니다. 또 책에서 설명한 곡을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도록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곧 서점에서 만나요! 💬 다른 출판사 책이지만 꼭 마티 책 같아서 올해 내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시던 편집장님, 그 이유가 이 책이었어요! 워크룸프레스에서 출간한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가 며칠 전 도착했답니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건축이 남긴 흔적을 추적합니다. 발전국가의 이미지를 책임져야 했던 산업 역군이자 1950년대 중반 예술로 편입된 건축이 이상과 현실 두 양극을 오간 시간을 살피죠. 온전한 건축을 상정하고 한국의 사정을 비판하기보다, 지난 세기 한국에서 건축이 무엇을 했는지 묻고, 여러 희미한 흔적들을 통해 거꾸로 건축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합니다. 한국 현대사와 건축에 관심 있으시다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P. S. 박정현 편집장님은 건축 비평가로도 활동하셔서 마티 스태프들은 책 소식을 듣고 '드디어 단독 저술을 내셨구나' 했어요. 도서출판 마티 |
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