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지는 에세이 『음악의 언어』와 『일요일의 음악실』을 쓴 송은혜 작가님께 오랜만에 편지를 띄웠습니다. 음악 이론 교양서를 내보자고 이야기 나눈 지 근 1년 만이에요. 프랑스 렌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지, 집필은 어떻게 되고 계신지 여쭤봤어요. “작가님, 책 안 쓰고 뭐 하세요?” 2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에 단어를 붙여보아요.”
🌱죽순의 편지와 송은혜 작가님의 답장
안녕하세요, 송은혜 작가님. 오랜만에 안부를 여쭙습니다. 서울은 부쩍 날씨가 쌀쌀해지고 해가 일찍 넘어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거주하시는 프랑스 렌의 10월 풍경은 어떤가요?
아름답습니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곳의 가을은 길고 아름다워요. 굳이 단풍놀이를 멀리 떠나지 않아도 사방에 색색으로 물든 나무가 가득하죠. 멋진 건물이 쭉쭉 뻗은 도시도 아름답지만, 나무가 많은 도시는 외관을 관리하지 않아도 시간에 따라 무료로 스스로 장식을 바꿔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인간은 나무 사이에 빌붙어(?) 살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엊그제 서머타임이 끝났어요. 이제 밤이 급속도로 길어집니다. 오후 5시가 넘으면 금방 어둑해지죠. 동지까지 밤은 계속 길어질 거예요. 길어진 밤을 누리며 원고 마감을 해야죠.
오늘도 음악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오셨겠죠? 수업 내용이 궁금해요! 전반적인 커리큘럼보다는 오늘 하신 바로 그 수업의 내용이요. :-)
이번 주는 방학이라 지난주에 있었던 마지막 대학 수업을 이야기할게요. 수업은 아니고, 중간고사가 있었어요. 실기와 이론의 중간쯤에 서 있는 과목이라 그동안 배운 이론을 실기로 구현해야 하는 시험이었죠. 시험 과제 중 하나가 바흐의 코랄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화성 연결 중 열 가지 예를 외워서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었어요. 음악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수많은 작품을 듣고 분석해야 해요. 무엇인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기본 틀을 내장하지 않고는 힘들어요. 보편을 알아야 특이성을 잡아낼 수 있잖아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보는 법을 배우는 거죠.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사회가 합의한 부분을 배우고 익혀서 활용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잖아요. 이 바탕이 없으면 아무리 창의적이라 해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찾지 못해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타인이 공감할 수 있게 설명하기 힘들고요. 거꾸로 타인의 생각을 적절한 맥락에서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대학 수업은 음악원 수업과 달라서 악기를 초보자 수준으로 독학하는 학생부터 전문가의 길을 가는 학생까지 다양하게 섞여 있어요. 다양한 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스로 자기 분야와 연결할 만한 주제를 찾게 하고 연습시키는 것이 저의 역할이에요. 시험으로 고생했으니 이번 주는 푹 쉬고 오라 했어요. 다음 주부터는 새로운 연습 과제가 학생들을 기다릴 테니까요.
음악을 가르친다는 건 참 어려울 것 같아요. 음악 분야 책을 몇 종 만들어보니, 음악을 글이나 말로 묘사하고 설명한다는 것이 보통 공력이 필요한 게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으시다면요?
최대한 보편적인 언어를 사용해 설명하는 거예요. 음악을 전공한다고 해도, 각자의 성격과 감성이 다르고, 가진 음악 지식 수준도 달라서 손쉽게 전문용어를 쓰다가는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고 끝날 때가 많아요. 그리고, 제가 만나는 학생은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전공생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해요. 아이들에게 부속화음이 어쩌고, 위종지가 어쩌고, 모방기법이 어쩌고 하는 순간 눈빛이 흐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죠. 최대한 생활에서 음악 현상을 느낄 수 있는 예를 찾아요. 어차피 음악은 자연법칙이나 인간의 움직임, 심리에서 떨어질 수 없으니, 부지런히 고민한다면 어디에서든 설명 방법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수유너머에서 음악 이론 기초 수업인 ‘한여름 밤의 음악실’을 진행하셨고, 언젠가 트위터(현 엑스)에서도 짧은 이론 강의를 여신 적이 있어요. 서양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데에 음악 이론 한 스푼을 아는 것은 필수일까요? 필수는 아니더라도, 다른 깊이와 차원으로 음악 감상을 즐길 수 있는 길을 열어줄까요?
네! 그림과 다르게 음악은 스쳐 지나가면 끝입니다. 남는 것이 없어요. 기억력이 너무나 좋아서 내가 들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조차도 작품의 구조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너무나 파편적이고 추상적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전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그 있잖아, 그 작곡가의 그 작품에서 거기. 조용하고 느린 거기… 아, 뭐였지?”라고 이야기하면 듣는 상대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힘들죠. 그나마 선율이라도 기억한다면 노래라도 흥얼거려볼 텐데 정확하게 전달하지는 못하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섬세하게 구별하고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이론 공부로 할 수 있어요. 이론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어떤 것에 모두가 합의한 단어를 찾아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외국어처럼 느껴지던 클래식 용어를 자연스레 이해하기를 넘어, 자기 스스로 그 용어를 활용해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실 거예요. 삶이 풍성해집니다. 어느 날, 피아노 앞에서 5도권 화성 연결을 외워서 자연스럽게 즉흥 연주하는 자신을 만날 수도 있어요.
마티는 클래식 음악 입문의 다음 단계인 음악 책들을 기획하고 출간하려고 애써왔어요. 『교향곡』 『감정, 이미지, 수사로 읽는 클래식』로 ‘듣는 사람을 위한 가이드’라는 시리즈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뭐랄까요, ‘중급’으로 넘어가고 싶은 음악 애호가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책을 콕 짚어 기획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작가님을 발견한 거죠! 대중교양서로 음악 이론 책을 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요. … 집필은 어떻게 되어가고 계신가요?
열심히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 사랑하는 주제지만, 훌륭한 음악 듣기만으로 만족하셨던 분에게 음악의 속살을 들여다보시라고 권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자칫하면 너무 어렵게 설명하게 되고 금방 따분해질 수 있어서요. 하지만,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음악에 발끝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맛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체 마감일을 언제로 잡으셨어요?
12월 중순에 한국에 갑니다. 강의도 있고, 강의 연주도 있고요. 그 전까지 마무리하고 가려고요. 책이 있으면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과 소통하는 범위가 넓어져서 좋아요. 이번에 마티와 함께 쓰는 책으로 만날 분들이 기대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