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 편집자가 동시에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가 있습니다. 영화평론가 손희정, 조혜영, 심혜경(일명 손조심)의 본격 문화예술 교양 팟캐스트, 「38페이지」인데요, 영화, 드라마 시리즈, 도서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날카롭고 재미있게 이야기합니다. 혼자 알기 아까워 여러분과 나눕니다!
38페이지 청취 후기
🕯️초초
연구자이자 기획자인 세 분의 관점과 경험이 모이니 일단 이야기의 밀도와 탄탄함 보장! 다른 자리에서 듣기 어려운 세 분의 취향과 스몰토크를 듣는 재미도 있다. 이제껏 다뤄진 네 편의 영화에 예상 밖의 감탄과 끄덕임을 동시에 보내면서 최신작과 클래식을 오가며 목록을 어떻게 쌓아갈지 너무 궁금하다. 얼른 의외의 장르, 예상 밖의 콘텐츠도 많이 다뤄주시길 기다리게 된다. 세 분의 의견이 충돌하는 순간도 더 많이 엿듣고 싶어요~~ ㅎㅎㅎ
🌱죽순
저는 라디오를 기피하는 부류예요. 특히 모르는 사람의 사연을 DJ가 대독하는 코너가 있는 프로그램은 어쩐지 귀가 부끄러워서 잘 못 듣겠더라고요. 겨우 꾸준히 듣는 팟캐가 「정희진의 공부」 하나인데요, 얼마 전 새롭게 듣기 시작한 팟캐가 있으니… 바로 「38페이지」 입니다.
영화 「러브 라이즈 블리딩」(2024)을 굉장히 신나게 본 후 “플로모션”에서 한 차례 진한 평론을 들었고, 다른 해석과 비평이 궁금해서 검색하던 중 “러브 라이즈 블리딩: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도파민 레즈비언 스릴러”(🔗팟빵 | 🔗유튜브) 팟캐 에피소드를 발견, 빠져서 들었습니다. 「38페이지」 의 첫 에피소드였어요.
팟캐 초반에 누구나 겪는 뚝딱거림과 2초의 침묵,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사람은 셋이니 겪는 오디오 물림 등마저 재밌게 들리는 건, 그들이 선택한 영화가, 저의 인생 영화이거나 장바구니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팟캐 제목이 38페이지냐,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책의 38쪽을 찾아 읽어주거든요. 아직 마티 책이 소개된 적이 없어 못내 아쉬웠는데요, 조혜영 영화평론가가 친히(!) 에피소드 1-2 “잔느 딜망: 흥미진진한 고전의 재발견, 다시 생각하는 실시간 가사노동”(🔗팟빵 | 🔗유튜브)에서 시간 부족으로 소개하지 못한 마티 책 두 권을 추천해주셨답니다.
샹탈 에이커만의 영화 「잔느 딜망」이 궁금하시다면, 일단 「38페이지」로!
🫶 조혜영 영화평론가의 「잔느 딜망」 관련 추천 도서
21세기의 재생산 풍경은 어떻게 변하고, 페미니즘은 그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들려주는 책
『재생산에 관하여』
저자 머브 엠리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자연과 기술의 이분법을 해체해야 한다"는 제2 물결 페미니즘의 가장 강력한 구호들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되새긴다. 특히 난자 동결을 선택한 비혼 여성, 함께 아이를 가지려는 레즈비언 커플, 젠더 확정 수술 전 정자 보존을 원하는 트랜스젠더 여성 등의 사례를 들며 '낳지 않을 권리' 뿐 아니라 '낳을 권리'를 주장하고, 과학기술과 제도가 소수자를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주장에 대한 소란스러운 동의와 생산적 비판에 있다. 정치학자, 젠더이론가, 보건전문가, 장애학자 등 8명의 작가들은 엠리의 주장이 놓치거나 흐릿하게 제기한 인종, 장애, 과학기술의 윤리적 문제 등을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이 책은 마치 재생산과 관련해 다양한 입장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의 라운드테이블이나 팟캐스트를 라이브로 방청하는 것과 같은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준다.
『사랑에 따르는 의혹들』
「잔느 딜망」이 1970년대 유럽 도시에 사는 한 중년 여성이 가족 내 돌봄과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일상의 정치학을 영화미학으로 제시한 텍스트였다면, 『사랑에 따르는 의혹들』은 21세기 한국 서울에서 한 중산층 여성이 자신의 아이가 투병생활을 하게 되며 겪게 되는 "가족 내 정치"를 솔직하게 풀어낸 에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하는 엄마지만 아이가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자 휴직을 하고 간병에 집중한다. 부부 모두 직장에 다녔는데, 왜 늘 엄마가 주 간병인으로 귀결되는 걸까? 그리고 이 질문을 하는 순간 아이에 대한 사랑을 의심받게 되는 걸까? 무엇보다 이 책은 언어적인 것을 넘어서 감정적이고 지각적인 미묘한 영역을 묘사하는 데 있다. 저자는 자신이 의혹과 불안에 휩싸여 있을 때 어떤 질감의 옷을 입었는지, 사람들과 자기 내면의 시선은 어떠했는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했는지, 간병에 있어 역할 분담은 어떻게 나누었는지 등을 세밀하게 증언한다. 이러한 정동적 증언은 돌봄에 주력하고 "가족 내 정치"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온몸으로 느껴본 사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