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완벽한 피해자』 94쪽(“2012년 언젠가, 예루살렘의 살라 알딘 거리에 있는 어느 서점에서『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를 집어 들었던 때가 기억난다. 익숙한 이야기였다.”)에 나오는 책은 이젤딘 아부엘아이시의 『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이한중 옮김, 낮은산, 2013).
모함메드 엘쿠르드는 아내와 두 딸, 조카를 이스라엘 관료와 군대에 잃고서도, 인간애(humanism)에 희망을 걸고 있는 이젤딘 아부엘아이시를 서구가 쳐놓은 ‘완벽한 희생자의 덫’에 걸려든 희생자로 본다. 하지만 평화(근본)주의자인 이젤딘 아부엘아이시에게 투쟁에 나서라고 채근하는 것은, 모함메드 엘쿠르드가 서구에 반박하고자 했던 ‘완벽한 희생자’ 개념과는 정반대의 ‘완벽한 희생자’ 되기를 강요하는 것 아닌가. 즉, ‘적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은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한다. 그러기를 거부하거나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가족을 잃고 상심하고 있는 ‘완벽한 희생자’가 아니다’라는 것.
이젤딘 아부엘아이시는 『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인에게 저지르는 일상적 억압과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인 학살 행위를 줄기차게 폭로하고 비판할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 그가 반이스라엘 투쟁과 복수 대신 인간애를 선택한 것은 평화에 대한 그의 근본적인 신념 때문이지, 완벽한 희생자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 아니다.
2.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서평 기사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또 다른 소수자의 문제와 뒤섞음으로써, 팔레스타인 문제의 절실함을 현 세계의 다양한 문제 가운데 하나로 취급한다. 그렇게 읽힐 수 있게 한다.
“책을 읽으며 이 땅에 사는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성폭력 피해자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팔레스타인은 예외가 아니라 전형이라는 데 공감하게 된다”(이유진, 「‘완벽한 피해자’ 되기를 거부합니다」, 《한겨레》, 2026년 5월 1일). “이 같은 권력의 작동 방식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완벽한 피해자성’을 요구하는 현실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이영경, 「팔레스타인인은 피해자‘여야만’ 한다」, 《경향신문》, 2026년 5월 1일).
나 역시 “완벽한 피해자는 비당파적이고 중립적이면서 일반인(민간인)이어야 하고, 순수한 개인으로만 존재해야 한다. 여성 단체에 달려가는 여성 성폭력 피해자, 시민 단체에게 손 내미는 산재 피해자·장애인·이주 노동자·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완벽한 피해자가 될 수 없다”라고 썼으니, 두 기사만 탓할 수는 없겠지만……. 설명을 쉽게 하겠다고 여성 성폭력 피해자·산재 피해자·장애인·이주 노동자·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사례를 들기는 했지만, 이들의 사례 가운데 팔레스타인 문제를 빠트릴 의도는 애초에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