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하고 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야외에서도 책을 읽기 좋은 때!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을 디자인한 이기준 디자이너가 마일스 데이비스 음악에 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출간된 신간을 편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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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하고도 아름다운 것
🕯️ 초초
『완벽한 피해자』 원고를 편집한 4개월여간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아름다움이 뒤섞이는 경험을 숱하게 한 것 같아요. 화면이나 교정지를 들여다보며 교열을 볼 때는 오탈자, 틀린 데, 어색한 데를 찾는 데 정신을 쏟다가 퇴근을 하면, 지하철 역으로 걸어갈 때부터 조금 전에 보고 읽었던 문장들과 이미지들이 떠오릅니다. 마음이 거기 붙들리고 뭔가가 무겁게 차오르는 듯싶고, 사연 있는 사람처럼 열차에서 눈물을 질금질금 흘리며 귀가하는 날이 많았어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 그룹챗에 들어가 밀린 기사와 공지를 보다가, 팔레스타인 관련 계정을 훑다가, 트위터 타임라인을 벅벅 내리면서 리트윗을 좀 하다가 울다 잠들고……
다시 출근해 교정지를 보면 ‘이 책 어떻게 잘 팔지, 어떻게 많이 읽히게 하지?’ 하는 질문이 들었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뉴스레터에 이런 얘길 하는 게 좋은 선택일까 망설였습니다. 어둡고 아픈 내용만 담긴 책이라는 편견을 만들게 될까, 그래서 읽기 부담스럽게 만들면 어떡하지, 고통스럽지만 아름답고, 통렬하게 사캐스틱하지만 희망적인 힘이 있는 이 글쓰기를 어떻게 전달하지 등등. 그치만 편집 후기 격인 레터에서 『완벽한 피해자』와 함께한 2026년에 제가 겪은 감응을 빼놓을 순 없었어요.
며칠 전 SNS에서 『공정 이후의 세계』의 저자인 김정희원 선생이 이 책에 대해 쓴 글을 보았어요. 그중에서도 “아이디어 자체가 새롭다기보다는, 기존의 아이디어를 팔레스타인의 맥락 속에서 새롭게 갱신해낸 책이다. 고통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문장들 속에서”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어요. 하지만 『완벽한 피해자』가 새로운 개념이나 담론 제출을 목표로 하는 책이 아니라 해도, 이 책을 읽는 일은 내가 알던 세계가 뒤집히고, 발 딛고 있는 땅 깊은 곳이 뒤흔들리는 깨달음과 감각을 강렬하게 동반합니다. 동료가 이 책을 읽고서 “몇 쪽만 읽으면 이전과 같은 사람으로 있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라고 평했는데요. 동의, 지지! 이 책의 강력한 영향에 대한 느낌이 과도한 것만은 아니었구나 안심하기도 했고요.
이런 읽기 경험을 정말이지 함께 하고 싶어요. 구독자분들은 어떻게 읽고 어디에 밑줄을 긋고 어떤 느낌을 표할지 궁금하고, 글에 대한 감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편집을 하면서 ‘아아, 이런 문장!!’을 주고받을 사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바를 어떻게 내 일상에서 간직하고 꾸준히 실천으로 옮길지를 같이 고민할 사람이 없으니 답답하고 아쉬웠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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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하면서 고민한 또 다른 지점은 이 원고가 상당히 고맥락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예를 들어,
-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 대통령이 해외 언론을 만나 ‘민족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라고 외쳤을 때, 《파이낸셜 타임스》는 왜 ‘민간인들은 몰랐다는, 연루되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을 황급히 지면에서 삭제했을까?”(78쪽)
처럼 내용을 이해하는 데 팔레스타인의 역사나 현재 상황 등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한 대목이 있지요. 그뿐 아니라, 본문이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 “인종학살(genocide)의 와중에 글을 쓴다는 것이 고문같이 느껴지는 것은 비탄 때문만은 아니다. 2000파운드짜리 폭탄 앞에서 글이란 부끄러우리만치 모자람을 알아서다.”(11쪽)
- “우리에 대한 대량학살은 오직 광고 시간에만 멈춘다. 판사들은 대량학살을 합법화한다. 통신원들은 수동태로 우리를 죽인다. 운이 좋으면 외교관들이 우리의 죽음에 우려를 표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범인을 비판하기는커녕 절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 학자들은 관망한다. 풍진이 가라앉고 나면 그제야,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에 관한 책을 쓸 것이다. 용어니 뭐니를 만들고. 과거형으로 강연을 하고. [……] 정작 당시에는 비난했던 것, 구태여 옹호해주지 않았던 것 — 우리의 저항 — 을 찬미할 것이다.”(19-20쪽)
같은 문장들이 많은 한국 독자들에게 잘 가닿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어요. 2023년 10월 가자 집단학살이 일어나기 이전의 제가 그랬듯(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인종청소가 시작된 것은 1948년이지만), 특정한 계기나 노력이 있지 않았다면 팔레스타인은 물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멀고 낯선 곳이기 쉬우니까요.
그렇지만 이 책의 말이 지닌 힘을 믿어보기로 합니다. ‘시적 정밀함’이라 표현하고 싶은 문체에 담긴 힘. 저자가 인종주의적이고 인종학살적인 수사, “절멸을 부추기는 수사”(77쪽), “시온주의 수사학”(209쪽)을 비판하듯, 언어가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재생산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요. 이 책이 “드론은 넘어갈 수 있지만 비유는 용납되지 않는다”(115쪽)라고 말하듯, 정착민 식민 국가는 드론 같은 첨단기술을 이용해 체계적이고 물질적인 폭력을 퍼붓는데 약자의 ‘언어’는 그 폭력의 빌미인 양 취급되고, 소수자의 언어적 표현이 미치는 영향력은 말도 안 되게 과장되곤 합니다. 또한 엘쿠르드는 팔레스타인인을 비인간화하는 비유와 상징을 말하며, 시인인 자신도 비슷한 우의(寓意)를 써 글을 꾸며온 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또는 그럴수록 말과 글을 다르게 사용하고 정련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죠. ‘송곳니 뽑힌 인간’의 말이 아니라, 식민주의를 받아들인 은유가 아니라, 때로 곡해되고 잠시 외면받을지라도 부정의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언어를 찾고 활용할 방법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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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우리 역사에서 가장 피 냄새 짙은 장에 접어들면서, 유구한 병적 상관 작용이 한층 두드러지게 되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순교자가 늘수록 연단도 는다. 서구와 아랍 세계 곳곳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충격적인 수준의 폭력과 억압, 말살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언론, 문화, 학술, 정치 영역의 진보적인 일각에서 ‘팔레스타인’은 특정인들을 위한 사회적 통화(通貨)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허용 한계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11-12쪽).
- “4. [……] 요즘은 작금의 사태를 ‘전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유행이지만, 그 이상으로 그것은 실존적인 문제다. 삶이 위험에 처한 이들, 기꺼이 (더 잦게는 마지못해) 희생하고 유려하든 아니든 지식을 생산해 이 순간을 빚어내고 있는 이들은 주역으로 여겨지지 않고, 그저 고통, 예속, 혹은 때늦은 깨달음의 인류학적 현장으로 치부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분쇄되고 비가시화된 계급들 — 내가 충성을 바치는 계급들 — 을 역사화되는 대상이 아니라 역사를 만드는 이들의 자리로 옮겨놓고자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세계 사이의 간극에 다리를 놓는 데 그치지 않고, 고국과 디아스포라 사이의 긴장에도 개입하고 싶다”(12-13쪽).
- “8. 마지막으로, 책 전반적으로 남성 대명사가 과다하게 쓰인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여성과 아동’으로 축소되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성과 아동에게서 주체성을, 그리고 정치적으로나 혁명적으로 기여할 여지를 빼앗는 일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남성을 한층 더 악마화해 죽어 마땅한, 애도할 가치가 없는,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 안길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일이다. 종종 ‘팔레스타인인’(the Palestinian)을 가리켜 ‘그’(he)라는 말을 썼는데, 독자로 하여금 팔레스타인 남성과 얼굴을 맞대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자가 그 복잡하고 모순적인 집단과, 그리고 그저 우리 가운데 온화하고 관대하게 여겨지는 이들만이 아니라 — 아버지들만이 아니라 — 투사들과도 씨름하기를 바란다”(14-15쪽).
- “비인간화의 결과들은 우리가 어떻게 인식되는지뿐만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서도 드러난다. 그것은 크나큰 것일 수도, 미묘한 것일 수도 있다. 한 사람 속에서도, 공동체 속에서도 나타난다. 속을 파고드는 무단 침입. 비인간화하는 이들의 잔혹성은 우리 거실에까지 쫓아와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에 대한 개념을 세우고 아이들을 기르고 제도를 만들지를 정했다. 보도국과 대학에 떼로 몰려들었다. 기도실을 침략했다. 병원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우리의 가슴을 두려움으로,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는 두려움으로 채워버렸다. 그 두려움은 우레 같던 선언들을 익명의 속삭임으로 바꾸어놓았다”(30-31쪽).
- “언어는 점령당한 골란 고원과 시리아의 나머지 지역을 가르는 경계지대보다 더한 지뢰밭이었고,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우리를 신뢰 못 할 존재로 만들 폭탄 같은 말을 실수로라도 밟지 않기를 바라며 그 지뢰들 사이를 이리저리 팔짝거리며 다녀야 했다. 틀린 말을 쓰는 일에는 사물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 같은 힘이 있었다. 농담조로든 화가 나서든 틀린 말을 뱉으면 군화, 총탄, 몽둥이, 멍,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틀린 신념을 갖는 것은 훨씬 더 위험했다. 그랬다간 그런 잔혹 행위를 당해도 싼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빼앗긴 특권은 시민권, 자결권, 이동의 권리만이 아니었다. 단순한 무지마저도 사치였다”(113-114쪽).
- “팔레스타인인은 그가 자궁을 나오는 그 순간 ‘아이가 아니게 된다’(unchilded) —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는 기계 장치’에 의해 아동기에서 내쫓겨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인 동시에 위험천만한 시한폭탄으로 취급받는다. 팔레스타인인은 처음으로 창살 너머의 삼촌에게 말을 걸거나 고모에게 양철 지붕에 관해 묻거나 거리 표지판에서 지워진 글자들을 해독해보려 할 때 아이가 아니게 된다. 아니면 콘크리트 배관 옆에서 아버지를 껴안고 지금 들리는 폭음은 그냥 불꽃놀이 소리일 뿐이라고 혼잣말을 할 때. 아니면 해변에서 축구를 할 때. 팔레스타인 아동은 이런 경로를 따라가다 어디에선가, 살해당한 제 또래 친구를 두고 쓰인 ‘합법적으로 죽임당한 아동’이라는 말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어느 예일대 교수는 《애틀랜틱》에 어떻게 ‘아동을 합법적으로 죽이는 것이 가능한지’에 관한 칼럼을 쓸 것이다. 그리고 저격수는 명령을 따른다”(160-161쪽).
- “나캅에서는 팔레스타인 베두인족의 뿌리를 뽑고 독일산 소나무를 심는다. 실완에서는 점령군이 가옥을 허물고 성경 판타지를 실현한다. 셰이크 자라에서는 인종 청소가 ‘부동산 분쟁’의 탈을 쓴다. 베이타에서는 정착자들이 병사들을 대동하고 언덕 꼭대기에 전초기지를 짓는다. 마사페르 야타에서는 어느 이스라엘 대법관 — 그 역시 피점령지 서안의 정착자다 — 이 팔레스타인인 수천 명을 조상 대대로 살고 경작해온 땅에서 쫓아내는 판결을 내린다. 온갖 약탈품 중에서도 언제나 땅이 — 따져볼 것도 없이 — 으뜸이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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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이라고요?
🔴 이기준 디자이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십대를 통과하는 내내 헤비메탈과 록이 거의 전부였던 제 음악 세계에 재즈라는 신대륙을 발견하게 해준 사람이 마일스 데이비스거든요. 적어도 제게는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 뒤표지의 카피 대로 ‘지도’ 역할을 한 셈이지요
<Kind of blue>는 제가 산 첫 시디입니다(헤비메탈과 록은 주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워크맨으로 들었습니다). 뭘 알고 산 건 아니었습니다. 어디선가 우연히 재즈를 들었는데 이런 게 재즈라면 더 들어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음반 가게에 갔습니다. 주변에 재즈를 듣는 사람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할지 망망대해를 마주한 심정이었습니다. 당시 음반을 고르려고 쓰던 방법은 무작정 앨범 표지를 훑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가수나 밴드의 이름, 로고, 앨범 제목, 커버 아트 등을 탐색하다 ‘영혼의 주파수’가 맞으면 샀거든요(이런 육감은 쓰면 쓸수록 발달하는 것이라 쉬이 음원을 검색해서 들을 수 있게 된 지금은 퇴화한 듯합니다).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이름도, <Kind of blue>라는 앨범명도 멋있어서 골랐습니다. 공연장에서 찍은 듯한 짙고 푸른 표지 사진도 마음에 들었고요. 첫 곡을 틀자마자 이가 시리고 소름이 돋을 만큼 촤악 스미더군요. 특히 비 오는 날의 BGM으로 그만이었습니다. 이 앨범의 정체가 야릇합니다. ‘Columbia Jazz Masterpieces’ 시리즈로 나온 것인데 당시 한국에서 찍은 음반에만 한시적으로 사용된 사진인지 이와 같은 표지는 그날 이후 어디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다음 고른 앨범이 <Bitches Brew>였습니다. 당연히 ‘영혼의 주파수’ 판별법으로 골랐지요. 그런데 이게 뭐야? 선율은 잡히지 않았고 물감을 무작위로 떨어뜨리듯 소리 방울을 여기저기 흩뿌린 뒤엉킨 소리로 들렸습니다. 끝까지 듣지 못하고 처박아뒀습니다.
20년쯤 지난 어느날 <A Tribute to Jack Johnson>을 듣고 마일스에 대한 생각이 뒤집어졌습니다. <Relaxin’ with the Miles Davies Quintet>, <Workin’ with the Miles Davies Quintet>, <Cookin’ with the Miles Davies Quintet>, <’Round about Midnight>, <Bags’ Groove> 등을 녹음한 부드러운 연주자에서 몸 구석구석을 자극하는 찌릿하고 날카로운 연주자로 새로이 자리잡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 음악 청취 흐름이 여러번 바뀌었고 마침내 오랜 세월 처박아 두었던 <Bitches Brew>를 찾아 듣는 귀가 된 것이겠지요.
책 작업을 하면서도 가장 자주 들은 건 <Jack Johnson>, <In a Silent Way>, <On the Corner>, <Bitches Brew> 등이었고, 자연스럽게 표지 역시 땀내 뽕뽕 나고 뭔가 흐물흐물하면서 뾰족해야겠다는 구상을 다져가던 중 몇 해 전 겪은 일이 떠올랐습니다. 스피커를 보러 다닐 때였는데요, 한 가게에서 듣고 싶은 거 없냐기에 마일스 데이비스를 요청했더니 “그 시끄러운 거? 난 영 못 듣겠던데…” 하더라고요. 여기에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앨범 가운데 하나가 <Kind of blue>라는 사실까지 포개져 ‘음, 더 다양한 독자를 품으려면 표지는 역시 시원하고 여백이 그윽한 <Kind of blue> 풍이여야겠지…’ 하는 쪽으로 급선회했습니다.
표지의 마일스 사진은 두 가지 별색을 겹쳐 찍었는데요, 어쩌면 정체가 묘연한 <Kind of blue>의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앨범 표지 일화를 덧붙입니다.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 처음 보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앨범을 발견했는데 제목을 보니 ‘A Tribute to’가 빠진 <Jack Johnson>이었습니다. 제가 익히 보아 온 표지가 아니었기에 또 하나의 정체불명 버전일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일었지만 아트워크가 아름다웠으므로 굳이 검색하지 않고 일단 샀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아는 표지이자 시중에 많이 떠다니는 표지는 재발매반의 것이고 그날 산 표지가 오리지널 버전이더군요. 이 표지가 떠돌았다녔다면 영혼의 주파수에 잡혔을 테고 그러면 이 앨범을 훨씬 일찍 접했을 거란 아쉬움이 들었을 정도로 멋진 표지입니다. 자서전이 <Kind of blue> 만큼 팔려 2쇄를 찍는다면 ‘전기(電氣, electric)’ 풍 표지로 바꾸자는 제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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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음 (寸陰)
매우 짧은 동안의 시간
“기자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촌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홍한별 옮김, 반비, 2016,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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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의 <씨너스> 감상기에 도착한 답장!
“<씨너스>에서 편집자님만 몰랐던 사실! 주연 배우가 1인 2역이라는 사실이지요?? 정답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저는 심지어 쌍둥이 첫 등장에 둘이 형제냐고(?) 물어보는 장면에서 ‘에이… 너무 다른데 뭐 저런 질문을 해.ㅎㅎ’라고 생각했답니다. 나중에 팟캐스트를 듣다가 1인 2역 연기가 압권이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ㅋㅋ 혹시 스모크와 스택이 동일 인물이라는 걸 몰랐다는 거 아닐까요? (고백하자면 제가 그랬습니다.. 마이클 B. 조던이 나온 영화를 하나도 안 봤던 것이지요.) 연기와 분장을 어쩜 그렇게 기가 막히게 했는지! 첫 등장에 담배를 주고받는 장면도 기깔나게 만들어서 알 수 없었네요.^^;; 저도 올해 3월에 4회 차 관람을 했어요. 원래 뱀파이어나 좀비물을 싫어해서 아예 볼 생각이 없었는데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작품들 위주로 3월에 보다가 <씨너스>에 홀렸지 뭐예요. 그래서 라이카시네마에서 3회, CGV 박찬욱관에서 1회, 해서 총 4회 관람했답니다. 제 인생에 처음 일어난 일이었어요. 영화관 N차 관람이란 것을 제가 하게 되다니! 무엇보다 음악이 너무너무 좋아서 라이카시네마에서의 관람이 정말 행복했답니다. N차 관람 해보니 왜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거듭할수록 새롭게 보이는 장면들이 있었어요. <씨너스>를 뒤늦게 보신 분들이 있다니 신나서 이렇게 떠들게 되었네요. 제 주변에는 본 사람들이 없거든요.ㅠㅜ 이 영화 덕분에 블루스의 역사 + 흑인 역사도 알게 되어 유익했답니다. 마티의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도 봐야겠어요! 재미있는 소개 감사해요 :)”
ㄴ 헉, 맞습니다!! 바로 맞히시다니, 이렇게 공감하실 줄이야!🤣 영화를 보고 나서 팔랑을 놀렸던 걸 사알짝 반성했어요. 그런데 팔랑은 그 둘이 완전 다르게 생겼다고 지금도 주장 중이에요.😉 공유해주신 후기 덕분에 <씨너스>는 마티에게 더더욱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됐습니다. 구독자 한마디 또 자주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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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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