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천 받기를 매우 반가워합니다만 거꾸로는 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잘 몰라서요. 그러나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감화를 넘어 정화된다는 각성은 확실히 새겨져 있습니다. 좋은 책, 훌륭한 사람을 구독하듯 가급적 자주 좋은 영화를 봐야 한다. 머리가 생각이 영혼이 썩지 않으려면.
그리하여 연희동 라이카시네마에 동료들과 띄엄띄엄 앉았습니다. 평일 조조 재상영 <씨너스: 죄인들>을 만나기 위해 객석을 채운 관객은 열 명 남짓. 그 중 절반이 우리였으니 광활한 객석 어딘가로 각자 흩어져 화면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tmi: 우리 서로 꽤 가깝지만 기차표도 앞뒤로 끊는 쎈스쟁이들) 원래 작년 봄 즈음에 개봉을 했었다 하는데 어쩌다가 모두 그때 못 본 거예요. 이런 일이 드문데...
아니, 스포 없어요. 예매하실 때 포스터도 자세히 보지 마시라고 권해요. 주말까지 신촌, 연희동 쪽에 상영하는 곳이 있어요. 소규모 극장 예매는 다들 디트릭스를 이용한다네요. 우리 구독자님들은 이미 아실 듯하지만. 저는 동료들이 일제히 '그거 보고 싶었는데 못 봤어.'라는 문장만으로 바로 고고.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 출간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니 구절구절이 떠오르더라고요. 저는 마일스 자서전을 통해 방대한 재즈의 지도를 제법 명징하게 그려볼 수 있었는데 그런 수확도 수확이지만, 그보다 재즈가 백인 세계에서 돈이 될 때 흑인 뮤지션들 덕분에 메이저 레이블들이 승승장구하고 수없이 앨범들이 녹음될 때 연주자들이 무대에서조차 어떤 인종차별과 수모를 겪는지, 재즈가 왜 흑인의 것일 수 있는지를 아주 가깝게 읽을 수 있었는데요. 어제 영화를 보며 마일스의 분노와 투쟁,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것들에 대한 얘기들이 스크린에 자주 겹쳤습니다.
"우리 일가에 예술가나 사업가, 전문직 종사자, 음악가 등 특별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셨거든.
노예제도가 끝나기 전 옛날에는 농장주를 위해 연주를 했다고 해.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그때 데이비스가家 사람들은 클래식 음악을 연주했다더라고.
그게 바로 노예제도 폐지 후에 아버지가 음악을 연주하거나 듣지 못하게 된 이유지."
"오늘날에도 변한 건 하나 없어. 봐봐, 좆같잖아. 어쨌든 이 일에 관한 기억이 내 인격 형성에,
내가 백인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물론 다 그런 건 아냐. 위대한 백인들도 있으니까.
그치만 그 당시 흑인들을 개돼지처럼 몰아 쏴 죽인 걸 생각하면 정말. 집에 쳐들어가 쏴 죽이고 아기와 여자까지 쐈지.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 집에 불을 지르고, 흑인 남자들을 가로등에 매달아 죽이기도 했고.
어쨌든 거기서 살아남은 흑인들이 그때 얘기를 들려주곤 했어.
내가 이스트세인트루이스에 살 때 알던 흑인들은 1917년에 그 미친 백인들이 한 짓을 절대 못 잊어."
<씨너스: 죄인들> 꼭 놓치지 마시길. 두 번 보세요.
덧. 동료들과 등장인물에 관한 수다 중, 저만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저에겐 충격적 청천벽력이었는데, 모두들 '어떻게 그걸 모르냐'며 황당무계 대폭소를 터트렸어요. 그게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