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지나 본격 가을로 접어들었습니다. 2027년 벽걸이 달력 선물을 받고는 화들짝 놀랐어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2027이여, 조금만 천천히 오시길. 왜냐면 마티는 지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신간 소식이 줄줄 이어질 거거든요.
그리하여 오늘의 신간은 분량도 내용도 웅장한 『바그너주의』입니다. 번역만 장장 3년이, 편집에 거의 1년이 걸린 『바그너주의』는 촘촘한 내지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1120쪽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2단 조판에, 서체 크기가 매우 작음에도 ‘찾아보기’만 63쪽에 이르는 이 책의 끝에 자리한 옮긴이의 글 말미는 이렇습니다. “한 세계의 끝을 가본 이만 쓸 수 있는 책이다.”
앞으로 각주*로 몇 회에 걸쳐 『바그너주의』 읽기를 보내드리려 합니다. 한 편씩 천천히 따라와주시길요. 필시 평생의 광맥이 될 겁니다.
더불어,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발행하고 마티가 유통하는 건축 무크지 『미로』의 6호 발간 소식도 전합니다. 여섯 번째 제호는 ‘유형’입니다.
『바그너주의』 읽기 ① 바그너와 니체
60밀리리터 책등의 존재감!
“신은 죽었다”라고 말한 철학자 니체에게도 한때 신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바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다.
1868년 라이프치히에서 스물네 살의 문헌학도 니체는 쉰다섯의 바그너를 처음 만난다.
두 사람은 쇼펜하우어라는 공통 관심사로 금세 가까워졌다. 이듬해 바젤 대학 교수가 된 니체는 루체른 호숫가 트립셴에 있던 바그너의 집을 드나들며 가족처럼 지냈다. 그의 첫 책 『비극의 탄생』은 바그너의 음악에서 그리스 비극이 되살아난다고 노래한 열렬한 찬가였다.
균열은 1876년에 드러난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 《니벨룽의 반지》 전곡이 처음 무대에 오른 해.
황제와 귀족, 부자들이 몰려든 축제는 니체가 꿈꾼 ‘미래의 예술’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축제 도중 숲으로 달아났고, 훗날 그때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볼 수 없었다”라고 썼다. 바그너가 ‘독일인’으로 번역되어버렸고 바그너주의자들이 바그너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별은 쓰라렸다. 바그너는 니체의 주치의에게 니체의 병이 자위행위 탓일 거라는 편지를 보냈고,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니체는 깊이 상처받는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후 니체는 바그너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1883년 바그너는 니체의 『즐거운 학문』을 읽고 “역겹다”고 했다. 그러고 열흘 뒤 베네치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니체는 심란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안도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의미에서 바그너의 진정한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니체는 고대 그리스인이 경쟁, 곧 ‘아곤’을 통해 위대해졌다고 보았고, 그런 그에게 바그너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거인이었다. 저자 알렉스 로스는 이 싸움을 ‘바그너 되기’라고 부른다.
마지막 장면은 서늘하다. 1889년 초 토리노에서 정신이 무너진 니체는 코지마 바그너를 “아리아드네 공주”라 부르며 편지를 보냈다. 자신이 전생에 붓다, 디오니소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볼테르, 나폴레옹이었고 “아마도 리하르트 바그너”였다고. 요양원에 들어간 뒤에는 “내 아내 코지마 바그너가 나를 이리로 데려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바그너주의』는 이 애증의 드라마를 가십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왜 그토록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가 바그너에게 끌렸고 또 등을 돌렸는가. 책은 그 거대한 지도를 펼쳐 보이며, 그 첫 장면에 니체를 세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정보! 『바그너주의』는 아직 제작 중입니다! 10월 15일 안팎부터 유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미로 6호: 유형』 미리보기
“『미로』 6호는 이 유형론이 한국에서 무엇을 만들어내고 어떤 입장들을 주조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 […] 도시의 흔적을 지우는 데 더 몰두하고, 개인의 생애보다 짧은 건축물은 물론이고 그런 도시마저도 흔한 한국에서 오랜 시간의 퇴적물인 유형이 어떻게 작동하고 변신하는지 궁금했다.”
― 「6호를 엮으며」 중에서
이번에도 귀엽고 알쏭달쏭하며 조금 기괴해서 재밌는 이미지가 담긴 면지로 시작합니다.
“이번 호에 실린 글 상당수는 건축가들의 몫이어야 했다. 6호에 글을 실은 건축가 모두 유형론의 역사적 배경은 물론이고, 한국의 도시에 적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과 풀기 어려운 난점을 날카롭고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유형을 이해하는 입장과 이를 사용하고 적용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한국의 특정한 시대적 조건이 만들어낸 여러 건물들을 유형으로 읽는 일에서부터, 보편적이고 자율적인 건축을 가능케 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채롭다.”
―「6호를 엮으며」 중에서
‘6호’ 도판의 성격에 맞춰 내지를 컬러로 인쇄했습니다. ‘유형’에 관한 다양한 접근 방식과 논의를 담은 열네 편의 글과 그 사이사이 배치된 매우 다양한 종류의 도판이 엮여 (때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도) 시원한(?) 읽기가 가능합니다.
“건축을 건축가 개인의 창작물이 아닌, ‘인간이 겪어온 상황들의 위대한 표상’으로 바라보게 하는 틀이 바로 유형이다. 유형은 집단에 관한 것이며, 역사적인 동시에 현실발생적이다. [중략] 무엇보다 ‘해석의 도구로서의 유형’은 AI의 보급과 SNS상에 부유하는 이미지의 시대에서 건축가의 역할(obligation) 및 직능(profession)과 직결된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흐려지고 드로잉, 사진, 렌더링이 건축적 실체보다 앞서 소비되는 동시대적 조건에서, 전통적인 구축과 리얼리즘이라는 종착지는 방향을 상실했다. 이처럼 ‘더 실재 같은 제안’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건축가의 전문성은 오히려 기원적 실체, 즉 이미 존재했던 형상이자 논쟁의 여지가 없는 ‘유형적 구조’를 다루는 데 존재한다. 인공지능과 참조(reference)가 범람하는 시대에 본질적인 것은 결국 원형(original)의 문제기 때문이다. 이때 […] 유형은 건축을 단순한 ‘부동산 상품’이나 ‘개인의 기술적 결과물’에서 해방시켜, 사회-정치적 구조를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는 영역, 즉 ‘비평 가능성’의 장으로 끌어올린다.” ― 고재협,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