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본 콘텐츠, 돌아본 책, 선물로 준비한 50권의 책. 웹툰작가 돌배 님의 퍼블리 인터뷰에서, "이 넓은 우주에서 지극히 다른 서로들이 동일한 경험을 짧게 공유하는 착각을 '재미'라고 표현하고 싶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섯 번째 마티의 각주*는 이 레터를 열어봐 주신 여러분과 짧은 순간이나마 공유하고 싶은 콘텐츠를 모았습니다. 1. 편집자 눈에 밟힌 마티의 책 2권 2. 추석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콘텐츠 추천 3. 50권의 책을 선물로 준비한 이유 지금이 읽기에 적기 by 에디터 P 2015년 3월에 출간된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를 다시 들춥니다. 이 책은 일본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아즈마 히로키가 이끈 겐론 출판사가 발간한 무크지 『사상지도 β』 4호 1권에 해당합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불과 2년이 지난 2013년에 후쿠시마를 ‘관광지’로 만들자는 다소 황당해 보이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래서 1986년에 사고가 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을 모델로 삼아 관광을 떠났고, 그 결과물을 엮어낸 것이 이 책입니다. 마티의 편집자들은 이 엉뚱한(?) 시도가 굉장히 신선해보였습니다. 그 무렵은 국내에서도 폐허로 남아 있는 20세기의 공장과 산업시설이 힙한 장소로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어두운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을 방문하는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개념이 대중에게 퍼져나가던 때였습니다. 공장과 원전 사고지 사이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가 끼친 여진이 여전했고,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으로 국내에서 히로키의 인지도가 무척 올라가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이런 구도에서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가 어느 정도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히로키의 발상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 국내에는 전혀 없었습니다. 출판사로선 방사능이 여전히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관광을 가자는 주장 자체를 독자들에게 설득하는 데 실패한 셈입니다.
그런데 최근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아즈마 히로키의 책 『관광객의 철학』(리시올, 2020)은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의 입장을 아주 잘 설명해 줍니다. 물론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 서문에도 저자의 설명이 짧게 있습니다만, 자신이 왜 여행도 아닌 ‘관광’이란 개념을 전면에 부각시켰는지, 그리고 이 전략이 어디로 향하는지 전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관광객의 철학』은 이 공백을 완벽하게 메꿔줍니다. 물론 이런 사상적 배경 없이도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에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충분합니다. (또 신덕호 디자이너의 빼어난 디자인도 볼 만합니다. 다소 산만하게 편집된 무크지를 단행본으로 매우 매끄럽게 재구성해냈습니다.) 방사능이 아니더라도 코로나19 때문에 어디도 갈 수 없는 지금 (왓챠에서 볼 수 있는) HBO의 “체르노빌”과 『관광객의 철학』과 함께 체르노빌로 여행을 떠나기에 완벽한 때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관광객의 철학』은 편집과 디자인 모두 대단히 완성도 높은 책입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부제가 제목이었으면 더 좋았을까? by 에디터 S 『재생산에 관하여: 낳는 문제와 페미니즘』. 부제와 대제를 바꿨으면 더 많은 독자와 만났을까? 하는 푸념을 가끔 합니다. 제목을 정할 땐,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역사적으로 선취해온 '재생산'이란 용어를 더 다양한 주체들의 손에 쥐어주고 싶다는 큰 포부가 있었는데요.. 흥미진진한 책 내용을 어필하지 못했단 생각을 뒤늦게 합니다. 이 책은 보스턴리뷰에서 진행한 Once and Future Feminist 포럼 발제문과 토론문을 엮은 동명의 책을 옮긴 것으로, 비혼 여성, 레즈비언 커플, 트랜스젠더 여성이 아이를 낳고 싶어지는 욕망에 대해,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재생산의 주체로 호명되지 못했던 새로운 주체들의 재생산과 재생산보조기술에 대해 논합니다. 다루는 사례만 봐도 결코 지루하지 않은 책이예요. 구글, 페이스북은 여성 노동인력의 생산성을 오래 유지하고 독려하는 차원에서 ‘난자 냉동 시술’ 1회 비용을 지원하는데, 비혼 여성 사원의 참여율이 결코 낮지 않은 편이라고 해요. 레즈비언 커플은 정자를 공여받아 자신의 유전자가 새겨진 아이를 낳고, 트랜스젠더 여성은 외부생식기 재지정 수술을 받기 전 정자를 냉동하기로 결정하죠. ‘한밤의 식욕처럼 아이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찾아올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요. 이 숨겨진 주체들, 낯선 욕망들, 생경한 기술들에 응답할 ‘미래의 페미니즘’을 기다리며, 『재생산에 관하여』가 재발견되는 날이 당장 내일이길 기대해봅니다. (욕심쟁이) P. S. 며칠 전, 이화여대 여성학과 ‘생체권력과 재생산’ 과목에서 이 책을 교재로 선정한 걸 발견! 공부 모임에서 함께 읽으면 딱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자기 자리를 찾아간 걸까요? (but 전공서 절대 아님!) 연휴 동안 재밌는 콘텐츠를 보았습니다 🍏에디터S: 텔레비전 채널을 무심코 돌리다가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에서 멈췄습니다. 제목만 보면 언니의 백혈병을 낫게 할 살아 있는 항체로서 세상에 나온 동생에게 초점이 맞춰진 것 같지만, '어리고 아픈 사람'이 다가오는 죽음과 살길 바라는 가족들의 열망 사이에서 자기만의 선택을 준비하는 내용이었어요. '1분 후 계속'을 너댓 번 참으며 끝까지 볼 만큼 좋았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속 전희경 님의 글 「젊고 아픈 사람의 시간」이 떠올라 다시 뒤적여본 연휴 끝의 밤. 🧶디자이너J: 한국에서 드문 시즌제 드라마 <비밀의 숲 2>를 정주행했어요. 3년 전 방영했던 <비밀의 숲 1> 정주행을 한 달 전에 끝냈거든요! 곧바로 다음 시즌을 몰아보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시즌 2 내용이 조금 어렵게 느껴진 건 저만 그런가요?) 저의 연휴는 몰아보기의 향연이었습니다. 🍏에디터 J:
『배움의 발견』은 저에게 적잖은 서글픔과 좌절을 몰고 왔습니다. 잘못 도착한 여행지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듯한 뭔지 모를 찝찝함과 불안이 내내 가시질 않았는데, 며칠 지나니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이해하기 어렵고 형용모순인 가족의 애정, 끝없는 기도와 간증, 믿는 것을 뛰어넘을 수 없는 앎. 이 지속적이며 연속된 단절들이 너무도 낯익어서, 실은 한 켜만 걷어올리면 도처에 수두룩한 비극이 아닌가 싶어서. 먼 나라의 한 소녀의 성장기로 읽을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에디터P: 연휴 내내 듣지도 보지도 읽지도 않고, 밀린 원고를 썼습니다. 아직 밀린 것이 남았습니다.(😭) 🍷마케터J: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보기 시작했어요. 코로나 없이 로맨틱한 파리의 풍경과 릴리 콜린스의 사랑스러운 미소와 화려한 색감의 패션까지. 파리 가고 싶을 때마다 <미드나잇 인 파리> 돌려보던 분들이라면 꼭 도전해 보세요. 50권의 책을 선물로 준비한 이유 마티의 인스타그램에서는 #요즘읽는책 #책인증챌린지 이벤트가 진행 중이에요. 읽고 있는 책을 인스타그램에 인증하고 @matibooks를 태그하면 참여 완료! 어떤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든 상관없게 진행한 건 1) 요즘 여러분이 읽는 책이 궁금했고, 2) 챌린지를 통해 책 사진을 보게 된 누군가가 '오, 읽고 싶네' 하는 마음이 들기를 바라서였습니다. 이런 시기에 읽으면 더욱 재밌을 만한 랜선 여행 떠나기 좋은 4종, 슬기로운 실내생활을 돕는 3종의 책을 권하고 싶은 마음도 가득했고요. 이번주 일요일(10/11)까지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각주 다는 사람들 🍏에디터S ⚡️에디터J 🐶에디터P 🧶디자이너J 🍷마케터J 도서출판 마티 |
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