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사드립니다. 번역가 노시내입니다.
독자들께 편지를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서로 만난 적은 없어도 제가 작업했던 책들을 통해 여러분과 이어져 있다는 아련한 느낌을 받습니다. 번역자로서 글을 옮길 때 읽기 쉽고 이해하기 좋게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늘 염두에 두지만, 구체적인 독자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어떤 분들일까 조금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번역서가 아닌 수필집으로 찾아뵙게 되었는데요, 제 번역서를 읽는 분들과 제가 지은 글을 읽는 분들이 겹칠지 그렇지 않을지 궁금하고, 만약 거기에 교집합이 있다면 그 요인은 무엇일지 등등 새삼스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어느 정도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반평생을 외국 각지를 떠돌며 살았습니다. 요즘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맘때면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크리스마스를 맞는 화려한 축제 기분을 내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들이 그럴 뿐, 세상의 많은 나라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곳 파키스탄에 와서야 새삼 깨닫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지 않는 데다가, 또 마침 12월 25일이 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 무함마드 알리 진나(Muhammad Ali Jinnah)의 탄생일이어서 이날 파키스탄 사람들은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에 “해피 진나 데이”라는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새해에도 요란하지 않습니다. 평소보다 좋은 음식을 장만해 가족들과 즐겁게 식사하는 정도입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축제는 라마단 금식 기간을 마치고 벌이는 ‘이드 울 피트르’(Eid ul Fitr)와 이슬람의 창시자이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이드 밀라드 운 나비’(Eid Milad un Nabi)여서, 연말연시는 훨씬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저는 이슬라마바드에서 두 번째로 맞는 이 유난스럽지 않은 연말이 마음에 듭니다. 담담하게 한 해를 돌아보고 차근히 새해를 계획하기에 딱 알맞습니다.
이번 연말에는 운이 좋게도 올해 봄에 작업을 시작한 저서 한 권을 마침내 마무리해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거의 다 마쳤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2023년으로 해가 바뀌어 1월이 되면 제 세 번째 책 〈작가 피정〉이 출간됩니다. 『스위스 방명록』 이후 오랜만에 글을 쓰면서 긴장되고 어색하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매일 끈질기게 글을 써내는 일이 놀랍게 즐거웠습니다. 그동안 할 말이 의외로 많이 쌓였던 모양입니다. 짧은 시간에 300쪽 넘는 분량의 글을 쏟아냈습니다.
그동안 번역자 노시내의 정체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분들은 이번 저서에서 드러나는 저의 모습에 얼마간 호기심이 채워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능하면 가식 없이 솔직히 써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진정한 평가는 독자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 책을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그 어떤 의견도 환영합니다. 그런데 의견을 주시려면 먼저 읽어보셔야 하니, 읽으라고 압력을 넣는 셈이 되는군요. 맞습니다. 제가 그랬죠. 가식 없이 솔직히 말씀드린다고. 하하.
농담처럼 말했지만, 이제까지 제 번역서와 저서에 진지한 관심과 사랑을 주신 독자들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분에 넘치게도 친절한 말씀을 담은 격려의 메일을 받은 적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독자 한 분은 제가 쓴 책을 재미있게 보았다며 직접 쓰신 귀한 책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제 책들을 가이드북 삼아 빈과 스위스의 여러 도시로 여행을 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아낌을 받으니 기뻤습니다. 독자의 반응이 제게 도달하지 않더라도, 그저 제 손길이 닿은 책을 읽는 분들이 있다는 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은 따스해집니다. 또 그런 만큼이나 이번 책이 그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리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도 드는군요. 그러나 책을 쓰는 매 순간 진심을 담았으니, 이제 저는 세상에 내보낸 이야기에 책임은 지되 후회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책으로 이어져온 모든 독자들께, 그리고 앞으로 만날 독자들께 미리 감사하다는 말씀 올리며, 이 쌀쌀한 겨울을 따스하게 보내시길,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노시내 드림.
✱추신: 크리스마스와 무관한 도시 이슬라마바드의 반짝이는 야경에서 크리스마스를 연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쉽게 떨어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연결 짓는 버릇 때문이겠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그런 연상에서 고단한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덜고 일말의 따스함을 얻을 수 있다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채널예스에서 원고 여섯 편을 먼저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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