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알라딘에 "단한권 인쇄소"가 열렸다는 소식 들으셨죠? 각주 멤버들도 종종걸음으로 달려갔지요. 혹시나 우리 책이 있나 조바심이 나기도 했고, 결국 못 구해 아쉬웠던 그 책을 나처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을까 싶은, 친구찾기 앱에서 아는 이름을 찾는 느낌으로요.
편집자라면 저 깊은 속에 복간의 욕망이 늘 잔잔하게 찰랑거릴 겁니다. 할까, 말까, 누가 해주지 않을까, 응? 거기서 했다고? 아하... 마지막의 탄식은 반가움인지 아쉬움인지 안도인지 염려인지, 이 모든 것인지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준비한, 그리고 반갑게 다시 만난 '복간'을 소개합니다.
💥 이벤트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편않, 2023)에 저자로 참여한 🌱죽순이 ‘책의 날’을 기념해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을 선물로 드려요. 기대평 이벤트가 저 아래에 있으니, 스크롤스크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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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간에 진심, 교유서가 ‘어제의 책’ 시리즈
🔈모베
편집자들은 수시로 번역 저작권이 만료되어 절판된 책 가운데 재출간할 만한 책들을 찾아보곤 합니다. 특히 검증된 저자와 믿을 만한 번역자의 책을 찾으려 애씁니다. 그런데 절판한다는 건 저작권을 갱신하는 데 드는 비용과 제작비를 만회할 만큼 책이 안 팔릴 거라는 판단을 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절판된 사이 저자의 인지도가 올라가거나 책을 소화해낼 독자들의 역량과 관심이 올라가 있는지도 따져야 합니다. 이때는 적당한 절판 기간이 도움이 됩니다. 한국어판을 너무 빨리 내서 주목을 못 받은 경우도 제법 있거든요. 마티도 만지작거리며 고민을 하던 책이 제법 있습니다. 그러다 다른 곳에서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쉬움과 반가움이 동시에 들기도 하고요. ‘더 빨리 움직일 걸’하는 마음만큼이나 편집자 모드에서 독자로 태세전환할 때 생기는 느긋함이 교차합니다. 피터 게이의 『바이마르 문화』와 리처드 세넷의 『살과 돌』이 그런 책입니다.
피터 게이의 『바이마르 문화』 한국어판 초판은 1983년 탐구당에서 나왔습니다. 저자의 초기대표작인 The Enlightenment가 『啓蒙時代』가 (한글로 제목이 표기되지 않아도 괜찮던) 1978년 출간되었습니다만 피터 게이가 국내에 잘 알려진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서구 근대 문화사 분야의 대가인 만큼 저자의 책들은 이후 속속 국내에 소개되지만, 『부르주아 전』, 『모차르트』, 『프로이트』, 『모더니즘』 등의 번역은 200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바이마르 문화』는 꽤 이른 책이었습니다. 역자 조한욱 선생님이 채 서른 살이 되기 전에 번역하신 책이기도 합니다. 탐구당의 탐구신서는 가로 10.4, 세로 18.2센티미터의 작은 책입니다. 최근 작고 예쁜 책으로 손꼽히는 워크룸의 ‘제안들’ 총서보다 더 작은 문고판 시리즈입니다. 『바이마르 문화』가 탐구당총서 266권이니 상당히 많은 수가 나왔습니다. 찾아보기까지 빠뜨리지 않고 만든 책의 완성도는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면, 갈리마르, 주어캄프, 이와나미쇼텐 등의 문고판 시리즈 못지않을 텐데 아쉽습니다. 『바이마르 문화』의 새 한글판은 2022년 교유서가에서 같은 번역자의 개정을 거쳐 나왔습니다.
다른 한 권은 리처드 세넷의 『살과 돌』입니다. 이 책은 1999년 문화과학에서 나왔습니다. 저자가 영문판을 발간한 해가 1994년이니 한국어판이 꽤 빨리 나온 셈입니다. 국내에 번역된 최초의 세넷 책입니다. 이후 세넷 책은 꾸준히 번역되었고, 2010년 출간된 『장인』으로 독자군이 학술에서 대중교양으로 크게 넓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1970년작 『무질서의 효용』도 2014년 한국어판이 나왔습니다. 계간지 『문화과학』을 펴내는 문화과학사는 1990년대 중후반 미국을 경유한 프랑스이론이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수용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푸코와 들뢰즈 등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주요 경로였습니다. 『살과 돌』도 이 흐름 속에 있습니다. 세넷이 미셸 푸코와 교류하면서 쓴 책이 『살과 돌』이거든요. 1990년대 초 미국의 미술과 건축 등을 비롯해 문화연구는 푸코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24/7 잠의 종말』의 저자 조너선 크래리의 『관찰자의 기술』(Techniques of the Observer, 1992), 배형민의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The Portfolio and the Diagram, 2002: 1993년 완성한 글이 바탕) 등이 그렇습니다. (물론 푸코로 쉽게 환원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흐름이 그렇다는 거죠. 그리고 두 책 모두 현재 절판입니다. ) 『살과 돌』 복간본은 2021년 초판의 번역자 중 한 명인 임동근 선생님의 재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임동근 선생님은 ‘옮긴이의 말’에서 재번역으로 “그동안 발전한 우리의 지적 역량을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조한욱 선생님도 “잘못된 번역문을 수정하고 미숙했던 표현을 가다듬을 기회”였다는 비슷한 소회를 ‘옮긴이 서문’에 남깁니다. 이는 단순히 겸양의 표현이 아닙니다. 20~40년이 지나 복간된 두 책은 “우리”의 향상된 지적 역량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제 독자들이 피터 게이와 리처드 세넷의 책을 훨씬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예전과 ‘같은’ 책이지만 꽤 ‘다르게’ 읽히는 건 좋아진 번역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읽는 이의 역량도 함께 향상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2023년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정확히 더 비판적으로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다시 살려야 할 책이 무척 많습니다. 더 많은 책이 새 생명을 얻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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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옛날처럼 만들어달라구!”
: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을 복간하는 이유
🦻팔랑
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 복간이 마티 출간 목록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꽤 오래 그렇습니다.🥲 이 대단한 자서전의 내막을 익히 아는 분들이 많으시리라 짐작됩니다. 이미 판별로 소장하고 계신 분들이 적지 않으시리라는 것도, 그럼에도 “다시 옛날처럼 만들어달라구!” 하는 애독자들의 한숨소리도 건너건너 자주 듣습니다.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은 1990년에 전미도서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구술을 담당했던 퀸시 트로프의 부축을 받으며 시상대에 힘겹게 올랐던 마일스는 이듬해인 91년에 타계합니다. 국내에는 1999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는데요, 이후로 2003년도에 첫 개정판이, 2013년에 합본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개정판까지 모두 성기완 선생님 번역으로 집사재에서 출판되었어요.
저 또한 문장이 대대적으로 바뀐 이후의 첫 개정판(2013년 판)을 읽었습니다. 어느 여름 밤에 자서전의 한 부분을 뒤적이며 「Kind of Blue」를 듣다가 그가 이끌던 후반기 식스텟 멤버들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는지 궁금해서 자서전을 열었는데, 아뿔싸! 못 찾았어요. 찾아보기가 없더라고요. 재즈 선수라면 한두 번 뒤적거려 찾아 냈어야 하는데, 저는 여태 선수 반열에 오르지 못해 레코딩 당시 그의 인맥 흐름과 앨범 재생 사이에 지나치게 긴 간극이 발생하는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다음 날 성기완 선생님께 연락했고, 오랜 상의와 공감 끝에 ‘복간이라는 숙제’가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원고 분량이 최소 3500매에 달하는 이 원고의 애초의 ‘말투’로 다시 돌아가는 쉽지 않은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음반 활동에 시집 출간에, 대학 강의에 눈코 뜰 새 없으신 성기완 선생님이 좀 더 힘을 내주시길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행의 절반 즈음 왔어요.
첫 문장만 보여드릴게요.
✦ 2013년 발행 개정 1판
“내가 살면서 가장 짜릿한 흥분-건전한 의미에서-을 느낀 것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찾아온 디즈와 버드의 연주를 들었을 때이다. 때는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18살이었고 막 링컨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였다.”
✦ 2023년 복간 작업 중인 첫 문장
“들어봐봐. 살아생전 내가 제일 뻑 갔을 때가, 물론 옷 걸친 상태에서 말야, 미주리주 세인트 루이스에 디즈와 버드(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의 별칭)가 와 가지고 연주하는 걸 들은 때야. 1944년이니까 존나 옛날이지. 나는 18살이었는데, 막 링컨고등학교를 졸업한 때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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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될 것 같은 이유만큼 출간하고픈 이유도 많아서
: 『함락된 도시의 여자』 복간 비화
🌱 죽순
아마존을 ‘서점’이라고 인식하는 저는 아마존의 “이 책을 구매한 사람이 구매한 책”과 “이 책을 구매한 사람이 클릭한 책” 보기를 대단히 즐깁니다. 그러다 구매평 1천 개 이상에 별점 4.0이 넘는 책을 마주치면 흥분하죠. A Woman in Beriln이 그랬습니다. 두근두근. 한국에서 출간됐을까? 두근두근. 온라인 서점에서 원서 제목을 검색하자, 따란- 『베를린의 한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2004년에 헤토에서 출간됐더라고요. 그러나 절판.
도서관으로 바로 달려가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우왓, 이런 책이 있었어? 왜 몰랐지? 복간, 해볼까? 그러고 한참을 묵혔습니다. 절판된 번역서를 복간하는 것은 꽤 미묘한 사안입니다. 20년 전 책이 20년 전에 나와 절판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지금도 유효한 주제일까? 번역을 새로 해야 할까? 출간 당시 몇십 만 부 팔렸던 건 아닐까? 별별 안 될 이유가 88올림픽 비둘기 떼처럼 머릿속에 날아 오르더라고요.🕊️🕊️🕊️
혼자 고민하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아서 도서관에서 다시 책을 빌려 🦻팔랑에게 건넸습니다. 하루 만에 완독한 🦻팔랑이 “복간해야 될 책인데?”라며 힘을 실어주었어요. 그 뒤로는 지체 없이 움직였습니다. 기존 한국어판 번역을 맡으셨던 염정용 선생님을 만나 재출간을 상의하고, 저작권사와 계약하고, 조판, 교정교열, 표지 디자인, 출간. 슉슉슉.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2018)의 탄생 비화입니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반부인 1945년 4월 20일부터 6월 22일까지 익명의 여성이 쓴 일기를 엮은 것입니다. 남의 집 다락방에서 찾은 노트에 단어, 약어, 조각 난 문장을 적어두었던 것인데, 종전 후 정리해 1954년 미국에서 처음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정작 독일에서는 2002년에야 나옵니다).
복간본에서는 기존 한국어판에서 조금 아쉬웠던 표현을 번역가와 함께 대폭 수정했고, 2017년 #미투운동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이 복간되는 의미를 알리고 싶어 편집 후기를 실었어요. 재고 있으니 걱정 마시고 장바구니에 담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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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살 수 있다면
🌱죽순
서점 알라딘이 ‘단한권 인쇄소’라는 서비스를 오픈했습니다. 아직 출판권이 살아 있지만 여러 이유로 지금은 유통되지 않는 책들을 주문자에게만 인쇄해 보내주는 서비스입니다. 절판이 아니라 품절 도서만 가능한 것이니 이 점 유념하시길!
‘단한권 인쇄소’를 통해 구입하고 싶은 도서를 댓글로 다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길래 끝까지 죽 살펴보다가 마티 책도 몇 권 발견했어요. 그 책들에 대한 소식을 몇 자 여기 적어봅니다.
✦ 교향곡: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는데 많이 늦어지고 있어요. 개정판 출간은 조금 먼 소식이 될 것 같으니, 전자책을 이용해주세요.
✦ 건축, 전시, 큐레이팅: 재제작 계획이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정림문화재단 웹사이트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어요.
✦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 이 책은 한국어판 출판권 계약이 만료되어 절판이에요. 단한권 인쇄소를 통해 구하시는 건 불가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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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대명절 ‘책의 날’ 기념🎊
『책책책책』 + 『책책책』 기대평 이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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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3일은 ‘책의 날’입니다. 출판인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명절이죠! 하여, 마티에서 출간한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 책』과 출판공동체 편않의 신간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 기대평 증정 이벤트를 해볼까 해요.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 책』은 종이책에 대한 감상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책을 오랜 역사에 걸쳐 변해해온 기술이자 예술로 바라봅니다. 사물, 내용, 아이디어, 인터페이스로서 책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장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책』은 책과 출판의 세계에 속한 8명의 저자들이 각자 ‘책에 대한 책(들)’을 고르고 읽은 후 쓴 글을 엮은 서평 에세이 모음집이에요. 🌱죽순이 여기에 저자로 참여해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 책』과 관련해 글을 썼습니다.
구글 폼에 두 책에 대한 기대평을 남겨주시면, 세 분께 위의 두 책을 모두 보내드릴게요!
📍기간: 4월 20일(목)부터 4월 26일(수)까지
📍발표: 4월 27일(목), 선정되신 분께 개별적으로 연락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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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마티
matibook@naver.com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101, 2층 (0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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