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노트: 불안과 우울, 공적 감정들
🦻팔랑
열심히 일하고 자기계발에 치중하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올 거라는 희망, 보이지 않는 긍정을 어떻게든 체화해 미래에 매달리는 현시대를 로런 벌랜트는 “잔인한 낙관”으로 명명했지요. 마티에서 곧 나올 앳 시리즈 5권 『불안과 우울, 공적 감정들』(가제)은 로런 벌랜트의 연구와 맥을 같이하는, 앤 츠베트코비치의 ‘우울 연구’입니다. 로런 벌랜트, 앤 츠베트코비치 등을 중심으로 활동가, 연구자, 예술가들이 모여 비판 이론과 정치 활동을 연결한 필 탱크(Feel Tank) 그룹은 2000년대 초반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정치, 사회의 권력 구조가 문화, 예술의 변화뿐 아니라 집단 속 개인, 개인의 생활, 개인의 감정, 느낌에까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즉 감정과 정동을 분석 대상이자 연구방법으로 삼는 거죠.
『잔인한 낙관』이 실패한 정치 속에서 도달이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주체를 직시하도록 하면서 이론화 과정을 면밀하게 보여준다면, 『불안과 우울, 공적 감정들』은 “초조함, 불안, 압박, 우울 등이 개인적인 느낌이 아님을, 오히려 지극히 공적인 감정”임을 드러냅니다. 그럼으로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붙들린 상태에 이른 마음과 몸이 회복되도록 하는 의지와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이 감정들이 어떻게 정치적 변화의 씨앗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를 파고듭니다.
간단히 말하기 매우 어려운 연결들이지만, 간략하게 시작의 장면을 떠올리자면 이렇습니다. 어제 국군의 날 임시 공휴일이었잖아요. 도열한 장병들의 행진과 올림픽 성화봉송에 준하는 감복을 억지스럽게 끌어올렸다가 감정을 내리누르는 지극히 쇼맨십이 느껴지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한 식당에서 원치 않았는데도 꽤 오래 듣게 되었을 때, 그리고 장병들의 “대통령 만세” 복창이 이어졌을 때, 몇몇 테이블의 한숨 소리와 또 다른 테이블의 진심 어린 감동 사이에서 고통과 수치를 연달아 느끼는 동시에, 2부 교정지를 빨리 봐야 하는데 임시 공휴일이 되어버려 갑작스레 노인센터도 학교도 휴업을 해 돌봄 노동으로 복귀해야 해서 마음의 촉박함만 가중이 된 시점에, 엊그제 발치한 사랑니 옆의 온전한 어금니 아랫부분에서도 시린 기운이 흠칫 느껴져 어깨를 떨면서 음식물을 씹다 말고 삼켜버린 채 정신이 아득해졌죠. 이 초조함과 울적함이 나로부터 기인한 것일까요?
앤 츠베트코비치는 9/11, 허리케인 카트리나, 트럼프 당선 등등의 사건과 상황 속에서 학기 시작 (또는 중요 학술 세미나) 후 학자와 연구자들이 자신의 글와 연구를 전개하지 못한 채 아주 오랫동안 우왕좌왕하는 감정에 휘둘린 일화를 소개합니다. 앤 또한 박사학위논문 심사를 앞두고 아주 오랫동안 이 '답보상태'에 빠져버립니다.
앤의 사유와 분석은 비평이나 사회학적 분석을 완전히 넘어, 훨씬 더 첨예하고 깊은 장르와 사례로 나아갑니다. 소설을 비롯한 문학에서 일기로, 그리고 회고록으로, 그리고 흑인 노예의 역사와 그 아카이브의 부재로 생성되고 깊어지는 (우울의) 역사로까지.
앤이 퍼블릭 필링스 그룹과 오랫동안 깊게 연구하고 연대해온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울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완화할 수 있는 삶을 연습하고 시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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