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103호에서도 21세기 최고의 책 목록을 이어갑니다. 여성 청년 필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마감을 했습니다. 곧 출간될 책의 표지를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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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고의 책 10권
오늘은 2010년대를 거쳐 청년기를 통과해가고 있는 두 여성 필자, 각각 편집자와 연구자로 일하고 있는 마티의 동료에게 최고의 책 10권을 소개해달라고 청탁했습니다.
🌄 새벽
인문사회 분야 단행본 편집자로, 인문잡지 『한편』과 ‘탐구’ 시리즈를 만들고 있습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한 바 있고, 국내외 최신 인문서를 ‘문체’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책을 집필 중이에요.
1. 빌렘 플루서, 『그림의 혁명』, 커뮤니케이션북스, 2004. 지금의 세계를 이해하는 매력적이고 또 혼란스러운 방법론인 매체 연구 중에서도 가장 관념론적이며 스케일이 큰 플루서의 책 중 하나. 이미지의 시대가 2000년 만에 다시 온다는 그의 예언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오히려 텍스트 편집자를 북돋는다. “신기하게도 새로운 기술은 문자 읽기를 그것의 원래의 행위로, 다시 말해 엘리트적이고 관조적이며 여유만만한 대담한 시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2. 가라타니 고진,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박유하 옮김, 민음사, 2005. [구판 절판]
살아 있는 세계 최고의 철학자 가라타니 고진은 가장 독창적인 독서가, 날카로운 비평가, 유머러스한 사상가다. 대문학이 끝난 바로 그 시점에 일본 문학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책은 문학을 찬양하기보다 의심하고, 철학을 인용하지 않고 스스로 건축하는 그 태도가 전범이 되어준다.
3. 변혜정 엮음, 『섹슈얼리티 강의, 두 번째』, 동녘, 2006.
2000년대 한국에서 페미니즘의 첫 번째 붐을 이끈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 페미니즘의 정석적 교과서라면, 이 책에 실린 변혜정의 「성폭력 ‘경험들’에 대한 단상」은 페미니즘 비평적 교과서다. 그 자신이 좌석버스에서 겪은 성폭력 사례들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론을 배워가면서 재구성하는 역량이 모범적이다.
4. 권여선, 『분홍 리본의 시절』, 창비, 2007.
한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여성 작가 중 자기 혐오와 여자 탐구 방면의 일인자. 등단하고 청탁이 없던 시절, 독기와 광기와 어쩔 수 없는 중독적인 글쓰기로 목숨을 부지한 저자는 미친 여자들을 하나, 하나 생생하게 그려낸다. 특히 자기와의 (눈물이 나기보다는 웃음이 날 정도로 더러운) 화해라는 변증법이 존재.
5. 정성일, 『필사의 탐독』, 바다출판사, 2010. [품절]
한밤중에 친구 영화감독으로부터 저주하는 전화가 걸려올지라도 별로인 영화는 별로라고 말하는 비평가의 모범. 봉준호 『괴물』의 정치성을 설명하기 위해 니코스 풀란차스를 인용하는 공부, 이창동 『오아시스』의 “기만적인 환영술”을 비판하는 용기가 있다.
6. 조영일, 『세계문학의 구조』, 도서출판b, 2011. [품절]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만큼 애증이 깊어질 때 숨을 쉬게 해 준 평론가. 평론집이 아닌 장편비평을 주창한 이 책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 그리고 페미니즘에 관해 그가 참여한 논쟁들의 의미와 상처를 생각한다.
7. 로베르토 볼라뇨, 『2666』, 송병선 옮김, 열린책들, 2013. [구판 절판]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는 비평적인 소설 또는 시적인 비평의 광대무변이다. 『2666』 1부에 나오는 “강철같은 의지”의 유럽 비평가들, 2부의 남미인 철학 교수와 3부의 흑인 기자, 4부의 페미사이드를 추적하는 형사와 탐정, 5부의 독일 작가와 편집인 이야기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가운데 책에 대한 사랑이 다시 생긴다.
8. 스반테 툰베리·베아타 에른만·말레나 에른만,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고영아 옮김, 책담, 2019.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에 모든 책임을 돌리며 지식인들이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실패하고 재미가 없어질 때 한번도 본 적 없는 솔직한 문체가 이상한 곳에서 다가왔는데 그레타 툰베리였다. 이 책은 세계를 보는 최후의 스케일로 기후 위기를 제시한다. “기후 운동은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인데,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아요. 각각의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존심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너무 가까이에 해답이 있어서 잘 알아차리지 못하니까요.”
9. 애나 번스, 『밀크맨』, 홍한별 옮김, 창비, 2022.
21세기의 첫 1분기에 쏟아진 남성적 정치 운동에 대한 비판적 후일담 가운데 가장 완성되어 있는 장편 소설. 북아일랜드의 한 마을 속에 있는 무한한 폭력과 갈등 속에서 페미니즘의 정확한 자리를 발견하고, 무해한 피해자에 머무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어른이 되는 길을 어렵게 배워가는 여자애가 주인공. 푸드뱅크에 바쳐진 문체.
10. 전현우,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민음사, 2022.
한국어로 철학을 어떻게 하는가? 한국의 역사를 돌아보고, 한국인의 심성을 이해하고, 이론의 인용이 아니라 이론의 구축을 통해서. 기후위기가 전면화된 시대에 교통 분야에서만 탄소 배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발견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건설 이후로 자동차 지배하에 들어간 한국인에게 걷기의 회복을 촉구한다. 저자는 보행길과 탈것 같은 구체적인 물질적 단위부터 세상을 바꿀 수가 있다는 장구한 낙관의 소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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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졔졔
인류세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자연과 사회의 관계, 공동체의 경계와 커머닝, 비인간의 행위성과 생태 정치를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어요. 문학잡지 『릿터』에 「해양쓰레기 탐사기」를 연재했고,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공역), 『라인스』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현재 해양쓰레기를 매개로 해양 공간과 사물, 인간이 엮이는 과정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들의 혼종적인 연결망을 추적하는 단행본을 집필 중이에요.
1.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2. 마르셀 모스, 『증여론』, 이상률 옮김, 한길사, 2002.
3.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신화학 1, 2』, 임봉길 옮김, 한길사, 2005·2008.
4. 도나 J. 해러웨이, 『겸손한 목격자』, 민경숙 옮김, 갈무리, 2007. [절판]
5. 하인츠 폰 푀르스터·베른하르트 푀르크센,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백성만 옮김, 늘봄, 2009.
6. 니클라스 루만, 『생태적 커뮤니케이션』, 서영조 옮김, 에코리브르, 2014.
7. 브뤼노 라투르, 『판도라의 희망』, 장하원·홍성욱 옮김, 휴머니스트, 2018.
8. 스테이시 앨러이모, 『말, 살, 흙』, 윤준·김종갑 옮김, 그린비, 2018.
9. 애나 로웬하웁트 칭, 『세계 끝의 버섯』,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2023.
10. 티머시 모턴, 『하이퍼객체』, 김지연 옮김, 현실문화, 2024.
🔖 도나 J. 해러웨이, 『겸손한 목격자』 :
특허권을 받은 실험용 쥐, 전자회로판을 만드는 (한국) 여성 노동자, 범주를 교란하는 흡혈귀가 하나의 원탁에 모인 책. 과학 지식 속에서 신화를 보고, 설화 속에서 진실을 꺼내는 해러웨이의 글쓰기는 통념적인 질서와 권위를 맨손으로 비틀어버린다. 상황을 통과하며 변화해나가는 회절의 기법을 통해 절망스러운 세계 속에서 희망을 탐구해나가는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의 사상적 정수가 담겨 있다. 과잉적으로 생산되는 이야기의 폭발은 그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해방을 기획한다. 처절한 현재를 겸손하게 증언(witness)하는 목격자들은 전복이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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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공적 감정』을 마감했습니다. 제작 중인 책의 표지를 구독자분들께 공개합니다.👀
표지를 뒤덮고 있는 자잘한 O, X 등의 기호들이 모여 만든 이미지는 이 책이 보여주는 ‘우울 아카이브’의 사례에서 착안했습니다. 표지에 대한 힌트는 책 2부 3장의 제사로 인용되어 있는 노래 가사에서 찾을 수 있어요.
손으로 뭔가 만드는 당신은 세상에 윤기를 더하는 거예요. 사랑스러운 여성이여 받아들여요 … 환상적인 수공예의 달인! 계획 따위 따르지 않아요. 손으로 뭔가 만들죠. 춤을 춥시다. 당신은 환상적인 수공예의 달인이니까! 함께 만들며 재료도 나눠요. 당신의 공예 기량은 최고랍니다. 풀을 붙여요. 잘라요. 꿰매요. 천을 짜요. 색을 칠해요. 구슬을 꿰어요. 반죽해요. 염색해요. 수를 놓아요, 납땜도 좋죠. 열을 가해봐요. 나가서 걸어요 (산책, 산책) 대화해요 (대화, 대화)
수공예 대화를 해요. 수공예 대화 원하는 건 뭐든 만들 수 있어요. — 레슬리 홀, 「수공예 대화」
하나의 책을 통해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늘 여러 가지인데, 이번 편지에서는 이 책의 글쓰기 방식이자 연구 방법과 연결되는 핵심어이면서, 근년간 한국 출판계를 주도해온 화두 중 하나인 ‘에세이’에 대해 언급해보고 싶어요.
이 책은 ‘우울’을 공적이고 구조적인 감정으로 바라봅니다. 저자인 앤 츠베트코비치의 동료 학자의 말을 빌리면, “우울을 사적 영역에서 꺼내 우리 시대의 복잡한 정치 속으로 불러”내는데요. 다시 말해 흔히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감정이 공적인 차원에서 형성되고 유통되고 작동한다는 점을 드러내는 정동 이론의 영역에 놓을 수 있는 저작이지요. 이 책이 제기하는 질문을 이렇게 단순화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울은 개인이 책임져야 할 심리적 문제일까?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야 할 질병일 뿐일까?’
이런 작업을 전개하기 위해 츠베트코비치는 ‘회고록’, 개인적 서사를 담은 에세이를 자신의 연구 방법의 하나로 실천하고 제시하는데요. 한국에서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처럼 대중적으로 성공한 우울증 회고록 장르과 대중 의학서를 검토하며, 관련 저작들이 공통적으로 전제하고 강화하는 우울 모델을 분석합니다. 인상적인 점은, 츠베트코비치가 우울 회고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비평 에세이나 학술 에세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우울이라는 경험과 감각을 다루기 위해 그 자신의 “우울 일기”를 써낸다는 점이에요.
그 결과물과 그에 관한 저자의 논의는 그간 한국에서 주목받아온 자전적 에세이를 어떻게 성찰하고 확장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주는 것 같아요. 이것은 물론 주류 언어에서 왜곡되고 누락되기 쉬운 감정, 감각, 몸으로 겪은 경험 그리고 소수자의 경험 등을 어떻게 말하고 논할지에 대한 질문과 이어지겠고요.
저자가 보여주는 우울의 주된 양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보상태, 말도 글도 나오지 않는 움츠러듦의 상태가 있어요. 그런 우울을 경험하는 와중에도 무언가 기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그렇게 힘겹게 건져낸 말과 생각에 우울했거나 우울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거라 느껴요. 무기력과 자포자기에 허덕이다 ‘우울해... 죽고 싶다......’ 같은 혼잣말을 트윗하고 겨우 한숨 쉬는 사람들부터 ‘정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은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에게까지,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건강할(?) 때보다 글 읽기 어려워진 상태에 너무 좌절하지 말자고 덧붙이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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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마티
matibook@naver.com 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101, 2층 (0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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