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전 첫 책 ❶
요하나 헤드바,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
🌱 죽순
기획의 절반은 우연과 인연이 담당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이론: 자기의 삶으로 작업하기』에 짧게 언급된 아티스트의 이름이 편집자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요하나 헤드바. 궁금하다, 아마존(출판인만ㅋㅋ 아마존을 서점으로 인식합니다)에 Johanna Hedva 검색. 소설과 시밖에 없네. 못 내겠구나, 잠정 결론.
한데, 『자기이론』 편집 기간이 길어지는 사이, 북서울미술관의 큐레이터에게서 한 통의 연락이 왔습니다.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라는 『마이너 필링스』 속 문장을 전시의 제목으로 삼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당 전시에 요하나 헤드바라는 아티스트의 비디오 아트를 소개할 텐데, 그의 에세이도 몇 편 전시하려 한다고… 여기에 『자기이론』을 번역한 양효실 선생님이 합류… 나중에 알게 됐지만, 요하나 헤드바의 글에 앤 츠베트코비치의 『우울: 공적 감정』이 인용되고… 이것은 숙명…
그렇습니다. 이런 우연, 저런 인연의 그물망 안에서 마티가 요하나 헤드바의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를 출간합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열심히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어요.
요하나 헤드바는 한국계 미국인 아티스트로, 만성 질환을 안고 살아갑니다. 메탈,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글쓰기를 아우르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특히 2016년에 발표한 「아픈 여자 이론」(Sick Woman Theory)으로 일약 ‘아픈 여자’의 대명사가 됩니다. 그는 오랜 시간 연주 여행을 다니고 미술관에 작품을 내왔지만, 「아픈 여자 이론」을 기점으로 ‘아픈 여자’가 되고 ‘불구 팸’의 구성원이 되며 ‘장애 정의 활동가’가 됩니다. 한국에도 오프 매거진에 번역되며 반향을 일으켰죠.
헤드바는 ‘몸이 있다는 사실’, 그것 하나로 누구’나 돌봄과 지원’을 필요로 한다고 말합니다. 병과 장애를 일시적이고 일탈적인 것으로 보는 자본주의적이고 비장애중심적인 관점을 거부합니다. 그의 「아픈 여자 이론」은 “미래에는 언제나 장애가 있다”라는 예언이자, 자본주의-비장애중심주의-여성혐오-동성애혐오 등의 이데올로기를 산산이 부수는 선언입니다.
[미리 보기]
“나는 우리 몸이 연약하며 지속적인 돌봄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그 반대가 진실인 양 세계를 구축해왔다는 사실, 쌍을 이루는 이 사실들을 중요하게 다루고 싶다. 우리의 불가피한 무능함, 기력의 쇠함, 굴복을 언짢아하며 노골적으로 저버리는 이야기들을 — 그것이 거짓인데도 — 우리에게 들려주었을까? 이 거짓말로 누가 덕을, 이익을 볼까?”
“내가 병이나 장애에 관한 단 하나의 이야기를 찾아서가 아니라 이것이 하나 이상의 이야기가 될 방법을 찾아 손을 뻗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장애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다른 어떤 정치적 상태보다 자신의 몸으로부터 더욱 타자화된 상태이자 동시에 몸에 극히 가까이 있는 상태를 기술한다. 이는 몸의 필요들과의 근본적 마주침, 몸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의존성이 결정되는 방식들과의 근본적 마주침이다.”
“언젠가 한 행사에서 객석의 한 백인 여성이 나에게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 대해 꼭 알았으면 하는 한 가지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이 한 가지 이상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강, 지원 그리고 신체적·사회적 몸들을 둘러싼 새로운 패러다임들을 구축하는 것이 긴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은 사회적·정치적 변혁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후기자본주의를 살아내는 것이 좆같이 힘들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간구하고 있다. 이 책은 앞의 문장 어디에서건 자기 자신을 발견할 이들을 위한 것이다.”
“가장 반(反)자본주의적인 저항은 다른 이를 돌보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동안 여성화되어왔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간호, 양육, 돌봄의 실천에 동참하는 것이 저항이다. 서로의 취약성과 연약함, 사회적 불안정성을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지원하고 존중하고 거기에 권한을 부여해주는 것이 저항이다. 서로를 지키는 것, 지원 공동체를 만들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저항이다. 급진적인 친족 관계, 상호 의존적인 사회성, 돌봄의 정치가 저항이다.”
“우리가 모두 병들고 침대에 갇혀서, 뭐가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대처하는지, 무엇이 기분이 나아지게 하는지와 같은 우리 이야기를 나누고, 트라우마 경험을 들으며 서로의 증인이 되어주고, 아프고 고통에 차 있고 돈이 많이 들고 민감하고 까다롭고 일탈적이고 환상적인 우리 몸의 부분 부분을 우선시하게 되면, 그리하여 일하러 갈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되면, 그때가 오면, 마침내, 자본주의는 끽 소리를 내며, 그토록 필요했지만 너무 오래 지연되어온, 개씹 영광스러운 제동을 걸 수밖에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