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사이 자체 콘텐츠를 생산하거나 책을 경유하는 다채로운 활동을 겸하는 출판사와 서점이 크게 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서점 또한 ‘초소형 문화기획사’라는 프로필 아래 공연, 토크, 전시 등 다채로운 활동을 기획하고 계신데요, 다른 무엇도 아닌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기획을 하시는 이유와 그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서점은 두 명의 서점지기가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명은 책을 마구 읽어대는 다독가이고요. 한 명은 책을 마구 사대는 수집가입니다. 다독가는 로또에 당첨이 되면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었고요. 수집가는 만화방 사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직 로또에 당첨되지 않은 저희에게 주어진 옵션이 바로 서점이었는데요. 서점이 아니라는 이름을 내걸면 ‘일상과 비일상, 정상과 비정상을 넘나드는 문화예술 기획자’로서의 정체성도 마음껏 펼쳐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서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이죠. 저희는 서점의 이러한 장점을 이용하여 이상하고 수상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소매넣기하고 있습니다. 운영자들의 관심사에 따라 매번 기획하는 행사의 장르와 성격이 달라지고, 쉬운 걸 쉽게 하기보다 쉬운 걸 어렵게 만드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곳. 이서점은 아마 ‘서점’이라는 말이 없었더라면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찔하네요…
‘재미와 정의’는 이서점의 추구하는 바인데요, 출판인으로서 서점인이 생각하는 ‘재미’란 무엇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서점이 정의하는 ‘재미’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2025년 7월 시점에서 ‘재미와 정의’를 잡은 책을 한 권(여러 권도 가능!) 소개해주세요.
가장 고민스러운 질문이었는데요. 이서점에게 ‘재미’란 ‘허물어지는 감각’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쩐지 재미를 느꼈던 모든 순간에 내 안의 무언가가 허물어졌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나아가 ‘이서점은 왜 이렇게 재미에 집착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았는데요. 재미가 우리에게 ‘자발성’과 ‘지속성’을 부여해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멋지고, 대단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다 참여하고 소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저희는 결국 사람들에게 참여와 소비를 이끌어내야만 하기에, 이를 추동시킬 힘을 찾아 사용해야 합니다. 물론 분노나 의무감으로도 무언가 추동될 수 있겠지만, 저희가 추구하는 바는 산뜻한 자발성과 이를 지속시킬 힘을 가진 ‘재미’인 것 같습니다.
이번 7월 저희에게 재미로도, 정의로도 깊은 정동을 선사해준 책은 『레이빙』(접촉면), 『성원씨는 어디로 가세요?』(난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알려줄까』(마티)입니다. 올여름 당신을 한껏 허물어트려줄 책 BEST 3… 강력 추천합니다.
출판사 기획전에 마티를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봄날의책이 첫 번째 주자였고, 마티는 두 번째 주자인데요. 마티를 초대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티의 책 가운데에 이서점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희가 평소 좋아하는 출판사들은 내가 원래 알고 싶었던 이야기뿐 아니라 내가 놓치고 있던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마티는 인문학 저서부터 예술, 철학, 건축까지 이서점의 평소 관심사를 늘 더 깊고 넓게 확장해주는 출판사입니다.
이서점 운영진과 독자들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책 3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다른 방식으로 듣기』 - ‘정숙한 곳’으로 여겨지길 거부하는 이서점에 없어서는 안 될 책! 개업 이래 이서점의 꾸준한 베스트셀러입니다.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착용하신 분들이 주로 구매해 가신다는 점을 몰래 귀여워합니다.
(2) 『미학 원전 시리즈』 - 이서점 서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1~3권으로 구성된 시리즈지만 단 한 권을 선택하라면 2권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가장 추천드리며, 모든 문장을 ‘누군가의 트윗이다’ 생각하며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슬쩍 얹어드리곤 합니다.
(3) 『건축잡지 미로』 - 평소 건축에 관심있던 분께도, 그저 막연한 호감만을 품고 계시던 분께도 강력 추천하는 책입니다. 건축서에는 예술, 철학, 미학이 모두 담겨 있기 마련이라는 견해를 덧붙이며 이 책의 대단함을 어필하는 편입니다.
각주* 독자들이 분명 이서점에 찾아갈 텐데요, 이서점 주변의 맛집이나 함께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주세요!
언젠가는 꼭 정리해서 공유하고 싶었던, 너무 신나는 질문입니다!!!
[식당 & 베이커리]
- 해남식당: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를 떠올려보세요. 근데 이제 면이 없고 청양초와 다진 마늘이 팍팍 들어간… 조개 해장국 추천드립니다.
- 나노포차: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비빔냉면 소스를 떠올려보세요. 거기에 쪽파, 배, 양파 등 싱싱한 채소와 생새우회를 한데 버무린 음식. 생새우 회무침입니다. 참기름에 척척 비빈 소면 사리 추가를 추천드립니다.
- 썸머링: 맛도 좋고 멋도 좋은 비건 코스 요리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3일 전 예약이 필수입니다!
- 빵과장미: 제철 채소로 만든 비건 샌드위치와 씹을수록 고소한 바게트를 강력 추천드립니다.
[공간]
- 전일빌딩 245 &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전일빌딩에서 5·18 해설 프로그램을 듣고, 5분 거리의 기록관에서 상세한 자료들을 관람하는 코스를 추천드립니다.
- 광주극장: 1935년 개관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입니다. 2층 관람을 추천드립니다. 잊지 못할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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