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위, 맹추위, 된추위, 혹한, 동장군…… 속에서 모두 무탈하신가요? 저는 지지난주 주말에 빨빨거리며 좀 돌아다녔더니 지난주 발이 동상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내내 양말을 두 켤레씩 신었어요. 이 시기를 무사히 나시길, 따뜻한 데서 책 펼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분들이 늘어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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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표지를 완성해줄 박 인쇄(금속성 필름을 종이 표면에 열과 압력을 통해 부착하는 인쇄 후가공 방식) 감리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아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동판을 다시 만들고 후가공 작업을 다시 진행하기로 했어요. 제작 완료까지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더 나은 만듦새를 위해……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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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펀드 마감까지 단 3일 남았습니다. 『메두사의 웃음』 한국어판에는 「메두사의 웃음」뿐 아니라 특별한 글들이 더 실립니다. 먼저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엘렌 식수의 「장미 가시 효과」를 번역해 실었습니다. 이 글은 「메두사의 웃음」이 2010년 갈릴레 출판사에서 단행본 『메두사의 웃음과 다른 아이러니들』로 출간되면서 함께 수록된 글 중 하나이고요. 또 이 책을 옮긴 불문학 연구자 이혜인의 간결하면서도 밀도 높은 해제, 그리고 새로 번역된 「메두사의 웃음」을 미리 읽은, 작가이자 독립연구자 김지승의 독특한 서평이자 비평적 에세이도 만날 수 있어요. 이 글들의 몇 대목을 미리 공유드립니다. 선공개 ㄱㄱヽ( ᐛ )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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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가 혀를 날름거리기만 해도 사람들이 도망쳤다. 그 혀들이 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고, 이미 물렸다는 생각에 다리와 온몸이 잘려 나간 듯 그들이 도망치는 꼴을 봐야 했다. 이 장면이 조금은 내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얼마 후 남자는 뒷걸음질 치면서 자신이 무얼 하는지 보지 않은 채 나에게서 이 불쌍한 여자를 참수해 버렸다. 신화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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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 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웃을(rire) 차례야. 우리가 쓰고–웃을 (éc-rire) 때야.
글쓰기?—그래. 그건 가장 내밀하고, 가장 강렬하며 가장 경제적인 탐구 방법인 동시에, 가장 마법 같으며 가장 민주적인 대리보충이다. 종이와 상상력, 그리고 비행(vol). 나는 세 살 때, 오랑의 철창에 역사의 포로로 잡혀 있던 시절, 가장 안전하고 가장 보편적인 탈출 수단을 발견했다.
1974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나는 혼자서 문학을 걷는 것에 지쳐 있었다. 시간이 끔찍하게도 길게 느껴졌다. 나는 이미 픽션이며 에세이이며 많은 텍스트를 썼고, 연극 쪽으로 나아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내 오른편은 황량했다. 내 나라에는 사랑받는 남성 시인, 감미로운 남성 철학자, 통찰력 있는 남성 탐험가과 남성 예언자들로 넘쳐 났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수에 준하는 여성들을 수 세기 동안 기다려 온 듯했다. 물론 랭보의 예언을 믿었다. 그런데 미래는 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 하늘을 날기 위해 증인과 동료가 필요하다. 물론 안나 아흐마토바, 마리나 츠베타예바, 주나 반스와 다른 몇몇 여성들, 셀마 라겔뢰프나 카렌 블릭센이 있었으나 예외적이었다. 내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를 알게 된 건 1976년에 이르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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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나는 고함쳤다.
우리는 한 번 고함 지른다.
나는 이미 많이 썼다. 자유로운 글들, 저 너머, 대담한, 날짜 없는 글들. 지금도 고함칠 때가 있지만, 문학에서는 아니다. 문학에서는 단 한 번만 고함친다. 나는 고함쳤다. 자, 마지막으로. 나는 시대의 한 획을 그었다. 한 번. 내가 따져 봤던가? 아니. 시대가 그랬다. 비상 상황. 탈구. 시대의 마디 속에서 솟구치는 고함. 글로 그 고함을 질러야 한다. 웃음을 새겨야 한다.
문학에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로 부른다.
― 엘렌 식수, 「장미 가시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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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가시 효과」에 관해 정보 한 가지. 이 글에는 문자 그대로 “한국”이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번역 원고를 편집부에 처음 공유했을 때 원문에 “진짜로?” 한국을 뜻하는 프랑스어 Corée가 나오는 거냐는 의심도 나왔네요. 어떤 문맥에서 한국이 언급될까요? 궁금하면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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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의 웃음』은 마치 여성 시인에 관한 랭보의 예언을 이어받듯이 미래 시제로 시작한다. 여성적 글쓰기에 관해 말하는 것은 그것이 실행할 바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첫 문장은 이러한 글쓰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물론 여성들이 글을 쓴다는 사실을 식수가 모르거나 부정한 것은 아니다. 19세기부터 프랑스 여성 문인 수는 꾸준히 증가했고, 이를 경계한 제도권 문학계가 20세기 초반 여성 작가의 작품을 ‘여성 문학’(littérature feminine)이라는 용어로 뭉뚱그려 정의하면서 그 가치를 애써 깎아내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식수가 이야기할 여성적 글쓰기는 비단 여성의 글쓰기가 아니다. ‘여성적 글쓰기’에서 ‘여성적’이라는 수식어는 새로운 차원의 글쓰기를 양산할 실천 양식인 동시에 그러한 글쓰기를 통해 도래할 여성에 관한 것으로, 이 표현에 내재한 복합성은 글의 서두부터 은근하면서도 분명하게 암시된다. 식수는 단순히 여성이 ‘글을 써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쓰다’라는 프랑스어 동사 ‘écrire’의 대명 동사 ‘s’écrire’를 사용하여 재귀적인 의미(‘자기 자신을 쓰다’)와 수동적인 의미(‘쓰이다’)를 동시에 환기한다. 여성은 자신을 써야 하고 써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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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글쓰기는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이라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탄생한 표현일 뿐 아니라, ‘글쓰기’에 관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담론이 어느 정도 형성된 시기에 등장한 표현이기도 하다. 1950년대부터 모리스 블랑쇼는 자신의 소설과 비평에서 글쓰기라는 것을 작품의 의미를 계속해서 무효화하는, 주체가 사라지는 경험으로 개념화한 다. 비슷한 시기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글쓰기를 무한한 불일치의 움직임, 일종의 차연(différance)으로 읽어 낸다. 식수는 이러한 동시대의 사유의 흐름 속에서 여성적 글쓰기를 이야기한다. 글로 써지는 여성은 단순히 어린 시절의 욕망을 품고 되돌아오는 자가 아니라 ‘도래할’ 존재로, 새로운 여성성을 기입할 자이다. 이때 여성성은 생리적 성별로 갈음할 수 없고, 이러한 여성성을 새기는 작가 역시 여성일 필요는 없다. 식수는 말한다. “나는 노래하는 광활한 육신이니, 그 위에 어떤 나(여자? 남자?), 대략 인간이긴 하지만, 그보다 앞서 변화 중에 있기에 살아 있는 존재인 ‘나’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84~85쪽).
― 이혜인, 「두 언어의 경계에서 여성적 글쓰기를 옮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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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인 번역가가 독자의 이해에 도움이 되고 흥미의 깊이를 돋워줄 주석을 여럿 써주었는데요,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를 공유해요. 바로 프랑스어 ‘voler’에 대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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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H
이면서, 한가운데의 H에게서 전언이 날아든다. 1996년의 「메두사의 웃음」은 그 강렬함과는 별개로 조각조각 기워진 상태였다. 말줄임표나 생략 표시 없이 글 전체에서 부분이 임의적으로 덜어지고 멋대로 문장들이 접합되어 그즈음 읽고 있던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이 떠오를 정도였다. 크나큰 공포에 휩싸인 채 태어나 정작 타인의 공포에 의해 여러 번 버려지는 그 괴물과 메두사가 어딘지 닮아 있었다. 뱀처럼 파고들고 새처럼 물어 나르고 물처럼 소용돌이치며 글 쓰는 여자들을 집어삼키는 괴물 같은 글이라는 점에서도 그랬다. 텍스트 전체가 온전히 전해지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각도와 속도로 날아든 문장들은 1990년대 이곳, 쓰는 여자들이 느껴 온 외로움에 정당성을 함께 안겼다. 대학에는 여성 교수 하나 없이, 여성 작가의 작품을 읽는 강의 하나 없이 무언가를 읽고 쓰는 여성들이 있었다. 여성 작가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었지만 상과 권위와 비평이 연장할 수 있는 생명을 줄 수는 없어 어깨가 좁아지던 여성들이. 사랑이 생명을 줄 수 없다면 그것으로의 초대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몰래 읽고 그들은 몰래 삼켜진다. 여성이 그것의 필요를 느끼면 언어는 스스로 탄생하리라는 H의 예언이자 명령이 몰래 읽고 삼키는 등을 쓰다듬었다. 어떤 문장은 세상에 나오는 그 순간 즉시 다른 시간대에 가닿는다. 과거와 미래의 다른 몸에서, 오래된 모어들에서 동시에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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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꿈은 잔해 위로 펼쳐진다. 여성적 쓰기의 자리는 어떤 상처의 폭력이 깃들어 있는 자리이고, 여성의 과거가 꿈처럼 다른 세계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는 자리이다. [……] 1975년의 H와 1996년의 한 여자, 이후 변형된 H와 2004년의 여자가 연결되면서 가능해지는 일종의 존재 방식처럼. 다른 곳, 다른 이들로부터 오는 현재이자 부재의 소리인 에코, 반향의 언어. 이 언어의 말하기는 듣기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여성적’인 것은 이미 항상 타자성과 얽혀 있으므로, 타자들의 변화하는 그물망 속에서만 살기와 쓰기가 가능해진다. 2000년대 이후 H는 다양한 동시대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작품과 ‘여성적’으로, 시적으로 관계한다. 또 한 번 자신의 글을 살아 내고 여성적 글쓰기의 장소를 확장한 셈이다. 그의 글들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서로의 목소리를 빌려 오고 빌려 가며 관계 안에서만 읽히고 잠시 의미를 획득했다 헤어진다. 여자는 그의 글이 되고 싶어진다.
― 김지승, 「거듭 도래하는 몸의 전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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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승 작가는 『메두사의 웃음』에 어떤 마지네일리아를 남겼을까요? ‘H’와 변형된 ‘H’와 한국어 모음 ‘ㅐ’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궁금하면 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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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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