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편집 재즈편
🌱죽순
저는 음알못입니다. 케이팝, 국악, 브릿팝, 인디록, 로큰롤, 힙합, 클래식, 재즈 등 장르를 막론하고 잘 듣지 않고, 잘 모릅니다. 민중가요는 좀 압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철의 노동자」를 부를 줄 알았고, 소싯적엔 노래방에서 「광야에서」를 부른 전적이 있습니다. 여하간 저는 평소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 드문 유형에 속합니다.
음악이란 무지의 영역은 언제나 타인에 의해 채워지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 a, b, c, d가 좋아 죽던 성시경, 라디오헤드, 자우림, 주석을 접하며 발라드, 록, 힙합을 스쳐갔고, 대학교 학생회관에서 만난 친구들에게서 홍대 인디신을 얕게 배웠죠. 마티에서 클래식 음악 책을 만들면서는 관현악 콘서트를 1년에 여러 번 가기도 했습니다. 다 한철이었어요.
자라섬재즈페스티벌과 이태원의 올댓재즈에 가본 이력도 있습니다. 재즈를 좋아했던 사람과 교유하며 경험한 반짝 이벤트였죠. 그 사람으로부터 ‘재즈가 있는 쉼터’라는 재즈 애호가들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소개받았던 기억도 납니다(오늘 검색해보니 이제 없어졌더라고요). ‘재즈’라는 단어를 그 사람에게 처음 배웠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와 멀어지면서 재즈와의 연도 끊어졌지만,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최소한의 상식’은 챙겼습니다. 킹왕짱 유명한 재즈 아티스트다, 정도였지만요.🎺
사람이 참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킹왕짱 유명한 재즈 아티스트의 자서전을 제 손으로 만들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체험 편집’(원고에 등장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장소를 방문하거나 관련 집회에 나가거나 관련 단체에 후원하는 등)을 즐기는 저는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에 언급되는 아티스트들의 곡을 찾아 들으며 편집을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해지 상태였던 스트리밍 플랫폼을 재구독한 것이 먼저겠네요.
뭐가 좋고 나쁜지 모르기 때문에, 재즈계의 전설, 신화, 제왕이라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입에서 칭찬이 나왔다? 그럼 찾아서 들었습니다.
“디즈(디지 길레스피)와 버드(찰리 파커)가 B의 밴드에 있을 때였는데, 듣자마자 “와, 이건 대체 뭐지?” 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터져 나왔어. 젠장, 그 연주가 어찌나 끝내줬던지 겁이 날 지경이었다구.” (7쪽)
“몽크는 음악적인 관점에서 엄청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어. 그는 시대를 앞서간 진짜 혁신적인 음악가였어. 지금 시대의 퓨전 재즈나 대중음악에도 그의 음악은 어울려.” (110쪽)
“버드는 짧게 숨을 내뱉으며 몰아치는 프레이즈를 자주 연주했지. 미친놈처럼 확 지르는 프레이즈 말이야. 나중에 콜트레인도 그런 식으로 했어. … 그렇게 연주하는 사람은 생전 처음이었거든.” (143쪽)
“(콜)트레인은 내가 들은 것 중에서 가장 요란하고 빠른 색소폰 연주자였어. 걔는 진짜 빠르면서 동시에 크게 연주할 줄 알았어. 그렇게 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지. … 정말 유별난 놈이었지. 입에 악기를 물면 마치 뭐에 홀린 것 같았어. 트레인의 연주는 열정적이고 격렬했지만, 연주하지 않을 때는 아주 조용하고 점잖았어. 귀여운 녀석.” (318쪽)
이 자서전은 구술 채록 방식으로 쓰였는데요, 아시죠, 본래 글보다 입이 방정인 거. 아주 속이 다 보여요. 게다가 마일스가 솔직하기로도 킹왕짱이더라고요. 흉도 시원시원하게 보고 찬양도 거침없이 합니다. 마일스가 어느 아티스트를 가장 애정했는지 직관적으로 알고 싶다면, 찾아보기를 먼저 보세요. 페이지 숫자가 많은 순이 틀림없이 애정의 순위입니다.
시절이 시절이라 해도 끝나지 않는 마약 일화와 여성 혐오, 욕설은 듣기 거북하긴 합니다. 저도 속으로 욕 많이 하면서 작업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재즈의 세계이자 지도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마일스 데이비스, 자서전』에서 고른 앨범은 『유어 언더 어레스트』(You’re Under Arrest, 1985)입니다.
“『유어 언더 어레스트』 앨범의 개념은 흑인들이 어디서나 경찰관과 겪게 되는 문제들로부터 나왔어. … 거리의 세계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붙잡히는 것, 정치적인 이유로 감금되는 것, 핵무기로 인해 대량학살의 섬뜩한 공포에 굴복하는 것,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의 구속 같은 것. 핵 위협은 정말 우리의 일상생활을 존나 위협하고 있어. 그리고 세상 가득한 공해도 그렇고. 오염된 호수며, 바다, 강, 또 오염된 땅, 나무, 물고기 등등 전부.
뭔 얘기냐면, 다들 존나 탐욕스럽게 굴기 때문에 모든 게 좆되고 있는 거야. 전 세계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백인들 이야기라고. 오존층을 씹창내고, 폭탄을 떨어뜨리겠다고 모두를 위협하고, 항상 다른 사람 것을 가로채려 하고, 자기 걸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면 군대를 보내는 게 백인이야. 그동안 그래 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백인들이 오랜 세월 동안 해온 짓은 씨발 우리 모두를 망치기 때문에 쪽팔리고 딱한 데다가 위험하기까지 하다구. 바로 그런 이유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Then There Were None)에서 신시사이저로 핵폭발을 연상시키는, 불길에 휩싸이며 울부짖는 바람 소리 비슷한 걸 만들어낸 거야. 그다음 나의 쓸쓸한 트럼펫이 나오는 걸 들을 수 있는데, 아기의 구슬픈 울음이나,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통곡을 암시하고 있어.” (522~523쪽)
트럼프와 네타냐휴가 이 앨범을 들어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