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만 보를 걷는 날도 있는 바쁘다 바빠 현대인 팔랑은, 사실 1만 9천 보를 집 안과 사무실에서 걷습니다. 각주 닉네임을 '와식'(누워서 먹는 것도 가능할 인간이라고 친구들이 붙인 별명)이라고 지었어야 마땅할 만큼 누워 생활하는 걸 사랑하는 죽순은 책도 누워서 봅니다. 영토 개척을 멈춘 후 실내를 개척해온 인류, 선크림 없인 뙤약볕에서 버티지 못하는 실내종으로 진화한 우리에게 딱 필요한 책을 마티가 준비했습니다. 1인 1원고를 손에 들고 있으면서, 크로스로 교정을 보고, 제목과 홍보 아이디어를 마구마구 나누는 마티 편집부가 지금 작업하는 원고와 함께 보는 책도 소개하고요, 모베는 여름의 선율 '비발디' 음반을 무려 6장이나 들고 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또 음악 들으며 책 읽으며 실내에 머물 수밖에 없겠는데요? 당신은 실내형 인간인가요, 실외형 인간인가요? 🧼 퐁퐁 묵언 수행, 아니 묵언 교정 중인 마티 사무실. 단체 채팅방 알람이 울립니다.
"앉으면 우리 몸은 순식간에 생리학적 변화를 와르르 겪는다. 근육이 느슨해지고, 지방이 덜 분해되고, 혈액 순환이 느려지고, 혈당이 오르고, 인슐린이 폭증한다. 너무 많은 시간을 앉아서 보내면 장기적으로 심혈관계 질환, 2종 당뇨, 암 등의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잠시 채팅방에 소란이 일지만 아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또 채팅방 알람이 울립니다.
"여러 연구에서, 한번 앉으면 중간에 일어서지 않고 줄곧 앉아 있어야 할 경우 각종 질병에 걸릴 위험이 특히 높아진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중간에 일어서지 않고 죽 앉아 있는 사람이, 하루 중 앉아 있는 총 시간은 더 길더라도 중간중간 일어나서 짧게 휴식을 취한 사람보다 조기 사망 위험이 높았다."
"『우리는 실내형 인간』 3장 좀 무서워. 앉아만 있는 생활이 얼마나 무서운지 자꾸 상기시켜ㅠㅠ"
다시 한번 채팅방이 소란스러워집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자주 움직여야겠다고 다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짐일 뿐.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흔한 사무실 풍경인가요? 마티 편집부에는 뼛속까지 실내형 인간들만 모여 있어요(라고 하면 조스바가 "저는 반반이에요!" 외칠 듯합니다). 여러분은 실내형 인간인가요, 실외형 인간인가요?
사실, 실내형 인간이든 실외형 인간이든 우리는 하루의 90퍼센트를 건물 '안'에서 지냅니다. 바깥에서 일하는 분들도 많지만 코로나19 이후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죠. 실내형 인간인 데다 엉덩이까지 무거운 사람들에게 '건강한 삶'이란 꿈같은 이야기일까요? 집에 콕 들어앉아 일할 때 제일로 마음이 편하다는 저자는 모든 인간을 세심하게 배려한 건축과 디자인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건물을 지을 때 계단이 잘 보이고 넓고 아름답고 건축적으로 분명히 구분되어 있으면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덜 탄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지하철 계단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거나 한 단을 오를 때마다 몇 킬로칼로리가 소모되는지, 몇 분의 수명이 연장되는지 적혀 있기도 하죠? 이 또한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서 공간 연구자들이 머리를 쓴 결과물! 하지만 계단은 장애인, 유아차 이용자, 고령자에겐 접근성이 떨어지죠. 그러니 엘리베이터를 무작정 없애거나 숨겨놓기보단 계단 조명을 환하게 바꾸고 계단 주변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방법처럼 '보편적인 디자인'을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사는 동안 건강하게" 같은 고지식한 접근은 사뿐히 즈려밟고 "불멸"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 건축가도 있습니다. 아라카와 슈사쿠와 매들린 긴즈는 죽음에 저항하기 위해 신체와 정신에 도전적인 자극을 제공하는 공간을 창조합니다. 집 정중앙에 부엌이 있고 욕실은 드럼통 모양이고 서재는 완벽한 구 안에 들어앉은, 총천연색이 동원된 일본 미타카의 '천명반전'(天命反轉, 타고난 운명을 뒤집는다는 의미) 아파트(사진)를 말이죠. 이 기상천외한 건물에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균형감을 잃고 일상적인 습관이 교란되지만 그만큼 면역계가 자극되어 불멸에 이른다는 것이 두 사람의 주장이었어요. 하지만 결말은 "필멸"이었습니다. 아라카와는 2010년에 사망했고, 긴즈도 4년 뒤 죽었거든요.
확실한 건 '실내종'으로 진화한 인간의 건강과 행복은 꽤 많은 부분 '실내 환경'과 연결돼 있단 겁니다. 이동하는 시간 빼면, 누워 있든 앉아 있든, 심지어 격한 운동을 할 때조차 실내에 있는 우리. 그 생활이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하게만 여기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해주는 책, 『우리는 실내형 인간』이 곧 출간됩니다. 🏠 우리에게 알맞은 빛을 찾는 법 🌱 죽순 ❝응급실처럼 업무가 자주 교란되고 여러가지 일을 동시다발로 해야 하는 일터라면 파란색 조명이, 창조력이 핵심인 일터라면 따뜻한 색이 적합할 수 있다.❞
- 『우리는 실내형 인간』 중에서
이 문장을 보고서 출판사는 응당 파란색 조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마티 사무실 천장 조명은 ‘파란색’이고, 제 책상 스탠드는 ‘따뜻한 색’이네요. 급박한 와중에 창의력을 끌어 올려야 하는 편집자의 상황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것 같지 않나요?
천장 조명은 철물점이나 마트에서 파는 형광등이고요, 스탠드는 이케아 안티포니+뤼에트 GU10 전구를 쓰는데요, 전구 상자에 세 가지 중요한 정보가 적혀 있더라고요.
2700K, 200lm, 3W
서늘한 푸른색이냐, 안온한 오렌지 빛이냐를 보여주는 건 바로 K, kelvin(켈빈) 단위를 달고 있는 색온도 수치입니다. 광원의 색이 붉을수록 색온도 수치는 낮아요. 푸를수록 높고요. 색온도를 나타내는 단어 중에 자주 헷갈리는 게 하나 있죠. 바로 ‘주광색’. 낮 ‘주’(晝)에 빛 ‘광’(光)을 써서 ‘햇빛에 가까운 색’이라는 뜻인데요, 과학적인 이유는 멀찌감치 치워두고, ‘낮에 보는 하늘의 색’이라고 외워두시면(주입식!) 편하실 거예요. 흐린 하늘조차 색온도가 7000K이라고 하니,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램프의 색온도가 얼마나 낮은지 아시겠죠? 보통 백열전구가 2800K이고, 촛불이 2000K 정도라고 해요.
나머지 숫자도 알아볼까요. lm은 lumen(루멘), 즉 광원에서 나오는 빛의 양을 나타내요. 수치가 클수록 밝아요. 형광등이 3000lm이니 제 스탠드는 형광등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밝기네요. W는 다들 아시는 것처럼 소비전력을 나타내는 단위인데요, 와트에 대한 설명은 생략할게요. 저는 만유인력을 배우며 뉴턴의 사과는 홍옥이었을까 부사였을까를 상상한 지독한 문과 재질인지라..🙄
처음에 저는 노리끼리한 조명 아래에서 교정지를 보는 게 어색해서 한동안은 스탠드를 안 썼어요. 카페에서도 일을 잘 못해요. 소음은 참을 수 있지만 ‘조도가 낮은’ 건 참을 수 없어서라고 말하곤 했죠. 그게 다 전구색 조명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색온도와 조도는 다른 개념이더라고요. ‘조도’는 광원에서 나온 빛이 한 면에 얼마나 많이 도달하느냐를 나타낸 수치예요. 단위도 lx(럭스)고요. 물론, 일상적으로 ‘조도가 낮다’는 ‘어둡다’라는 관용구처럼 쓸 수 있겠지만, 조명의 세계에선 엄격히 구분된다는 거!
핸드폰 사진 보정하면서 색온도를 조절해보셨거나, 거실과 침실 조명의 색을 다르게 두셨다면 익히 아시겠지만, 빛만큼 순식간에 공간의 분위기를 바꿔주는 요소도 드물 거예요. 물론 편의도 좌우하죠. 부엌 조명 잘못 설치하면 싱크대에 섰을 때 도마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여간 불편한 게 아니죠. 침대 독서등도 위치 이상하면 눈알이랑 전구랑 자꾸 부딪혀서 맨날 눈부심 폭격당하고 말이죠!
심적 안정, 집중력, 활력 등 어떤 실내 공간에서 원하는 특정한 에너지가 있다면, 조명을 살펴보세요.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으로 원하는 효율을 얻을 수 있을지도요. 그때 『공간을 쉽게 바꾸는 조명』이 실용적인 조언을 해드릴 거예요. ❝지금 작업하는 원고와 함께❞ 읽는 책 천재 예술가의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업, 아방가르드적인 퍼포먼스로 기억되는 『딕테』(Dictée)를 『마이너 필링스』 작업하며 다시 펼쳐들었습니다. 책을 비롯해 비디오아트 등 차학경의 작업들 전반의 맥락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주 오래된 의문을 이제야 해결한 시원한 기분. 『딕테』를 물음표로 기억하시는 분들은 꼭꼭 『마이너 필링스』를 보시길. 섬세하고 문학적인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를 작업하며 그간 잊고 있던 시 언어를 찾기 위해, 캐시 박 홍이 대학 시절 깊은 영향을 받았다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한 편씩 읽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내형 인간』을 작업하며 엄청나게 꼼꼼한 이야기꾼인 저자의 또 다른 책을 찾아봤어요. 한국에 번역된 책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아니고 '프랑켄슈타인의 고양이'. 과학기술이 동물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탐구하는 책이에요. 당연히 빛과 그늘이 있습니다. 그물에 걸려 괴사한 꼬리 대신 인공 꼬리를 이식받은 돌고래 윈터와 사고로 뒷발을 잃었지만 의족을 단 검은 고양이 오스카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같은 글이 몇 백장 반복되어도 놀라지 마세요! 이 책은 '조판 참고서'니까요! 책을 펼치면 다양한 서체의 크기와 자간, 행간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책의 본문을 디자인할 때마다 같은 크기의 책도 아주 미세한 차이에 따라 글자의 크기와 행간이 달라보여요.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다 출력해볼 수 없기에 이 책의 도움을 받아 큰 흐름을 잡아봅니다. 제 책상에 항상 꽂아두고 자주 펼쳐본답니다. 🔇 모베 - Histoire de l'Architecture (절판) 프랑스의 국립교량토목학교 교수 오귀스트 쇼아지(Auguste Choisy)가 1899년 두 권으로 펴낸 『건축의 역사』를 2001년 영인본 한 권으로 묶은 책입니다. 건설과 생산을 중심으로 서양 건축사를 서술한 책의 교정을 시작하면서 들춰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림만 봅니다. 건물을 아래에서 올려다 본 그림으로 아주 유명한 책이거든요. 7월에는 ❝비발디❞ 🔇 모베 여름에 손이 많이 가는 작곡가가 있다면 비발디 아닐까 싶어요. 푸른 하늘과 바다가 햇살을 더 눈부시게 하는 베네치아의 풍경과 어우러진 비발디의 이미지는 무척 상투적이지만, 뻔한 조합은 안전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7월을 맞아 비발디의 음반 몇 개를 골랐습니다.
⓵ 사계를 빼놓을 순 없겠죠. 십수 년 전 비발디를 누가 더 빨리, 더 과격하게 연주하는지 경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유행과 무관하게 새로운 역사적 접근을 시도한 음반입니다. 어깨에 걸고 연주하는 첼로, 최소한의 악기 편성으로 실내악에 가까운 사계로 카위컨의 녹음입니다. 헤비메탈 비발디에 물리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⓶ & ⓷ 비발디는 얼핏 비슷비슷하게 들리는 현악 협주곡을 엄청나게 작곡했습니다. 그중 한 악장이 2분 미만, 곡 전체도 5-6분에 불과하고 솔로를 지정하지 않은 곡들을 모은 앨범입니다. RV127은 두 앨범 모두에 수록되어 있는데, 마르콘과 알레산드리니의 해석 차이를 엿보기에 좋습니다. 저는 다이나믹스가 상당한 이 곡을 오디오 시스템 성능 체크용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⓸ & ⓹는 첼로 곡으로 골랐습니다. 장-기엔 케라스가 런던 위그모어홀에서 비발디를 연주하는 모습을 본 뒤, 사랑에 빠졌습니다. 비발디의 첼로 협주곡에서 기대할 수 있는 우아한 경쾌함의 정수를 들려줍니다. 브뤼노 콕세의 첼로 소나타는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가는 다소 건조한 첼로 소리가 인상적입니다. 1700년 ‘크리스티아니’ 스트라디바리우스를 1996년 복각한 첼로 소리인데, 습한 요즘 날씨에 더 어울립니다.
⓺은 성악곡입니다. 비발디의 대표적인 종교곡 ‘니시 도미누스’와 ‘스타바트 마테르’가 함께 수록되어 있는 이 앨범의 주인공은 최근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카운터테너 필리프 자루스키입니다. 영상을 보지 않는다면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짐작하기 힘들 거에요. 정서적, 신체적으로 때묻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목소리입니다. 낮의 더위가 지난 한밤, 공기를 가르는 미성을 경험해보시기 바랍니다.
책 좋아하는 친구가 떠올랐다면? |
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