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지역, 학교, 계급, 나이, 인종 등 소수자의 위치에 처해 불편하고 미묘한 감정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많지는 않을 겁니다. 그 감정의 강도, 그리고 이를 포착하는 개인의 감수성의 차이는 엄청나겠지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이너 필링스』에서 자신의 감정과 공명하는 문장, 그래서 그 감정을 증폭시키는 단락 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거라고 확신합니다. 전혀 찾지 못한 운 좋은(?) 분들은 타인을 이해하는 감수성을 기르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 철판이 표지인 책은 좀 더 아래에 있습니다. 자기 안위를 찢고 나온 책: 『마이너 필링스』 편집 후기 🌱 죽순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는 하루아침에 시력을 잃는 전염병이 발생하며 시작합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둘 눈이 멀고, 눈 먼 자들은 색출돼 격리됩니다. 폐건물에 갇힌 이들 사이에서 위로와 돌봄, 협력 같은 가치는 빠르게 말살되고 말죠. 작가는 편리하고 영리하게 시력을 잃지 않은 한 명을 심어둡니다. 평범한 도시가 지옥으로 변하는 그 불쾌하고 역겨운 장면에 독자들이 열심히 이입하도록 말이죠. 여하간 아직 안 읽으신 분께서는 올여름에 꼭 읽어보세요.
중간에 끊을 수 없어 밤을 새거나 밥을 건너뛰어야 할 만큼 재밌고(저는 전자), 어떤 등장인물에 이입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를 전할 수도 있는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마이너 필링스』에서는 한마디로 정리됩니다. 시력을 잃고도 하얀색을 보는 자들의 세상.
저는 『마이너 필링스』를 편집하면서야 그 요상한 장치를 알아챘습니다. 사라마구의 도시에서 눈 먼 자들은 하얀색에 갇힙니다. 검정색이거나 노란색이거나 갈색이 아니라요. 불가사의한 전염병의 이상함을 보여주려던 장치겠으나, 그래도 인간에게 남은 단 하나의 색을 흰색으로 설정한 건 아무래도 의미심장하죠.
『마이너 필링스』는 통통 튀는 발랄한 색감으로 팬덤을 쌓은 웨스 앤더슨 작품 속 인물은 거의 하얗다는 것도,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못해 안달 난 청년들은 죄 백인이고, 비백인의 어린 시절엔 그렇게 되돌아갈 순수라곤 없다는 것도 똑똑히 확인시켜줬습니다.
솔직히 『마이너 필링스』 편집은 어딘지 편안하지 않았어요. 한가로이 몽돌해수욕장을 거니는 사람의 발바닥을 베는 유리조각 같은 글이거든요. 살면서 무시했거나 미처 알지 못해서 지켜졌던 평화의 우무질을 천천히 찢는, 봉합하려 허둥지둥하는 사람의 손목을 낚아채 기어코 현실을 쳐다보게 하는 글이죠.
그런데 또 이상한 게요, 힘들지도 않았어요. 일단 읽는 맛이- 쫀쫀하고 찰기가 있어요(이것이 필력이다!). 상처를 징징대지 않고 말하는 태도도 멋지고요. 자기 안에서 자란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적 태도를 점검하면서 “내가 받은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관해서도 쓸 수 있을까? 나는 상대에게 용서를 요구하지 않고 사과할 수 있을까?”라고 읊조리는 대목에선 몇 번이고 멈춰 섰습니다. 저자는 결국 책을 통해 이 질문에 얼마간 답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답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하반기의 책들 『나무의 맛』 위스키, 홍차, 치즈, 와인, 피자 맛의 원천은 모두 나무라고? 위스키는 곡물, 홍차는 찻잎, 치즈는 동물의 젖, 와인은 포도, 피자는 토마토가 핵심 아닌가? 나무의 뿌리, 수액, 잎, 가지, 줄기, 연기가 음식의 맛과 향에 얼마나,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해 죽겠는 음식평론가의 이야기. (저자가 1년째 마티 인스타그램 좋아요❤️ 출석 중) 『바흐 종교 칸타타 전곡』 날씨가 쌀쌀해지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바흐를, 그중에서도 칸타타 앨범을 만지작거립니다. 바흐가 남긴 200여 곡의 종교 칸타타는 성경과 시인들의 풍요로운 텍스트와 바흐의 다채로운 기악이 한데 어우러진 바로크 음악의 보고입니다. 그러나 가사가 진입 장벽을 높게 합니다. 그래서 바흐 종교 칸타타 가사 전곡을 번역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를 교회력에 맞춰 엮어낼 계획입니다. 올 겨울 1년 동안 바흐 듣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시죠! 바흐는 매주 칸타타를 쓰기도 했으니, 듣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틀을 바로 잡는 성교육: 포괄적 성교육을 향하여』(가제) 성교육 강사 자격은 누가 인증할까요? 현행 성교육 의무 교육이 몇 차시죠? 성교육은 교육부 소관일까요, 여성가족부 소관일까요? 이 책은 성교육 지침서가 아니에요. 성교육을 하나의 교육 제도로 보고 틀을 다시 짜는 제안을 던지는 책이죠. 열심히 작업하고 있고, 11월 안에는 꼭 나옵니다. 『젊고 아픈 여자들』 (앳 시리즈 2권) 20대 때 갑상선암을 앓았던 저자가 젊은데 아프고, 젊고 아픈데 여성이라서 경험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질병과 질병이 주는 고통, 치료 과정과 수술 뒤에 남은 흉터 같은 것들이 자신의 일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따져보면서요.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은 성 정체성, 인종, 계급 등에 따라 다릅니다. 건강도 자기 능력으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아프지만 괜찮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느껴봤다면 이 책을 기다려주세요. ❝ 짧은 연휴에 손에 쥔 책 ❞ 🦈 조스바, 『레닌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절판) 팔랑에게 적극 추천받아 읽고 있습니다. 무용, 연기, 영화감독, 사진 등 예술의 모든 영역을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그녀의 모습은 놀라움을 넘어서 기이하게 느껴져요. 나치스에 협력한 혐의로 투옥되었다 무죄로 풀려나지만 전후 50년 동안에도 그녀를 반대하는 시위와 법정 고발이 끊이지 않았다고 해요. 🧼 퐁퐁,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 왜 동물의 소통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늘 '인간'일까요? 비인간 동물도 체계가 잡힌 언어, 감각기관, 표정, 몸짓, 신체 언어를 사용하여 소통하고 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둔감한 인간이 인지하지 못할 뿐이죠. 하나 소개하자면, 미각에 의존하여 소통하는 프레리도그는 다른 프레리도그를 만나면 일단 프렌치키스부터 합니다. 그러다 상대가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면 불쾌한 키스에 경악했다는 듯 펄쩍 뛴다고 해요. 인간이 프레리도그만큼 미각이 발달하지 않아 참말로 다행입니다. 🌱 죽순, 『행복의 약속』 행복, 희망, 사랑 같은 단어에 경기를 일으키던 때가 있었어요. 유예되고 좌절될 뿐인 이것들에 질려서요. 청년 공공임대주택 이름이 '행복주택'인 걸 보고 성질을 낼 정도였답니다. 지금은 좀 누그러진 편이지만, 쉽게 말하는 '행복'에 대한 약속이 뭔가를 제대로 망가뜨리고 있을지도 모른단 의심에서 읽고 있어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불편함이나 죄책감 없이 바라보기 힘든 요즘입니다. 라투르는 인간의 영향 바깥에 있는 달 말고는 그런 대상이 없다고 말합니다. 팬데믹과 기후변화의 폭풍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뭣이 됐든, 읽는 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을 책이겠지요? 수없는 글쓰기, 문장들 책 맨 앞에 둘 에세이. 어휘들이 살갗처럼 친숙하지만 빨리 읽을 순 없어요. 다 읽었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 내 책장 속 세상 특이한 책 2: The Machine ❞ 🔇 모베 세상에 낯설고 신기한 책이 많지만, 이런 책이 또 있을까요? 이 책의 커버는 금속입니다. 사진으로 잘 전달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틴 케이스 또는 틴 박스라고 불리는 양철(洋鐵)로 책 전체를 감쌌습니다. 책을 펼치기 위해 책홈(출판계에서 흔히 ‘오시’라고 부르는) 자리에 경첩이 달려 있습니다. 가죽이나 천 등 종이 이외의 재료가 책에 사용되지만, 책의 세상에 금속이 등장하는 예는 무척 드뭅니다. 저는 이 책 말고 보지 못했습니다. 혹시 금속이 사용된 다른 책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세요.
사진 속의 책은 1968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펴낸 The Machine 입니다. 부제는 “기계 시대의 끝에서 본”(as seen at the end of the machine age)입니다. 기계가 선사한 충격과 그 여파로 생겨난 예술 사조, 자동차 등의 산업생산품 등을 정리하는 동명의 전시에 맞추어 출간된 전시 도록입니다. 20세기 중후반의 분수령인 1968년에 대단히 시의적절하게 나온 책입니다.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주제의 전시를 개최해 분기점을 만들어내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실력을 보여주는 많은 예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표지 디자인은 스웨덴 화가 앤더스 외스털린이, 금속을 이용한 북 디자인은 스웨덴 광고의 개척자 중 한 명인 스티그 아르브만이 맡았습니다.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뉴욕 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서 책 전체 PDF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무겁고 차가운 금속 표지를 느낄 수 없겠지만요. ![]() ![]() ❝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8월 북토크 ❞ 🎊 뉴스레터 1주년 기념 이벤트 당첨자 🎉 신규 구독자님, 기존 구독자님 모두 반갑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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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