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30일, 각주 1호를 발송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훌쩍 지나 1주년을 맞이했어요. 2주에 한 번 목요일 아침마다 스물다섯 편의 뉴스레터를 읽어주신 구독자님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사실 각주 26호 발행일이 다가올수록 심장이 두근거리고 진땀이 삐질삐질 나고(더위 때문 아님) 초조해졌어요. 1주년 뉴스레터에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 뭔가가 뭔가, 그런데 <마이너 필링스> 마감도 해야 한다, 하는 압박을 느낀 것이죠. 정신 없는 와중에 <마이너 필링스>를 다시 살펴보는데, 문득 '옮긴이의 글'을 나누고 싶어졌습니다. 책을 누구보다 깊이, 여러 번 읽은 사람이 쓴 글이 여러분과 <마이너 필링스>를 잘 연결해주리라 믿습니다. 책 읽을 때 밑줄 긋는 대신 포스트잇을 붙이는 편인데, 번역자의 깊은 통찰이 담긴 문장들에는 연필 꾹꾹 눌러 밑줄 긋고 싶어지더라고요. '연필 꾹꾹 눌러 밑줄을 긋는다고...?' 하며 놀란 분들 있나요? 냉큼 스크롤을 내려서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지 확인해보세요! 가서 한마디 쏘아주는 것, 그것이 주저되는 것은 아니다 🖊 <마이너 필링스> 번역자 노시내 <마이너 필링스> 가제본을 사전 홍보 차 몇몇 기자와 작가, 독자에게 골고루 보내고 일주일쯤 지나 기대에 찬 반응이 하나둘 도착했습니다. 거기에 ‘번역이 좋다’라는 평이 꽤 있었습니다. <마이너 필링스>는 마티와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해온 노시내 선생님이 번역하셨습니다.
단정하고 정확한 번역으로 편집부의 노고를 한결 덜어주시는 노시내 선생님은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 스위스, 러시아 등지를 떠돌며 벌써 20년 넘게 타국 생활 중이세요. 이것이 <마이너 필링스> 번역을 노시내 선생님께 의뢰드린 이유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편집부는 노시내 선생님께서 캐시 박 홍의 문장과 삶에 감정을 이입하고 어떤 미묘한 뉘앙스를 읽어내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으셨으리라 예상했어요. ‘옮긴이의 글’이 들어오기 전까지는요. 허나 결정적인 간극이 있었고, 노시내 선생님은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깊은 통찰에 여러 번 감탄하게 되는 ‘옮긴이의 글’ 일부를 뉴스레터에 단독 선공개합니다. 이 책을 옮기는 경험은 이전의 번역 작업과는 사뭇 달랐다. 복잡한 심경과 감정이입으로 가득한 여정이었다. (...) 외국에서 25년 가까이 살면서 겪었던 많은 일이 생각나고, 잊었던 기억들이 엉뚱한 지점에서 되살아났다. 오래전에 알았다가 연락이 끊긴 사람들의 얼굴이 새삼 떠올랐고, 망각의 구덩이에 묻어두었던 불쾌했던 기억도 비어져 나왔다. (...) 저자의 글에 묻어나는 여러 가지 세밀한 감정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체험하는 분노, 좌절, 불만, 우정, 애증, 고집, 자기 회의, 양가감정, 투지 등이 마치 내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생생하게 느끼다 보니 아프기도 했다. 저자의 글이 내가 겪었던 일과 밀착되어 예민하고 아린 부분이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문 내 상처가 행여 덧날까 봐 남의 아픔을 살피는 것을 두려워할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되고, 그럴 나이도 지났다. 그리고 또 내가 무슨 그렇게 힘든 일을 겪었다고 다른 이의 글을 보며 내 생채기 따위를 두려워한단 말인가. 저자와 공감한다는 것은 저자와 동일한 체험을 공유한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 주장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나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이지만 한국계 미국인은 아니다. 그러하니 저자가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겪어온 일에 대해 내가 과연 얼마나 잘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
미국에서 생활할 때는 차별적인 언사를 듣거나 아시아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깔린 헛소리를 들어도 내 집, 내 나라에서 타자화되는 체험이 아니어서 상처가 덜했다. 그러나 외국인, 더 정확히 말하면 스위스 국적의 백인 남성과 결혼하고 아시아 여성 이민자로서 백인이 절대다수인 남편의 나라에서 몇 년 생활한 이후로 나의 외부자로서의 촉수는 지극히 예민해졌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위스를 제2의 집으로 삼게 된 이후부터는 은근한 차별, 따돌림, 타자화가 미국 시절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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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한마디 쏘아주는 것, 그것이 주저되는 것은 아니다. 그거야 못 할 것도 없다. 문제는, 그런 내면적 갈등과 심지어는 언어적, 신체적 충돌에 노출될 가능성 속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게 스트레스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주류 다수 백인 남성들은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다. 바로 이 인구 집단에 속하는 남편은 지금이야 나만큼이나 이 문제에 예민하지만 결혼 초기에는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바를 구체적으로 일일이 설명해주어야 비로소 그것을 인식했다. 그렇게 설명하면서 느끼던 내 심정, 그것이 바로 '소수적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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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번역하여 저자의 소중한 목소리를 한국 사회에 전달하는 작업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 되어 저자가 소망하는 변화에 미약하게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각주* 1주년, 구독자님들이 보내온 축하와 응원의 말들 🎉 사랑해요, 마티. 🎉 1주년 축하드립니다! 책으로도 만나고, 일하면서도 한번 뵈며 두근두근했던 어느 소심한 독자가 사랑을 보내드립니다! 앞으로도 각주가 오는 매일을 기다릴게요. 🎉 1주년 축하드려요! 출판사 뉴스레터 중에서 제일 알차고 제일 재미있고 출판사 소식 듣고 싶어 하는 구독자들의 니즈를 매번 가득 충족시켜주는 마티... 최고의 출판사라고 생각해요. 🎉 힘껏 축하드립니다. 뒤늦은 레터 구독자로서 2주년 축하도 드릴 수 있는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 구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글들이 참 좋습니다. 읽다 보면 어느새 예스24 어플을 켜고 보관함에 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읽기’를 시작한 저에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찬찬히 읽어가겠습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와, 저도 마티 각주 너무 좋아하고 재밌게 읽고 있는 출판계 종사자입니다. 축하드려요! 1년 동안 재미난 읽을거리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 보통 출판사에서 오는 메일은 아예 안 읽고 버리게 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읽혔어요. 💌 마티의 각주 보는 낙으로 아침을 열어요! 더 자주 만나고 싶어요 :) 💌 늘 재밌고 알차고 유익해서 너무 좋은데, 가끔은 이걸 쓰신 분들의 노고가 걱정될 정도로 알찹니다 흑흑 💌 이렇게 알차다니...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 편집자, 디자이너 출판 주체들의 일상의 우연한 계기에 뜬금포 책들이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이 너무 재밌습니다. 💌 짧네요! 하지만 이것은 재미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아쉬움입니다. 💌 재밌는데 짧아서 아쉬워요! 하지만 다음에 또 받아봐야 하니까 불만이나 개선점은 아닙니다!!! 💌 너무 짧았다.... 너무 아쉽다... 이 테스트의 출발은 독자님의 댓글이었습니다. 신간 <우리는 실내형 인간>에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에 색연필로 밑줄 긋고 포스트잇 붙이고 사진을 찍어서 마티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요, 한 독자님이 표시 방식이 재미있다고 댓글을 남기셨더라고요. 그때부터 마티 편집부는 모여서 각자 책을 어떻게 읽는지 수다를 떨기 시작했어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는지, 밑줄을 긋는다면 어떤 필기구를 사용하는지, 밑줄은 직선인지 물결인지 아니면 문장 앞뒤로 괄호 표시만 하는지, 포스트잇은 어떤 방식으로 붙이는지, 책 읽기 전에 표지의 접는 선을 따라 책을 쫙쫙 펴주는지, 책갈피는 영수증·띠지·명함 중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같은 디테일한 방식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죠.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고전 같은 에세이죠. <서재 결혼 시키기>에서 저자 앤 패디먼은 책을 사랑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책에 허용된 일은 그것을 읽는 것뿐"이라고 믿으며 책과 정신적 사랑만 나누는 '궁정식 사랑의 신봉자'와 "책의 말은 거룩하지만" 책을 원하는 대로 무람없이 다루는 '육체적 사랑의 신봉자'. 여러분은 책을 받들어 모시나요, '책아일체'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지지고 볶으며 야단스럽게 다루시나요? 아니면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책을 애틋하게 여기시나요? '그렇다'에 해당하는 문항이 몇 개인지 세보세요! 1. 나는 책을 읽기 전에 양면을 쫙 펼친다.
2. 나는 띠지를 버린다.
3. 나는 책날개를 책갈피로 쓴다.
4. 나는 책에 밑줄을 긋는다.
5. 나는 책의 귀퉁이를 접는다.
6. 나는 책에 서명을 한다.
7. 나는 책을 읽으면서 여백에 메모를 한다.
8. 나는 외출할 때 책을 북커버에 넣는다.
9. 나는 책꽂이 있는 방의 블라인드를 반드시 내려놓는다.
10. 나는 책을 냄비받침으로 쓸 수 있다.
11. 나는 급히 메모를 해야 할 때 빈 면을 메모지로 쓸 수 있다.
12. 나는 과자를 먹으면서 책을 읽는다.
13. 나는 책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다.
14. 나는 책 사이에 나뭇잎이나 꽃잎을 끼워 넣는다.
15. 나는 책장에 꽂힌 책들 위에 책을 눕혀 보관할 수 있다. ☛ 자기 유형 확인하기 ☚ 그렇다 1-3개 → 신줏단지형 그렇다 4-7개 → 애지중지형 그렇다 8-12개 → 영역표시형 그렇다 13-15개 → 막가파형 ![]() 당신은 책 사원을 지키는 제사장. 어떤 물건보다 책이 귀하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세월이 흘러 책이 낡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볼펜 똥과 연필 가루, 접힌 자국과 커피 방울에 망가지는 건 용납하지 못하죠. 비를 맞아 책이 울면 같이 우는 사람이고요. 이사할 때 “책은 제가 쌀게요”까지 해봤다면, 인정! ![]() 당신은 책 놀이터를 떠날 수 없는 보호자. 가방 속 다른 물건이 행여 책에 상처를 낼까, 책 사이에 지우개 가루가 낄까 항시 살핍니다. 책을 살 때 눌리고 찍힌 자국을 조금 유심히 보는 편이죠. 책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져서 혼자 배시시 웃어본 적 있을걸요. 이사하고 “책은 제가 꽂을게요”라고 말해봤다면 100프로입니다! ![]() 당신은 책 길을 걷는 산보자.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듯 밑줄, 별표, 동그라미, 인덱스까지 잔뜩 표시합니다. 중고 책방에서 ‘하’로 분류될 것이 확실하지만 그만큼 ‘내 책’으로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요. 표지에 묻은 손 기름의 차이로 남의 책과 내 책을 구분할 줄 안다면, 당신은 지금 책을 읽을 때가 아닙니다. 국과수에 지원하세요. ![]() 당신은 책 세계의 불문율을 깨는 자유인. 페이퍼백을 둥글게 말아 쥐는 손맛을 즐기고, 거침없는 책 넘김으로 미풍을 일으키는 과감한 매력의 소유자죠. 새 책을 샀는데 누렇게 변색된 책이 와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수영장에서 튜브를 타며 책을 펼쳐 든 적이 있나요? 워터 프루프 책이 나오는 이유는, 바로 당신을 위해서인가 봅니다. ❝책 교환권 3만 원 권❞ 당첨 확률 급상승💥 ❝아이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1주년 기념 선물 💕 당첨 선물이 무려 책 교환권 3만 원 권인 <마이너 필링스> 출간 전 동네서점 이벤트가 8월 1일 종료됩니다. 전국적인 거리두기 3-4단계와 불볕더위가 이 신박+귀엽+노동집약적 이벤트의 흥행을 조금(?) 가로막았고🤼♀️ 그래서 당첨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우리끼리 비밀인데요, 도화북스(서울 공덕), 동아서점(속초 교동), 소리소문(제주 한림), 책방이층(대구 대신동)에서 시도하시면 99% 확률로 당첨되실 듯요. 책 교환권은 해당 서점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으니 너무 멀리 원정 가진 마세요. * <마이너 필링스> 출간 전 이벤트를 함께하는 동네서점 * 도화북스, 동아서점, 번역가의 서재, 소리소문, 스테레오북스, 이후북스(망원/제주), 인덱스, 책방서로, 책방이층, 책방토닥토닥, 풀무질 ![]() 각주 1주년을 기념하며 작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1년간 함께 해주신 분 중 10분을 추첨해 커피 기프티콘을 선물로 드립니다.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줄 아이스 아메리카노예요! 그동안 보낸 뉴스레터 25편을 꼬박꼬박 열어보신 분이라면 당첨 확률이 높을 거예요. 뉴스레터를 한꺼번에 모아 읽는 '정주행' 파라면, 이벤트 기간(8월 10일까지)이 넉넉하니 열흘간 찬찬히 읽어보시길요. 오늘부터 신규 구독하신 분들께도 선물을 드릴 예정인데요, 아직 마티의 각주를 모르는 주변 분들에게 마구마구 소문내주세요. 🗣 (마티 SNS에 뉴스레터 구독 이벤트 안내문이 올라갈 예정!) * 8월 12일에 발송되는 각주 27호*에서 당첨자를 발표합니다. ❝내 책장 속 세상 특이한 책: 『한국군사혁명사』❞ 🔇 모베 책장에 꽂힌 낯선 책들을 가끔 하나씩 소개해볼까 합니다.
오늘의 책은 무척 두껍고, 제법 오래됐고, 흔치 않습니다. 1961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와 김종필 등은 1963년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기로 약속합니다. 자신들은 2년간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임시 과도 정부만 맡고, 다시 군인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이죠. 물론 이는 철저한 기만이었고, 1963년 10월 15일 대통령 선거에 박정희는 공화당 후보로 출마합니다.
쿠데타 일당은 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이 이룬 성과를 홍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적인 면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지만, 60년대였으니 그 방법은 책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책이 엄청난 권위를 갖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스스로를 혁명군이라 불렀던 그들이 만든 책의 제목은 <한국군사혁명사>입니다. ‘군사혁명’이라는 표현도 고작 1년6개월을 ‘사’라고 부르는 것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지만, 볼륨은 이 과대망상을 그럴싸하게 포장합니다. 선거를 두달 앞둔 8월말에 출간된 이 책의 볼륨은 자그마치 1권 1856쪽, 2권 714쪽에 달합니다. 가로 19센티미터 세로 26센티미터, 2단 조판에 폰트 6 내외이니 원고량은 수만 매 이상일 듯합니다. 이 정도 분량의 책을 활자로 어떻게 조판하고 인쇄했을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동원된 출판노동자에게 경의를.
책에는 1961년 6월부터 62년 12월까지 1년6개월간 군사 정권이 한 거의 모든 일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과시를 위한 과장이 있겠지만, 그 시절 산업과 경제 지표 등을 확인하는 데에는 유용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저는 이 거대한 과시의 데이터 속에서 프로파간다의 도구로서 건축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 책을 구했습니다. (참고로 주택과 각종 시설물을 제외한 ‘건축’은 단 세 개만 언급됩니다.) 책 좋아하는 친구가 떠올랐다면? |
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