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뉴스레터를 발행하면서 마티 편집진은 일단 시작하자, 차차 수정해나가자, 마음먹었더랬지요. 마티의 각주를 스무 번쯤 보내고 나면 노하우가 잔뜩 쌓이고 '개편'이란 것도 거뜬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우리의 거대한 벽돌책 『한국주택 유전자』를 마감하는 틈틈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고, 구독자들이 보내준 피드백을 꼼꼼 살펴봤습니다. 각주를 눈여겨 읽어온 분들이라면 이 소박하고 소소한 변화를 알아보셨을까요? 마티의 금손 디자이너 조스바가 컴퓨터 화면에서, 모바일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디테일을 매만졌답니다. 그리고 새로운 코너를 준비했어요. 매일매일 책을 읽고 사고 만드는 마티의 풋노터들이 매호 주제 하나를 정하고, 그 주제와 연결되는 책들을 가볍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피드백 보내실 때 재미있는 주제를 마구마구 던져주셔도 좋겠습니다. 참, 풋노터들이 닉네임을 정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먼저 소개하면, 내적 친밀감이 조금 더 쌓일까요? 🔇 모베: 레코드 재생의 성패는 저음의 해상도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more bass입니다. 🦈 조스바: 평범한 이름이라 독특한 이름을 갖고 싶어요. 성은 조 씨, 이름은 스바입니다. 🦻 팔랑: 귀가 어찌나 얇은지 풍력발전소도 돌릴 기세랍니다. 펄럭펄럭~ 🧼 퐁퐁: 일하기 전에, 일하기 싫을 때, 구멍 퐁퐁 뚫을 기세로 일단 쓸고 닦습니다. 🌱 죽순: 비 온 뒤를 좋아합니다. 우후죽순의 그 죽순 맞아요. 저 도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어 🔇 모베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한국주택 유전자』의 실물을 보여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아직 제작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이 뉴스레터를 열어볼 무렵에 제작을 마치고 창고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책은 손에 쥐지 못했지만, 이번에도 『한국주택 유전자』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한국주택 유전자』는 오랜 기간 준비한 책입니다. 저자의 첫 구상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10년은 훌쩍 넘고, 저희와 계약을 언제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편집과 디자인에도 대략 1년은 족히 걸렸습니다. 박철수 선생님은 이 기간 동안 새롭게 발굴된 자료를 계속 업데이트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자료를 쌓아두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료 발굴이 새로운 주제의 글쓰기를 추동하는 경우였으니까요. 실제로 이 책에 실린 도면과 사진 가운데 80퍼센트는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이 없는 것들입니다.
이런 새로운 자료의 홍수 속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편집 막바지에 추가된 주한 미국경제협조처의 마포아파트 반대 문건입니다. 당대 한국 최고의 건축가들이 설계한 마포아파트 도면을 미국에서 검토한 뒤 조목조목 구체적인 사항을 짚어가며 비판하는 내용인데요, 마치 학생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어’하고 지적하는 설계교수의 목소리 같습니다. 몇 문장만 옮겨봅니다.
✦ 지형 조건에만 주목한 도면은 완성도가 너무 떨어진다.
✦ 진출입 동선, 상하수도 계통, 전력망과 조명, 표면 배수 등등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 방화계획 역시 불분명하다. 10층 건축물에 단 하나의 계단실로는 위험하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계단실은 외기에 노출되어야 한다.
✦ 단위주거 각실의 마감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 안타깝게도 도면은 일반적인 곳 이외에는 어느 것도 자세하게 표기하지 않고 있다.
✦ 구조설계에 대한 검토가 전혀 없다.
✦ 2.6미터 층고를 산정했는데, 보의 깊이가 60센티미터라면 순 높이는 2미터에 불과하므로 의문이다.
✦ 난방방식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 폭우 대비책이 없다.
✦ 식수공급을 위한 물탱크와 펌프 등등이 필요할 것인데 이를 전혀 확인할 수 없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저 도면으로는 아파트 못 짓는다’고 꾸짖습니다. 이 문건은 1962년 한국 건축가들이 건축 계획, 구조, 설비에서 무엇을 해보았고 무엇을 할 수 없었는지 알려주는 일람표나 마찬가지입니다. 책에는 처음 소개되는 도면과 비화가 즐비합니다. 주택이라는 가장 크고 가장 비싼 재화, 한 시절의 모든 물질문화가 집약된 상품을 통해 지난 시절 한국을 돌아보는 『한국주택 유전자』를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디자이너에게 제작이란 : 제본, 종이, 후가공에 관하여 (feat. 제작부) 🦈 조스바 『전후 일본 건축』의 디자인 후기에서 디자인 과정을 주르륵 적어보았는데요. 이번엔 제작을 중심으로 『한국주택 유전자』 디자인 후기를 적어볼까 해요. 책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 책의 사용과 보관입니다. 이 부분은 제작과 예민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한국주택 유전자』는 각 두 권이 700쪽 정도의 두꺼운 책이기에 이런 책은 되도록 사철 제본(실로 엮는 제본)을 해야 해요. 실로 꿰매는 작업은 비용과 시간이 훨씬 들지만, 무선 제본(접착제로 붙이는 방식)을 하게 되면 독서 중반부에 책등이 '쩌억!' 하고 갈라져 두 동강이 나버릴 수 있답니다. 『한국주택 유전자』는 소프트커버에 재킷을 씌운 구성이지만 하드커버가 아니어도 사철 제본이 가능합니다! 『한국주택 유전자』도 『전후 일본 건축』과 같은 구성이에요. 소프트커버에 재킷, 재킷에 바니시 코팅까지! 바니시 코팅은 코팅을 안 한 것처럼 종이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선택했어요. 본 인쇄가 끝나고 건조한 후 옵셋 인쇄기에 그대로 바니시를 넣고 덧인쇄하는 방식입니다. 일반 코팅, 라미네이팅 코팅은 얇은 비닐막으로 종이의 결을 꽉 눌러버리기 때문에 요철이 있는 종이에 적합하지 않아요. 종이에 요철이 강할수록 그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 코팅이 뜨게 돼요. 코팅은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인쇄 잉크가 손에 묻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등의 이유로 합니다. 일반 코팅은 이 두 가지 역할을 다 해주지만 바니시 코팅은 잉크가 묻어나지 않는 역할만 해주어서 이런 경우에는 독자가 구입하기 전까지 책을 보호하기 위해 랩핑해서 서점에 내보냅니다. 재킷에 사용한 '프리터'라는 종이는 구름처럼 몽글몽글하고 촉감도 한지같이 가볍고 낭창낭창해요. 그리고 속표지의 색이 은근하게 비쳐서 재킷 종이 색은 같지만 속표지 색 때문에 각 권이 다른 색처럼 보이는 매력이 있어요. 한옥의 창호지 같은 느낌도 있고, 지극히 한국적인 책인 『한국주택 유전자』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선택한 종이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작부와 인쇄소의 자문을 많이 구해요. 디자이너도 시행착오를 겪고 경험이 쌓여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정확한 판단은 반드시 상담 후에 내립니다. 책의 조건에 따라(판형, 두께, 종이 등) 제작 방식이 조금씩 달라져야 하기에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해요. 제작은 생산에서 바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고 디자이너를 가장 긴장하게 하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무사히 책이 나와준다면 그제야 발 뻗고 잘 수 있답니다! ❝동물❞ 하면 떠오르는 책 🔇 모베 - 『올빼미와 부엉이』 "가디언의 전설"을 함께 보았으나, 등장하는 수많은 올빼미와 부엉이를 분간하지 못해 꼬마들에게 타박을 받은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 같이 읽기 좋은 글: 「인간이 된 원숭이, 갑충이 된 인간」, 민음사 뉴스레터 한편 65호 코로나19 시대를 통과하면서 땅에 묻힌 동물들을 자주 생각합니다. 살처분 방식은 합당한 걸까요? 동물이 묻힌 땅은 괜찮을까요? 아무도 묻지 않는 동물 대량 살처분 이후를 기록한 이 책, 함께 읽고 싶어요. 🦻 팔랑 -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 여우와 오래도록 같이 살다온 게 분명히 의심되는 이 저자의 묘사를 보노라면, “어쩜, 여우 같네.ᐟ” 하는 관용어가 얼마나 불편부당한지 제가 다 억울해질 지경이에요. 🦈 조스바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쿤데라의 시선으로 개의 삶을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개와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삶을 사는지, 어떻게 함께하는지. 7부 '카레닌의 미소'를 읽어보세요 # 커피 🧼 퐁퐁: 커피를 마실 때 줄곧 드립 도구를 사용해온 저는, 마티에서 신문물을 접했습니다. 모카포트. 물을 한 방울씩 똑 똑 똑 떨어뜨려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 아니라(시작은 점드립이지만 언제나 푸어오버로 완성됩니다), 콰콱콰아아아 소리를 내면서 커피가 위로 솟구치는 방식이 신선하고 통쾌했어요. 무엇보다 커피 긴급 수혈이 필요할 때 금방 준비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고요. 그리하여 집에도 모카포트를 하나 들일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에디터 모베가 챙겨온 비알레띠 무카를 만나고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귀여운 얼룩 무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 카푸치노를 만들 수 있는 모카포트입니다. 곱게 간 원두를 눌러 담고, 검은 통엔 물을, 얼룩 통엔 우유를 담아 끓이면, 커피만 추출할 때보다 더 요란한 소리가 나면서 커피우유가 휘몰아쳐요. 오늘은 우유 넣는 것을 깜빡하는 바람에 무카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셨는데, 그렇다면 무카를 들이는 편이 좋으려나 싶기도 합니다. 참, 모카포트의 진짜 매력이 뭔지 아세요? (남들 다 아는데 뒤늦게 알게 된 자의 흥분) 알루미늄 소재인지라 설거지할 때 세제를 쓰면 안 된다고 해요. 친환경적인 방식이죠. (닉네임이 퐁퐁이지만 세제 퐁퐁과는 아무 상관없어요.) 맛있는 국밥집은 국물 끓이는 냄비 설거지를 안 한다던데, 모카포트로 추출한 커피 맛의 비밀(?)을 알 것도 같습니다. # 맛집 🌱 죽순: 팥을 사랑하는 제 앞에 ‘합’을 추천하는 피드백이 날아들었습니다. 당연히 가봤습니다. 창덕궁 옆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2층에 떡집 ‘합’에서 팥빙수를 합니다. 떡에 팥고물이 왕왕 쓰이니까 떡집과 팥빙수의 조합이 어색하진 않았어요. (빵집만큼 익숙하지 않은 건 왜인가.)
시그니처 메뉴 ‘합빙수’를 시켰습니다. 괄호 안에 ‘유자 빙수’라고 써 있더라고요. 기대 만발.
고운 얼음, 팥, 떡이 단정하게 그릇 안에 들어앉은 모습이 딱 제 취향이었어요. 잎사귀가 넓고 얇은 놋숟가락으로 얼음과 팥을 소담하게 퍼서 입안에 넣으니, 유자향이 알 듯 말 듯 퍼졌습니다. 얼음 위에서 차가워진 떡은 취급 않는 탓에 빙수에만 집중. (생각해보니 떡집에서 떡을 안 먹다니, 뭔가 잘못된 것 같네요.) 우유가 찰박찰박한 그릇 바닥에 가까워지면 유자 알갱이가 나타납니다! 잘게 다진 유자가 쏙쏙쏙. 유자 과육은 쌉싸름해서 호불호가 있을 듯해요. 하지만 빙수에 향을 더하는 역할이라 빠지면 안 됩니다(단호). 참고로, 합의 숟가락이 신의 한 수입니다. 감히 팥빙수를 위한 숟가락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인 숟가락으로 제작하고 싶... 합빙수를 알려주신 구독자님, 고맙습니다🧊 책 좋아하는 친구가 떠올랐다면? |
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