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쪽, 1150컷, 각주 1200개, 드디어 마감합니다.ᐟ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2주마다 띄우던 편지를 한번 거르고 나니 계절이 바뀌었어요. 올해는 비를 타고 여름이 도착했나 봅니다. 오늘은 크레파스 하늘색을 두어 번 정도 겹쳐 칠한 하늘빛이네요. 마티 사무실에 에어컨이 가동됐습니다, 오늘 휴일인데. 😅 거대한 신간 『한국주택 유전자』를 하루라도 빨리 내보내려고 휴일을 잠시 미뤄뒀어요. 그러고 또 드릴 말씀이 있는데, 1400쪽 분량의 책을 마감하느라 결국 '21호 각주 개편'이 한 호 더 미뤄졌다고 고백하면, 부처님의 자비로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주실까요? 🙏각주 독자님들의 평화를 기도합니다---揭諦揭諦波羅揭諦波羅僧揭諦菩提娑婆訶 ![]() ![]() 1400쪽, 1150컷, 각주 1200개, 드디어 마감합니다.ᐟ by 편집자 P 뉴스레터를 한 번 쉬어가며, 또 휴일을 조정해가며 마감을 하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저번에 잠깐 소개한 적 있는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박철수 교수님의 『한국주택 유전자』입니다. 전체 1400쪽에 달하는 이 책(마티가 지금까지 펴낸 책 중에서 가장 두껍습니다)은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이 짓고 산 거의 모든 주택을 망라합니다.
현대건축은 합리적이고 위생적인 주택을 어떻게 대량으로 단기간에 저렴하게 보급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도시화, 양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싸고 위생적인 집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바우하우스에서 이케아까지 모두 여기에 대한 나름의 답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땠을까요? 식민지, 전쟁, 유례없는 이촌향도와 고도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 지난 세기 한국만큼 집이 필요한 곳도 드물었고, 이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들여 여러 유형의 주택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한국건축사에서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별도의 긴 이야기가 필요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주택 유전자』는 이 공백을 충분히 메워주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입니다.
또 주택 건설 문제는 한국 현대사와 문화사 서술에서도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어졌습니다. 억압적인 정권과 대항 문화라는 구도 속에서 군사정권이 벌인 여러 사업들에 주목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쿠데타 세력이 폭력적으로 밀어붙인 프로젝트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시간적, 심리적 거리가 필요했습니다. 이 시절의 건조환경을 연구하는 몇몇 시도가 최근에 일어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제 주택과 관련해서는 결정판이 나왔습니다.ᐟ 아무튼 “주택”은 가장 절실한 것이지만 가장 부족한 것이기도 했습니다(어쩌면 지금도). 돈이 가장 많이 드는 상품이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국민소득이 4,435달러로 2021년의 7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집을 지을 돈과 재료 모두 부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집을 지어 임대하거나 분양할 수 있는 주체도 국가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브랜드아파트는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조선주택영단, 대한주택영단, 대한주택공사 등의 국영기업이 갖은 해외 융자와 차관을 동원해야 겨우 9평 집을 짓거나 아파트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양식과 공법, 자금 출처 등의 이름이 붙은 주택들이 줄줄이 등장합니다. 부영, 문화, 영단, DH, 전재민, 난민, UNKRA, ICA, AID, 재건, 희망, 외인, 상가, 국민, 새마을, 불란서, 화란, 다세대 등등. 이 책은 이 모두를 빠짐없이 다룹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다채로운 주택들이 기억에서 쉽사리 사라지고, 오늘날의 아파트로 모든 집들이 수렴되어 가는지를 추적합니다.
일일이 소개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도면, 사진, 자료 들이 처음 공개됩니다. 수록된 이미지 개수가 1권에 568개, 2권에 565개에 달하니, 작은 아카이브라고 해도 좋습니다. 한국 현대사, 건축과 도시에 관심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특정 시기 한국의 주택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가 요긴할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도 대단히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책입니다.
다음 뉴스레터에서 완성된 두툼한 실물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다른 세계를 향한 연대 - 10년 전 책을 다시 펴들며 by 편집자 J 파고들면 끝이 없는 얘기라고도 하고, 어디에서 시작해 어떻게 끝내야 할지 막막하다고도 하는, 이 아득하고 절망적인 그리고 끝나지 않는 역사는 바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저도 반이스라엘 입장을 드러낼 때 혹시 잘못 알아서 틀린 부분이 있을까봐, 또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복잡미묘한 부분을 건드리는 실수일까봐서 조심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 거주 지역의 무차별 폭격은, 가식적인 검열을 당장 집어치우도록, 이스라엘이 점령한 저 땅에서 벌어져야 할 상식적이고 당연한 상황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제대로 쳐다보도록 만듭니다. 이 사태는 종교와 관련이 없는 폭압임을, 각자의 입장이 비등하게 부딪치는 분쟁도 아니라는 것을 세계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이드 연구와 정신세계의 뿌리를 알 수 있는 『펜과 칼』 『펜과 칼』은 마티에서 펴낸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 가운데 네 번째이고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룹니다.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글과 책을 꾸준히 써왔지만, 한국에서 좀처럼 번역되지 못했습니다. 『펜과 칼』은 94년부터 효력을 발휘하기로 약속했던 ‘오슬로 협정’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주제로 데이비드 버사미언(학자이자 언론인, 활동가이기도 한)과 함께 한 대담집입니다. 그는 이 짧고 강력한 대화에서 이스라엘이(미국의 공모 아래)이 어떤 방식으로 팔레스타인의 이미지를 세계에 고착화하는지, 종교의 문제인 척 가면을 씌우는지 직시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지식인들이 자본과 입김에 포박된 언론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아가 지식인이 이 시대 속에서 어떤 서사를 구축해야 하는지 지식인의 침묵이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지 알아차리고 행동하기를 촉구합니다. 시의성이 사라져 이 책을 들춰 볼 필요가 없는 때가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함께 읽고 보면 좋을 링크들(파란색 텍스트를 클릭하면 연결됩니다.)
➥ 편집자 E의 댓글: 저는 요즘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 사고로 숨진 스물셋 청년 이선호 씨 사건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고, 이 죽음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안전관리가 제대로 되었다면, 무리한 인원감축이 없었다면요. 유가족은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지만 아직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기에 그가 숨진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장례도 못 치르고 있습니다. 분노와 답답한 마음에 다시 찾아 읽은 책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죽음과 그들이 처한 현실을 기록한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입니다. 알지 못했던 죽음의 목격자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어떤 변화의 시작은 결국 ‘앎’이 아닐까요. “지하철을 고치다가, 자동차를 만들다가, 뷔페 음식점에서 수프를 끓이다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생수를 포장·운반하다가, 햄을 만들다가, 승강기를 수리하다가...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17쪽) 얼마 전, 노동절을 기념해 이 책이 새 옷을 입었습니다. 초판에 이어 리커버판 표지 디자인을 맡은 김동신 디자이너는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름을 드러내고 불러보는 것을 콘셉트로 했다”고 말합니다. 리커버판 표지를 감싸고 있는 하얀 레이스 페이퍼를 가만히 쓸어내려 보면 *표 뒤로 ‘알지 못했던 이’들의 이름이 희미하게 비쳐요. 이 이름들을 잊지 않는, ‘겸손한 연대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밤입니다. ➥ 편집자 S의 댓글: J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침잠해 있는 요즘, 저는 아동학대 문제에 부르르 떨고 있습니다. 한국에선 부모에게 ‘자녀징벌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아동학대를 사적인 틀 안에 가두는 암묵적인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결이 좀 다르지만, 어떤 일에 처음 도전하는 경우나 어떤 작업에 서툴고 어리숙할 때 어린이의 ‘-린이’를 붙이는 흐름이나 ‘초딩’, ‘급식충’ 같은 ‘나이 어린 사람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이제는 거의 비판의식 없이 쓰는) 조어들도 불편하고요. 어린이가 자라나는 푸른 5월, 『이상한 정상가족』과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아동의 탄생』과 『맨발로 도망치다』를 꺼내봅니다. 혼자가 아닌 날들을 위하여 by 편집자 S 지난주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북토크가 서울 성수동에 있는 서점 인덱스숍에서 열렸습니다(왼쪽 사진). 베를린 페미니즘 현장 소식과 독일 이주 팁을 요래조래 버무려 알찬 이야기가 오갔어요. 베를린에서 열리는 페미니스트 시위 대부분은 난민과 이주 여성 중심이고, 개중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낙태죄’(독일은 아직 임신중지가 불법이에요) 이슈에는 백인 여성의 참여가 두드러진다고 해요. 퀴어 이슈는 좀 더 진보적이어서 어떤 경우에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해고할 수 없대요. 아예 법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자연히 한국의 ‘차별금지법’에 대한 단상도 주고받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북토크가 열린 그날 8일차로 접어든 ‘혼자가 아닌 북클럽’(오른쪽 사진)에서도 계속됐어요. 다들 ‘현생’이 바빠 매일 책을 읽고 인증하기가 벅차셨을 텐데 틈틈이 유용한 정보와 묵직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덕분에 여성 전용 칵테일바 쨈지달(5월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있어 서둘러 방문해야 할 듯)과 여성 작가 중심의 복합문화공간 파도를 새롭게 알게 됐어요! 기회가 된다면 또 북클럽을 해볼까 해요. 이렇게 ‘일’ 같지 않은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느껴보고픈 분들,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습니다. 5월 26일 수요일 서울 혜화동에 있는 책방 풀무질에서 오프라인+온라인 북토크가 열려요. 신청은 여기를 눌러주세요. 다음 주에 풀무질에서 만나요! 마티의 취향 편집자 S, 통의동에 갔으면 서점 찍고 팥빙수집이지 비가 줄기차게 내린 지난 토요일, 서울 통의동 골목길에 있는 사진 전문 책방 이라선에 다녀왔습니다. 목적 없이, 불쑥, 책 냄새를 맡으러, 책방 소리를 들으러 갔어요. 가라앉은 듯 낮은 조도의 불빛 아래 예닐곱 명이 벌써 거대한 사진집에 파묻혀 한 귀퉁이씩을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좁은 공간을 비집고 제게도 익숙한 소피 칼과 마틴 파의 작품집을 뒤적이고 생전 처음 보는 작가들의 사진을 구경하고- 그러다 손에 들고 온 책은 이라선에서 제일 귀여운 책 <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였습니다. <스위스 방명록>과 <거실의 사자> 사이에 꽂아두고 매우 흐뭇해하는 중.
요 블록에 서점 네 곳, 이라선-보안책방-역사책방-더북소사이어티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요. 서점 덕후 분들께 추천. 고 언저리에 있는 통의동단팥에서 팥빙수를 꼭 드세요. 제 최애 팥빙수집이에요.
p.s.: 액막이 곡식, 팥을 좋아하는 편집자 S를 위해 이번 호 피드백에 여러분의 최애 팥빙수집을 공유해주세요! (아무 칸에나 써주시면 찰떡 같이 알아듣겠습니다!) 도서출판 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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