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담당 편집자와 함께 읽는 북클럽을 시작합니다. 매일 가볍게 인증하고 저자-독자-편집자가 소통하며 밀도 높은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입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에서 이 날 책을 사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것에서 유래했다니 낭만적이에요. 마티 사람들에게 "2021년 1월 1일부터 오늘까지 몇 권의 책을 샀는지" 물었습니다. 온라인서점 주문 탭을 뒤적거리더니 돌아온 답은 무려 평균 40권이었습니다. "그중 몇 권의 책을 읽었는지" 물었더니 침묵이 돌아왔습니다. 그럴 줄 알고(?)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오롯한 독서를 꿈꾸며, 저자&편집자와 함께 책을 완독하는 '혼자가 아닌 북클럽'을 준비했어요. 하단의 신청서와 함께 오늘 각주에서는 한창 번역 중에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마티의 출간 예정작 Minor Feelings,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편집 후기, 새로 입사한 에디터E의 입사 준비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20호까지 달려온 마티의 각주는 살포시 휴식의 시간을 갖고, 새로운 모습의 21호로 찾아뵙겠습니다. 5월 20일에 만나요.😊 무자비하게 정직하고, 감정에 충실하며, 완전히 낯선, 정체성 탐구 by 편집자 J 일주일 전쯤, 마티 사무실로 흐뭇한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한창 번역 작업 중인 Minor Feelings가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 WINNER, 자서전 부문)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부랴부랴 외신을 찾아보니, 유수의 언론사와 문인들의 찬사와 더불어 갑작스럽게 급상승한 아마존의 셀링 순위와 풍성해진 독자 리뷰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침 오늘, 저의 조급증을 염려한 번역작가님의 특단의 처방이 당도했습니다. 퇴고를 하지 않은 일부 초고를 띄엄띄엄 보내주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인종주의, 인종 차별, 인종 혐오 테러, 인종 정치 등등의 사안들은 국가와 민족과 산업을 배경으로 얽힌 정치의 영역이자 사회적 문제, 인구학적 고리들의 충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원고의 극히 일부를 초면하며, 무심코 스쳤던 그 멀고 멀었던 ‘인종 차별 문제’에 정신이 또렷해지고 아찔해지며 눈과 눈 사이에 뜨끈하고 동시에 차가운 어떤 것이 박혀 들어왔습니다. 왜일까요? Minor feelings 의 저자 캐시 박 홍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이민 2세대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와 한국어로 소통했지만, 사실 그가 사회적 관계의 도구로서 사용한 제1언어와 문자는 ‘영어’였지요. 그는 그곳에서 자랐고 교육받고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하고 자신의 직업을 택하고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고 또 사회의 영향을 받는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나, 쉽지 않다는 것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순간 의식하며 살게 됩니다. 그의 치열하고 고독한 ‘정체성 파고들기’ 탐험은 인종 차별을 직시하고 폭로하는 익숙하고 드러나 있는 경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는 세계의 질서와 관습이 아니라 ‘자기 혐오’를 들여다봅니다. 자기 ‘감정’과 ‘기분’을 파고들어, 평생 또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자기를 붙들어 얽매 온 감정의 뿌리와 그 뿌리의 자리를 찾아내, 그 자리를 애초에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를 따져묻습니다. 그 '정체성 길찾기'의 상세 경로는 매우 복잡하지만, 여행지나 일상에서 한번이라도 소수자의 위치에 서본 적이 있는 이라면 그 모든 ‘차별의 민낯’에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몇몇 구절을 아래에 붙여볼게요.
그렇다면, 원서 제목인 “마이너 필링스”는 어떤 느낌, 어떤 감정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 놀랍도록 지속력을 발휘하는 카타르시스가 전혀 없는 감정 상태" 언제나 한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튀어나올 것 같은 배제되었다는 느낌. 발췌문들에 다른 단어들을 대입해보게 되었어요. 페미니즘, 여성 혐오, 장애 차별, 아동과 노인 학대, 성소수자 차별, 극단적인 가난 혐오, 사회적재난 피해자 차별, 정상가족 강박까지… 이 가운데 어떤 단어를 집어넣어도 문장들이 그다지 흔들리지 않습니다. “착한 장애인으로 살아봤어요. 좋더라고요. 뭐가 좋냐면, 비장애인 입장에서 무해해요. 무해한 장애인을 원하지 나와 맞먹으려고 하는 장애인이 필요한 건 아니거든요, 사람들에게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명제는 페미니즘의 든든한 뿌리이지만, 실은 모든 소수자 감정의 뿌리일 것입니다. 끝으로, 영화감독이자 예술가 Trinh Minh-ha가 소수자의 목소리를 격려하고 확대하는 방법으로 제안한 “근처에서 말하기”(speaking nearby)에 적극적으로 연대를 표하며 이 책에 대한 첫 소개를 마칩니다. "당신이 대상자와 아주 가깝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대표하거나, 대신하거나, 그 위에 군림하여 발언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오직 근처에서, 즉 가까운 거리에서 말할 수 있을 뿐이며(그 타자가 물리적으로 현존하든 부재하든), 그러려면 의미 규정을 의도적으로 멈추어 의미가 간단히 봉쇄되는 일을 방지하고 그 형성 과정에 여백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타자가 그리로 들어와 그 자리를 원하는 방식으로 메울 수 있게 됩니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권위자의 위치를 점하려고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전지전능한 주장과 지식의 위계에 따라 생성되는 무수한 판단 기준으로부터 당신은 사실상 자유로워집니다." 타인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 by 편집자 S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신나는 베를린 페미니즘 여행기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1984년 자유대학에서 강의하며 베를린에 머물렀던 오드리 로드가 무척 사랑했던 공간 ‘쇼콜라덴공장’(Schokoladenfabrik)*으로, 로자 룩셈부르크가 잠들어 있는 프리드리히펠데 공동묘지로 떠나는 엄청난 여행 이벤트(!)를 기획해볼 수도 있었을 거예요.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말이죠. 코로나19가 망쳐버린 ‘일상’이 무엇인지 하나씩 떠올려보다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서문이 스쳤습니다. 아시아인이 지나가는 순간 입과 코를 가리거나 노골적으로 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너져내렸다’는 저자의 말을 저는 몸에 입은 것처럼 실감하진 못했습니다. 그저 ‘인종차별’에 대한 지극히 추상적인 생각만 굴렸을 뿐입니다. K-방역이 신화처럼 칭송되는 지금도 이주노동자들과 난민들은 회사 숙소에, 농장 비닐하우스에, 임시 거처에 ‘갇혀 있다’는 소식이 이 책 위에 겹쳐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제주에 예멘 난민 500여 명이 도착했다는 기사를 본 지 몇 년이 지나도록 후속 기사를 제대로 본 적 없단 사실을 깨달았고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속 난민 여성들의 현실 속에, 담당 편집자 J에게 공수해 엿본 <마이너 필링스>의 뒷골을 울리는 문장들 위에 저를 세워봤습니다. 언제나 고민의 후순위였던 인종문제가 당장 제 손에 닿는 원고가 되어 나타난 사실에 화들짝 놀란 저는 조급하게 이 책 저 책**에 손을 뻗으며 문장들을 삼켰습니다. 이 단어를 써도 될까? 이 뉘앙스는 어떻지? ‘너무 어렵다’거나 ‘모르겠다’라는 말을 한숨에 뒤섞으며 인종문제를 눙쳐온 시간이 사실은 얼마나 아늑했는지, 밑줄이 늘어날수록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오늘 조금은 무거운 편집 후기를 들려드리면서 생각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나의 안위’를 챙기기 위한 촉수가 아니라 ‘타인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인 거구나. 이 당연한 것이 한 발 늦게 정리가 되네요. * 베를린에서 오드리 로드가 거쳐 간 곳곳을 소개하는 사이트http://audrelordeberlin.com에는 schokofabrik으로 표기돼 있는데, 같은 곳이에요. ** 김은실 외, <경계 없는 페미니즘>(와온, 2019) 김기남 외, <난민, 난민화되는 삶>(갈무리, 2020) 미류 외,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창비, 2021) 정혜실, “우리 안의 인종주의”, <여/성이론> 통권 제39호(여이연, 2018) 트레시 맥밀런 코텀, <시크>(위고, 2021) ❝혼자가 아닌 북클럽❞ 멤버를 모집합니다 책 한 권 오롯이 완독해본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한가요? 마티의 신간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베를린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을 저자&담당 편집자와 함께 읽는 북클럽을 시작합니다. 책은 저희가 준비해서 보내드릴게요. 열심히 읽고 참여할 마음만 준비해주세요! 매일 가볍게 인증하고 저자-독자-편집자가 소통하며 밀도 높은 독서 시간을 보내게 될 거예요. 마티의 취향 출근을 앞두고 산 것들 by 편집자 E 4월부터 마티에서 일하고 있는 편집자 E입니다. 그동안 독자 입장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마티의 각주를 읽어 왔는데요. 지금 이렇게 한 코너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네요... 마티의 취향, 오늘은 가볍게 제가 출근하기 전에 마련한 것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려면 모름지기 장비부터 갖춰야 하지 않겠어요? 편집자에게 장비란 곧 문구죠. 연남동에 있는 연필가게 '흑심'에 다녀왔습니다. 볼펜은 사기 전에 테스트해볼 수 있는데 연필은 HB, B, 4B... 표시만 보고 사야 하잖아요. 이곳에선 다양한 강도와 진하기,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을 비교해가며 연필을 고를 수 있어요.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빈티지 연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요! 1. 스캇타(スカッタ) 칼 월요일 아침마다 연필을 깎습니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생긴 작은 습관이에요. 평소에는 사진 속 황동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는데, 가끔 칼로 나무를 한 겹 한 겹 깎아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흑심에서 연필 전용 칼을 샀습니다. 안전 가드가 있어서 손 다칠 위험이 없고요. 엄지로 꾸욱 눌러줘야 하는 칼날 위쪽도 무딘 편이라 커터칼보다 사용하기가 훨씬 편해요. (왼손잡이용, 오른손잡이용 두 종류 있어요!) 2. 톰보우(tombow) 연필 저에게 '톰보우'는 잠자리 이미지가 전부인데요. 이번에 테스트 해보고 냉큼 사왔습니다. 연필심이 부드럽게 죽죽 나가지는 않지만 경쾌하게 사각거리는 소리, 손에 쥐었을 때의 단단함이 무척 마음에 들더라고요. 일본에서 더는 사용하지 않는 JIS(일본공업규격) 마크가 붙어 있어요. 195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생산된 연필이라는 것! 3. 헥스더마스(hoechstmass) 줄자 늘 파우치에 줄자를 넣어 다닙니다. 서점에서 눈에 띄는 판형의 책을 보면 줄자로 크기를 재보거든요. 그런데 파우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새로 샀어요. 사실 내심 즐거워하며 줄자 검색을 시작했는데요. 검색하고 검색하고 검색한 끝에 예전에 쓰던 것과 똑같은 줄자를 샀습니다. 독일 헥스더마스 줄자예요. 작고 가벼워 들고 다니기 좋답니다. 쭈욱 잡아 당기면 자동으로 고정되고, 빨간 버튼을 누르면 부드럽게 휘리릭 빨려 들어가요. + 고양이도 좋아합니다. 도서출판 마티 |
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