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편집한 에디터S가 이 멋진 작가들과 만났던 벅찬 순간을 먼저 들려드릴게요. 펜을 망치처럼 휘둘렀던 시인 '파커', 우아한 에세이의 정수 '디디언', 활짝 펼쳐진 책 같은 소설가 '매카시', 거창한 이야기를 쉽고 아름답게 써낸 '손택'... 반드시 기억해야 할 작가 10인의 재능과 성취를 촘촘하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주 출간할 신간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이야기예요. 이름은 들어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싶으신가요? 어쩌면 우리 모두 그녀들과 진하게 스쳐지난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책을 편집한 에디터S가 이 멋진 작가들과 만났던 벅찬 순간을 먼저 들려드릴게요. 우리, 만난 적 있죠? 『날카롭게 살겠다』 작가들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by 에디터 S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웨스트 당신을 처음 만났어요. 울프가 전하길, 당신을 “터무니없는 여성해방론자!”라고 비난한 남자가 있었다죠. 그런가 하면 언어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F. L. 루카스*는 “리베카 웨스트에 필적할 만한 남성을 찾을 수 있을까?”라며 추어올렸다 하고요. 당신이 어떤 작가일까 늘 궁금했어요. 『죽은 숙녀들의 사회』에서 제사 크리스핀은 “웨스트의 책에는 여자들이 있다”며 당신이 쓴 Black Lamb and Grey Falcon 을 ‘수작’이라고 평가해요. 아쉽게도 한국어판이 없더라고요. 그렇게 덕질의 마음을 접었는데, 지난 4월 『바자』에 당신이 또 나타났어요! 『씨네21』 이다혜 기자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숨겨둔 책”이라며 Black Lamb and Grey Falcon 을 언급했거든요. 맙소사, 나만 당신을 이토록 몰랐나 싶어 심술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마침내 『날카롭게 살겠다』 편집을 하며 당신에 대해 속속 알게 됐죠. 강하고 생명력 넘치는 웨스트 당신을 알게 돼 기뻐요. 애들러 당신과는 정말 초면인 줄 알았는데, 우리 마주친 적 있더라고요!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원했는가』에서 데이비드 실즈가 당신의 열렬한 팬이라고 몇 번이고 인증했잖아요.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그는 당신의 소설 Speed Boat 가 “지난 40년 동안 미국 작가가 발표한 책 중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형식적으로 흥미로운 소설”이라고 찬양하길 주저하지 않았죠. Pitch Dark 도 어찌나 좋아하는지, 실즈는 당신의 광팬이에요. 이 두 소설이 한국어로 번역되길 기다리고 있어요. 남산도서관에서 만난 디디언, 당신에게 반한 순간이 생생해요. 제 독서 인생에서 『상실』은 ‘잊지 못할 작품’ 서랍에 보관돼 있어요.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비통함을 언어로 옮기며 당신은 어땠을까요. 오랜 세월 함께 작가로 활동하며 종횡무진 지면 위를 누빈 동지였잖아요. 그의 죽음을 알리는 연락을 돌리면서 『뉴욕 타임스』 부고 기자에겐 아직 말할 수 없다고, 부고를 띄우면 그의 죽음이 정말로 선고되는 거라고 초조해하며 망설이던 당신을 기억해요. 『상실』에 묻어나는 그 처연한 우아함은 언제부터 당신 것이었을까요? (참, 돌베개에서 당신이 한창때 쓴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하루라도 빨리 나오길.) 케일, 당신이 2001년 사망했을 때야 비로소 난 당신의 존재를 알았어요. 영화 잡지에 당신의 부고가 실렸죠. 영화평론엔 문외한이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을 ‘사운드 오브 머니’라며 대차게 비판했다던 일화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어요. 솔직히 「사운드 오브 뮤직」 노래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살아 돌아온 듯 펄펄 나는 당신의 모습을 『날카롭게 살겠다』에서 만나네요. 반가워요. 에프런, 당신은 역시 영화죠. 「줄리 앤 줄리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을 만든 당신이 재치 넘치는 작가라는 걸 진작 알아봤어야 하는데! 한국에 처음 소개된 당신 책은 표지의 벽이 높아서 선뜻 못 집었는데, 『날카롭게 살겠다』를 만지면서 결국 구해서 읽었죠. 느긋한 듯 예리한 유머는 당신을 따라갈 사람이 없네요. 레터가 이렇게 길어도 될까요? 하지만 파커와의 인연을 말하지 않고 끝낼 순 없어요. 파커 당신을 소개해준 사람이 최영미 시인이었죠? 『시를 읽는 오후』를 내고 한 인터뷰에서 최영미 시인이 “파커처럼 호텔에서 살다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제 마음속 저장 버튼이 눌렸더랬죠. 호텔살이의 선구자는 보부아르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앞서 파커 당신이 있단 걸 몰랐지 뭐예요. 당신의 시 「베테랑」을 외웠어요. 세계 여성 시인의 작품이 속속 출간되는 요즘, 당신의 시집도 나올까요?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원고를 맨 처음 봤을 땐 아렌트와 손택 말고는 다 어색했어요. 낯가림이 좀 있어서 엄청 쭈뼜댔는데… 하나둘씩 얘기를 나누면서 우리가 이미 만난 적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벅찼던지! 지금은 어서 독자들에게 당신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멋진 작가 옆에 멋진 작가, 그 옆에 멋진 독자가 앉아 있는 그림을 어서 보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 민음사에서 2020년 3월에 출간된 『자기만의 방』(이미애 옮김) 60쪽 각주엔 F. K. 루카스로 표기되었는데 단순 오기 같아요. 키보드에서 K와 L이 이웃이니까요. 그리고 해당 인용문의 출처가 「비극」인 것으로 적혀 있는데요, 정확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 관련된 비극』(Tragedy in relation to Aristotle’s Poetics)입니다. 물론, 「비극」으로 번역된 데에는 울프가 애초에 Tragedy로만 표기해서랍니다. 하지만 루카스는 Greek Tragedy and Comedy 도 썼기에 헷갈리실 수 있어서 각주를 달아봅니다😶 그런데 루카스의 이 원서들, 어디에서 찾아봤을까요? archive.org라는 사이트에서요! 이 사이트의 기원과 활용법이 궁금하시다면,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 책』에 정보가 있어요(흠흠). 철왕좌를 보았다 『날카롭게 살겠다』 표지는 꽤 난관이었습니다.(각주 지난호 '진짜진짜최종'의 주인공😂) 주요하게 등장하는 작가 수만 10명. 단체 사진이 있을 리 만무하고, 제목에 딱 맞는 회화를 찾는 건 설탕 봉지에서 사카린 알갱이를 찾는 격이었습니다.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책을 뒤지고 #womensart 트위터를 파고팠지만 촉이 오는 사진이나 그림은 없었어요. 디자이너 J도 백방으로 찾았지만 딱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고. 마우스 스크롤이 닳도록 굴리기를 며칠, 에디터 J가 씩씩한 목소리로 제안했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 사진 한 명씩 다시 찾아보자.” 작가들 초상 하나하나가 머릿속에서 팝업창으로 뜰 만큼 매일 봤던 저[S입니다]로선 회의적이었죠. 다시 찾는다 한들 별수 있을까? 이미지 사이트를 열어놓고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살피던 중, 에디터 J가 “이거!”라고 외쳤습니다. “이거???” 깜짝 놀라 눈도 커지고 콧구멍도 커지고… 자신을 벼리며 나아가는 이미지는 젊은 시절 모습이어야 한다고 단정했던 저는 한동안 콧구멍을 벌름거릴 수밖에 없었어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건, (좀 어이없게도) 의자 때문입니다. 순간 등나무 의자가 ‘철왕좌’로 보였어요. 사진을 찍은 2006년 당시 작가의 나이는 71세, 그런데도 형형한 그녀의 눈빛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예리한 지성과 글로 다듬어진 우아함도 느껴졌죠.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라고 선언하듯 독백하듯 제목을 앉힌다면 멋지겠단 예감이 스쳤습니다. 이 작가는 현재 85세 나이로 생존해 있고, 그만큼 사진 구입이 까다로웠어요. 사진의 사용 목적과 크기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고, 마티 출판 역사상 표지에 가장 비싼 값을 치렀습니다. 쓰다 보니 간증이 되어버렸네요. 책마다 반복되는 일상일 뿐인데 말이죠. 여차여차 이렇게 완성했습니다. 여러분, 소개합니다. 『날카롭게 살겠다, 내 글이 곧 내 이름이 될 때까지』 10장의 주인공 존 디디언입니다. *우아한 에세이의 정수를 선보이던 그 시절 디디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출간 전 연재'(클릭)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번역하고 있어요!! 12월이니 내년에 나올 책을 하나씩 소개할까 합니다. 2021년에 낼 수 있기를 바라며 꼽은 첫 책은 알렉스 로스의 『바그너주의: 예술과 정치에 드리운 음악의 그림자』(Wagnerism: Art and Politics in the Shadow of Music)입니다. 『뉴요커』의 음악평론가이자 『나머지는 소음이다』, 『리슨 투 디스』를 쓴 알렉스 로스는 음악을 중심에 두고 다른 예술과 사회를 종횡무진 오가는 글,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여러 옷을 입는 음악을 다루는 글로는 당대 지구인 중 최고입니다. 그런 알렉스 로스의 신작이 바그너에 관한 책이라는 소식을 트위터에서 들었을 때부터 에디터P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저 책이야말로 마티에서 해야 하는데!” 최종 탈고하기 전의 원고부터 받아서 서둘러 검토를 했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원고량이 꽤 많지만(『강철왕국 프로이센』보다 더 많은) 순조롭게 번역 진행 중입니다. 현재 본문 진행률은 116/660입니다. *사진: 바그너덕후 에디터P의 컬렉션. 마티의 취향 by 에디터J 다큐멘터리 Jørn Utzon: The Man & The Architect (2018) Directors: Lene Borch Hansen, Anna von Lowzow 세상이 기억하는 천재들이 있다. 시대를 초월해 사는 예술가들도 있다. 그는 세상이 잃어버린 천재다. 외른 웃손, 덴마크 태생의 이 건축가의 이름은 철자만 보면 읽기도 어렵다. <시드니오페라하우스>는 전 세계인이 아는 가장 유명한 현대 건축물일 테다. 웃손은 자신의 일을 통해 세상에 다른 빛을 남기고자 했으나 녹록치 않았다. 선명치 않은 자료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들로 엮은 이 다큐의 감상기를, 잘 몰랐던 천재 건축가의 일생과 작업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움'만으로 남기기에는 참말로 아쉽다. 그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더' 좋은 삶인지를 평화롭게 분별해낼 줄 알던 천재였다. 무엇보다, 평생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 같다. 일, 가족, 동료, 자연, 육체와 정신의 확장을. 그가 좀더 많은 건축을 남겼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보다는, 저런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더 있을까, 라는 한숨이 더 크게 남는다. 세상이 놓친 남자다. 도서출판 마티 |
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