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는 어쩌다 '집 짓기' 책을 만들기 시작해 12권씩이나 이어가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 마티의 2021년 첫 신간은
<좋은 집 시리즈> 12권입니다. 이번엔 수납공간을 설계하고 가구까지 직접 만드는 소위 '업자'들과 취미를 넘어 프로의 세계를 넘나드는 목공 동호인들을 위한 책이에요. 제목은 <전문가와 목공 동호인을 위한 수납 디자인>. 그야말로 "전문가가 전문가에게 알려주는 수납 디자인 비법"에 관한, 난도가 좀 있는 책이죠. 오늘은 마티는 어쩌다(?) '집 짓기' 책을 만들기 시작해 12권씩이나 이어가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합니다. 마티는 인문 출판사인가요? 건축 출판사인가요? by 에디터 J 사장님이 건축 전공이세요? 마티 출판사를 기억하는 분들을 만나면 뚜렷하게 두 갈래로 이야기가 나뉘는데, 한 방향은 “아하! 마티! 인문서, 클래식 음악 책 많이 봤어요.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거실의 사자>도 알아요”로 시작해 물꼬가 터지는 분들과, “마티? 친척분이 집 짓는다고 <집짓기 바이블> 보시던데… <최고의 평면> 이런 책도 있고. 꽤 어려워 보이던데 어쩌다가 그런 책들을 시작하셨어요? 사장님이 건축 전공자세요?”라고 묻는 분들로 나뉘어요. 사실 좋은 집 시리즈 첫 책도 작정하고 시작한 건 아녔답니다. 처음엔 경복궁이었는데, 결국 집 이야기로 마티의 좋은 집 시리즈 1호는 <두 남자의 집짓기>입니다. 2009년 늦가을께에 저자인 구본준 기자(2014년 타계)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2011년 3월에 나온 책이에요. 구 기자님과 처음 기획한 책의 주제는 '집짓기'가 아니었어요.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구 기자님과 경복궁, 덕수궁처럼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옛 건축물들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보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우연찮게 구 기자님이 이사를 계획하신다며, 친구와 땅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어 아주 작은 집을 지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 이야기 제가 책으로 만들어볼게요” 했더니, 구 기자님이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립니다. “아이고, 건축책이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요? 마티에선 안 돼요. 그러고 그건 책으로 만들 이야기도 못될 테고. 멋있는 건축은 안 될 거예요. 워낙 예산이 작아서.” 그때가 12년 전이었는데, 가만 생각하니 진짜 놀랍게도 지금 상황과 똑같습니다. 전 세계 감염병은 없었지만, 지금처럼 아파트값이 치솟고 신도시 주택공급 물량이 매일 뉴스에 나오던 때였어요. 평범한 직장인 월급으로 서울에 100제곱미터(30여 평)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월급 전체를 꼬박 16년 모아야 한다는 셈하기가 심심찮게 인터넷에 돌아다녔더랬지요. 그래서였는지 <두 남자의 집짓기>는 화제를 몰고 다녔고, 마티를 '건축 실용 출판사'로 알게 되는 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모여서 이야기하고 녹취하기만을 1년 반 <집짓기 바이블> <두 남자의 집짓기>가 한 기자의 개인적 경험에서 시작해 집을 향한 욕망과 거품, 한 사람이 하나의 집이 아니라 여러 채를 소유한다는 것, 그것이 ‘투자’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지점들을 차분하고 진솔한 고민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집짓기 바이블>은 이름하여 “전 과목 전과” 같은 학습지로 기획했어요. <두 남자의 집짓기>를 내고 제가 감당하기게 벅찬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거든요. 거의 매일 날아오는 메일과 전화를 동료들도 버거워했어요. 건축가는 뭐하는 사람인가? 마티는 땅 장사인가? 시공사를 소개해줄 수 있는가?
그래서 알게 됐어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저를 포함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를 <두 남자의 집짓기>가 했다는 걸요. 누군가 다 지어놓은 아파트를, 빌라를, 맨숀을 사보긴 했지만, 우린 한 번도 집을 지어본 적이 없었던 거죠. <집짓기 바이블>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만나면 껄끄럽기 십상인 삼자를 테이블에 앉혔어요. 건축가, 시공사, 건축주. 집을 짓거나 고칠 때 꼭 만나는 3인방이지만 결코 만나서 좋은 이야기만 주거니받거니하기는 쉽지 않은 3인방이죠. 집짓기의 모든 것을 담아보겠노라 가열차게 시작했지만, 첫 두 번의 만남은 신통치 않았어요. 녹취 분량으로 치면 30분이 채 되지 않았거든요. 만남을 1년 반을 이어갔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고 많은 숙제가 펼쳐졌어요. 집 이야기는 결코 ‘집’ 얘기만이 될 수가 없었어요. 그것은 일상이고 자신의 미래뿐만 아니라 가족구성원, 이웃, 이 사회에 제시하려는 삶의 기준이고 태도라는 것이 이야기 중에 드러났습니다. 책에는 평면도 들어가고 설계도도 들어가고, 건축법과 세법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갔어요. 2017년 3판을 낼 땐 '집짓기 노트'를 부록으로 만들었어요. 이 책을 읽고 집을 지어본 많은 분들의 애로사항과 건의를 수렴해서 만들었는데, 다행히 새로운 독자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반응을 건너건너 듣고 있답니다. 좋은 집이 계속 지어져야 하기에, 좋은 집 시리즈도 계속해보려 합니다 집 짓는 이야기를 하도 하다 보니까, 공간을 쪼개서도 보고 자재 하나도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부엌 중심>과 <공간을 쉽게 바꾸는 조명>이 탄생한 이유죠. <부엌 중심>을 만들 즈음 에디터 S의 부모님이 집을 짓고 계셔서, <부엌 중심>의 뒤 카피는 거의 S댁 부모님 입에서 나왔다고 봐도 될 거예요. 현장감 제대로죠? 요즘 tv 프로그램 <구해줘, 홈즈>를 보면 '층고' 얘기 정말 많이 나오죠? 마티에선 벌써 개방감과 공간감을 결정짓는 건 역시 높이다 싶어서 <평생 써먹는 높이!> 책을 2016년에 냈었답니다. 저는 실용서를 만드는 게 참 어렵다고 생각해요. 쓸모에 최선을 다하는 실용서 또한 인간이 하는 일을 다루고, 그 안에 인문도 사회과학도 예술도 다 들어가 있으니까요. 좋은 책은 세상이 좋은 쪽으로 변하는 데 속도를 보탠다고 믿는 만큼, 좋은 실용서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좋은 집 짓기 시리즈를 멈출 수가 없나 봅니다. ❄️☃️ 곧 만나요~ 한창 작업 중인 원고들 ⛄️❄️ 2021년 출간 예정 리스트 중에서, 곧 나올, 늦어도 상반기에는 서점에서 만날 수 있을 책 몇 권을 추려봤습니다. 🖋 박철수의 『대한민국 주택 유전자』: 20세기 한국 사람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고, 어떤 경로를 거쳐 대단지 아파트라는 욕망의 총체를 만들어냈는지를 추적합니다. 그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수많은 도면과 사진 자료를 모조리 집어넣은 이 책은 두꺼운 아카이브북 역할도 합니다. 1200쪽 이상, 분권 예정
🖋 조현정의 『전후 일본 건축』(가제): 가장 권위있는 건축상인 프리츠커상 최다 배출국가, 해방후 한국 건축의 꾸준한 참조 대상 일본, 그런데 그동안 일본 건축에 대한 책은 드물었습니다. 단게 겐조에서 구마 겐고, 오사카엑스포70에서 작은 집까지. 드디어 출간된 한국 저자의 일본 현대 건축론입니다. (위 사진은 단게 겐조의 오사카 만국박람회 대지붕과 오카모토 다로의 "태양의 탑"입니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의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죠. 관련한 이야기가 『전후 일본 건축』에 듬뿍 담겨 있습니다. )
🖋 에밀리 앤시스의 The Great Indoors: 팬데믹으로 집에만 갇혀 지내다 보니, ‘인간은 실내 동물로 진화했다(또는 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건물의 형태와 공간 구성이 행동, 건강,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역으로 어떻게 해야 실내에서 더 잘 머무를 수 있는지 캐묻습니다. 🖋 채혜원의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베를린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1인 가구이며, 대부분이 이민자이고, LGBTQ가 상상할 수 있는 만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도시. 베를린에서 5년 여 동안 살며 활동한 페미니스트 채혜원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사건들, 그(것)들의 의미에서 어떤 따뜻함을 알아차립니다. 베를린에서 단디 싸 온 온기가 문장 사이사이에 푼푼히 퍼지는 에세이예요. 마티의 취향 by 에디터 S 나이브스 아웃(Knives out, 2019) 라이언 존슨 감독 다니엘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아나 디 아르마스 출연 아작아작, 과자 좀 씹으면서 대사 몇 마디 못 들어도 괜찮은 가벼운 영화에요. 소파에서 뒹굴거리며 넷플릭스에서 방황하다가 왓챠로 넘어갔더니 #넷없왓있, 넷플릭스엔 없고 왓챠엔 있다면서 자랑하길래 호기심에 눌렀죠. 최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잔인한 예고 영상들에 질려 있었는데, 이 영화는, 뭐랄까요, 명랑한 스릴러(?)라 좋았어요. 탐욕스럽고 돈 많은 무능력자들을 한꺼번에 보는 피로를 아주 조금 느낀 것만 뺀다면요. <나이브스 아웃>처럼 밀실의 완전 범죄를 꾸민 범인을 찾는 장르를 ‘후더닛’이라고 부르더라고요. Who done it?의 줄임말이라고 합니다. 범죄 방법에 초점을 둔 내용이라면 ‘하우더닛’이라고 한대요. 언어라는 게 참 신기하죠. ‘추리 영화’라는 말로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걸까요? 도서출판 마티 |
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