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에게 극한의 희열을 선물한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마티가 만나고 사랑한 디자이너 <궁합도 안 보는 천생연분 책과 디자이너>(각주 7호) 첫 번째에 이어 오늘 두 번째 이야기를 싣습니다. 2020년이 쏜살처럼 날아가버려 애석하기만 했는데, 웬걸요, 21년 1월이 증발되었네요. 하지만, 우리에겐 ‘구정’이 있다는 걸 되새기며 새로운 시작을 다짐해봅니다. 각주와 동행하는 독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속도와 디자이너 마티가 사랑한 디자이너, 두 번째 이야기 by 에디터 J 부릉부릉, 뚝딱뚝딱 신덕호 디자이너 코로나19 사태로 더 익숙해진 전동 바이크 엔진 소리를 듣거나 번쩍거리는 자태를 거들먹거리며 비스듬히 쉬고 있는 멋진 바이크를 보면 떠오르는 디자이너가 한 명 있습니다. (딱 보기에도 운동신경이 매우 좋아 보이는) 이 디자이너는 칠전팔기의 도전으로 오토바이 면허증을 획득했는데, 그즈음 만날 때마다 “성공했어요?” “아니요!”를 서너 차례 이상 반복했으니 오토바이 면허증이 비행기 조종자격증만큼 따기 어렵다는 걸 그때 알았더랬습니다. 멋진 BMW를 타고 삼각지 부근에서 홍대까지 신나게 질주해 오던 그 디자이너는 바로 신덕호 씨입니다. 자전거도 잘 타고 오토바이도 잘 타는 밝고 씩씩한 덕호 씨는 일하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뚝딱뚝딱. 이야기에 신중하게 귀 기울이고 질문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뚝딱뚝딱. 어? 그런데! 묘하게,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시안을 꺼내 놓습니다.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를 읽어본 독자는 혹시 알아챘을까요? 거기, “걸어다니는 사람”이 진짜로 책 속에서 “걷고 있다”는 사실을요! 디자이너의 강력한 의지로 생각지 않은 일러스트 작업을 진행했고, 저는 솔직히 그 결과에 매우 만족합니다. 또 독자가 눈치채기 어려운 이 책의 비밀은 표지의 컬러입니다. 아시겠지만, 지정한 팬톤 컬러칩 별색을, 선택한 인쇄용지에 정확하게 재현해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와 덕호 씨와 함께 인쇄소에 도착해서, 무려 두 시간 동안 표지 색 감리를 봤어요. 스냅백을 쓰고 긴 체인 목걸이를 한 누가 봐도 힙합퍼인 일러스트레이터는 외떨어진 인쇄소에서 한참을 걸어 나가 커피 네 잔을 캐리어에 담아 와 기장님들에게 돌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십수 년째 인쇄 감리를 다녔지만 그토록 오래 기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디자이너는 처음 봤어요. 기장님,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세 분이 30분마다 한 번씩 회의를 하는데, 시간이 멈춘 듯했어요. 저는 그저 옆에서 종이를 추가 주문했을 뿐이지요. 신덕호 디자이너와는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도 작업했어요. 표지를 고주파 비닐로 씌우고 싶다고 해서 기꺼이 시도했었습니다. 고주파는 거의 찢어지지 않지만, 파본이 생겨도 벗기고 다시 씌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나중에 배웠습니다... (사실 신덕호 디자이너는 폭발한 체르노빌 원자로를 감싼 석관을 박스로 구현해서 책을 싸고 싶어 했는데, 그것까지는...) 건축가이자 북디자이너 ab스튜디오 이원재 대표 디자이너와 속도를 얘기할 때 대한민국에서 탑 오브 탑으로 꼽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또 한 분 제 옆에(현재 마티의 옆옆 건물에 작업실이) 있습니다. ab스튜디오 이원재 대표는 ‘효율의 천재’입니다. 움직임을 줄이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강구하죠. 단축키, 일괄 변형과 작업의 패턴화, “어느 쪽이 더 효율적일 것인가? 그 선택은 다른 선택지보다 획기적인 성취를 이루는가?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고민인가? 그 고민은 성찰인가 낭비인가?” 단호하게 묻고 빠르게 결정합니다. 작업을 의뢰하면 “납품 기한”을 먼저 챙기는 그의 스타일을 보노라면, 혼자 일하는 직업일수록 단계별 효율이 피로와 스트레스를 최대한 억제해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원재 대표와 마티는 주로 좋은집 시리즈를 작업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건축가’이기 때문입니다. 건축사 면허까지 갖고 있는 그는 꽤 명망 있는 한옥 전문 설계사무소에서 오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평면과 도면, 효율적인 레이아웃에 익숙하고 빠릅니다. 게다가 유쾌한 성품을 지녔습니다. 아래 사진은 좋은집 시리즈 평면 정복의 본문. 정말 '노가다'인 이 작업을 성실함을 보탠 효율적인 노동으로 후루룩 해결해주었답니다! 데이터를 디자인한다면, 역시 김형재 디자이너 효율과 속도를 이야기하니 마티의 책들 가운데 “와우, 이 디자인은 얼마나 걸렸을까?” 의문이 드는 작업들을 소개해야겠습니다. 『확률 가족』과 『아키토피아 실험』, 『확장 도시 인천』이 바로 그 작업입니다. 김형재 디자이너는 마티와 ‘데이터’로 만나는 사이입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마티 작업을 할 때마다 디자이너의 ‘밤을 샜어요’라는 전화를 꽤 여러 차례 받았어요. 하필 또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데이터들이 주요 등장인물인 이 책들의 마감기한은 왜 그리 촘촘했는지, 대체로 어느 재단 지원, 어떤 행사 예정 등으로 마감이 잡혀 있어 고단한 디자이너의 작업을 기다리며 마티 식구들이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안을 들춰보면, 정말 작업 내내 얼마나 손끝이 떨렸을까, 모든 과정이 디지털화되었음에도 데이터와 통계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은 얼마나 마딜까, 가늠해보게 됩니다. 『확률 가족』은 ‘아파트키드의 생애’라는 기획으로 시작해,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 세대가 경험한 아파트 주거문화를 중심으로 가족과 교육, 소비 등 일상의 개인사를 통해 중산층의 생성과 위기, 몰락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사회과학서입니다. (동명의 전시가 먼저 열렸었어요. 전시 디자인과 표지의 연관성 보이시죠? 위 전시 사진의 출처는 www.ize.co.kr) 『82년생 김지영』 등 최근의 문학 작품에서 “확률 가족”의 에피소드가 변주되고 있으니, 출간된 지 제법 지났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데이터’들임에는 분명합니다. 디자이너와 속도를 얘기하니 영화 「인터스텔라」가 떠오릅니다. 5차원의 세계에 다녀온 듯 생각지도 못한 해답을 던져주는 디자이너를 만나면 편집자는 극한의 희열을 느낍니다. 21년에도 만나길 고대합니다. “유레카!” 랜선집들이를 꿈꾸는 마케터J가 메모해둔 여섯 가지 안녕하세요, 전세살이를 핑계로 꿈의 인테리어를 미루고 있는 마케터J입니다. 연말쯤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전문가와 목공동호인을 위한 수납디자인>을 읽다가 당장 사는 집 수납 설계에도 적용하고 싶어 조바심이 났어요.(눈물) 이 책은 실제로 인테리어, 리모델링, 신축, 개축 계획이 있는 분과 전문가에게 수납 디자인의 핵심을 가르쳐주는 책입니다. 말끔한 집에서 랜선집들이를 목표로, 지금부터 꼼꼼히 수집해뒀다가 놓치지 않고 실행하려 합니다. ❶ 벽걸이 TV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AV 기기 등의 수납장과 배선을 벽면에 매립해 평평하게 보이도록 만들면 좋다. 그러나 단순히 벽을 돌출시켜 수납장을 매립하면 공간에 낭비가 생긴다. 그럴 경우에는 TV가 걸려 있는 벽을 다른 방의 칸막이벽으로 삼아 양쪽에 수납공간을 설치하면 된다. 수납공간을 양쪽 방에서 함께 쓸 수 있고, 매립 수납장과 배선을 효율적으로 감출 수 있다. (56-57쪽) ↪ 깔끔함과 수납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 과연 수납 설계의 명인들이에요. 위시리스트 1순위! ❷ 최적의 TV 시청 거리는 디스플레이의 세로 길이x3이다. (52쪽) ↪ 적당한 거리 궁금했어요! 가구 배치 다시 하며 TV와 쇼파 거리가 좀 가깝다 싶었는데 어쩐지... •́︿•̀。 ❸ 세면실의 물건은 개인 바구니(가족 각자의 개인용 바구니)에 정리할 것. 사용할 때는 바구니 통째로 세면대 위에 꺼내놓고 다 쓰면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93쪽) ↪ 물건 뒤엉켜 있는 우리집 수납장 눈 감아... ❹ 부엌에 수납하는 물건은 크기와 모양이 각양각색이다. 서랍도 각 단의 깊이(높이)를 조금씩 다르게 만들면 수납물을 분류/정리하기 쉬워진다. (76쪽) ↪ 지금 집은 선반 높이가 다 같아요. = 이 칸에 안 들어가는 건 옆 칸에도 안 들어가요. ❺ 매일 오는 전단지 등의 불청객도 실내로 들이지 않고 현관에서 처리한다. 수납장 안에 그것들을 버리는 휴지통과 함께 파쇄기, 개봉용 가위를 함께 두면 놀라울 정도로 생활이 쾌적해진다. (43쪽) ↪ 전단지, 우편물, 택배박스를 집안으로 가져오지 않고 현관에서 해결하는 것, 당장 해봤는데 진리입니다. ❻ TV 장식장을 칸막이벽처럼 설치하고 뒤쪽을 책상으로 만들어 작은 스터디 코너를 확보하면 LDK와의 사이에 적당한 거리감이 생긴다. (59쪽) ↪ 이것저것 배우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매일 집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적당히 단절된 스터디룸 가질 수 있겠어요.♥ 마티의 취향 by 에디터 S 영화 <1917>(2019) &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2009) 실눈을 뜨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적군이 어디에 도사리고 있을지, 언제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허허벌판을 맨몸으로 뛰어가는 젊은 영국 군인의 헐떡임에 덩달아 겁이 났거든요. 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을 무대로 하는 <1917>은 피와 살점이 튀어 오르는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보다 더 보는 이를 숨죽이게 합니다. 1차 세계대전 하면 참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죠. 영화 초반에 꽤 세심하게 세팅된 영국군 참호가 등장합니다. 물기가 흥건한 흙바닥, 토굴 안에 몸을 욱여넣은 병사들, 양방향 통행이 불가능한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 아무리 옷을 여며도 스미는 축축한 습기가 보는 사람에게까지 전달됩니다. 영국 병사 둘이 임무를 안고 떠나며 거쳐야만 했던 독일군 참호는 좀 다릅니다. 철제 이층 침대가 나란히 자리해 있고, 탄광에 낸 길처럼 각목을 댄 지하통로가 반듯하죠. ‘뭐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참 독일스럽다’ 싶더라고요. 마티에서 2009년 개정판을 낸 『참호에 갇힌 제1차 세계대전』은 영화 <1917>과 짝꿍입니다. 참호(전)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와 일화를 소개하거든요. 개정판 2쇄를 작업하면서 처음 이 책과 대면했을 때, ‘불편한 흥미’를 느끼며 기세 좋게 교정교열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병사들에 대한 연민을 잠깐 잊을 만큼 속도감이 있거든요. 사진도 워낙 많아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책에서 한 프랑스인 장교가 ‘전쟁의 권태’를 말하던 대목이 잊히지 않습니다. <1917>에서 참호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책을 읽고 술을 마시던 병사들은 표정이 없어요. 그것이 권태의 표정이었을까, 생각해봅니다. 도서출판 마티 |
편집진이 띄우는 책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