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埋葬) 아니고, 매장(賣場)입니다.
🔈 모베가 오사카에 다녀왔습니다. 여행 이야기 좀 해보라고 했더니 음반 매장 이야기만 하는 겁니다. 가만 듣다 보니 정보가 꽤 알차서 각주*에 쓰자고 했습니다. 잘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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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음반 디깅
🔈 모베
지난 주 출장과 휴가를 겸해 오사카에 다녀왔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여러 일정 와중에도, 저의 관심 대부분은 중고 음반가게에 쏠려 있었습니다. 굳이 음반을 오프라인에서 그것도 일본까지 가서 살 필요가 있느냐 의아하실 겁니다. 전 세계 음반 셀러들이 다 모인 디스콕스(discogs.com) 덕에 지구에 발매된 모든 음반을 다 구할 수 있는 시절이니까요. 사실상 전 세계를 뒤질 필요가 사라진 셈입니다. 그런데 디스콕스에서는 디깅의 쾌락이 없습니다. 이 가게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기대와 전혀 알지 못했던 음반을 우연히 만나는 즐거움도 없습니다. 처음 보는 음반을 집어 들게 만드는 힘은 오프라인 매장이 월등합니다. 이렇게 집어든 음반이 물론, 똥반일 수도 있지만요.
사소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디깅을 해본 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 분명한 중요한 지점은 매장의 정돈 상태입니다. 일본 중고 음반매장은 대단히 쾌적합니다. 쌓인 음반의 양으로는 회현동이나 용산 전자상가 중고 엘피 가게가 월등히 앞설 겁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작곡가나 아티스트 별로 정리가 안 된 상태인데다 기본적인 청소조차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장 뒤적이면 손가락이 새까매집니다. (그래서 저는 니트릴 장갑을 챙겨 갑니다.) 판 상태가 체크되어 있는 경우도 드물고, 가격표가 붙은 물건보다 표기되지 않은 경우가 더 흔합니다. “이건 얼마예요?” 매번 물어봐야 할 뿐 아니라, 같은 앨범이라도 언제, 어디서 발매되었는지에 따라 제각각인 정보를 꿰고 있어야 하죠. 반면 일본 중고 음반점의 엘피들은 모두 때 빼고 광낸 후 새 비닐에 깔끔하게 밀봉되어 방문자를 기다립니다. 오른쪽 귀퉁이를 살짝 건드려 조금만 뒤로 기울어지면 말끔한 표지와 함께 판의 상태, 가격까지 표기된 모든 정보가 환히 보입니다.
결정적으로, 가격이 (대체로는) 합리적입니다. 세계 2위의 음반시장에서 유통된, 특히 일본에서 라이선스로 찍어내 판매된 음반의 량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 하락한 엔화 시세가 더해져 음반질하기엔 (세상 거의 모든 것이 취약해지고 비싸진 데에 반해) 최고의 시기입니다. 일본에서 70-80년대 라이선스로 발매된 블루노트 음반이 국내에서 9-10만 원 선에 거래되곤 하는데, 일본에서는 절반 정도의 가격입니다. (블루노트는 최근 가격이 너무 올랐습니다.) 클래식이라면, 1만원 밑으로도 살 만한 음반들이 넘쳐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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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온갖 이유로 소비를 합리화한 뒤, 오사카에서 8곳, 교토에서 1곳을 뒤졌습니다. 음반점의 규모, 구색 등은 도쿄가 압도적이지만, 도시가 비교적 작고 난바와 우메다에 매장이 몰려 있는 오사카는 짧고 경쾌하게 다니기에 좋습니다. 일본에서 중고 음반을 산다면, 처음 들러야 할 곳은 단연 디스크유니온(disc union)과 타워레코드 중고매장, HMV입니다. 문을 여는 12시에 맞춰 디스크유니온을 가면 동네 고수들과 오픈런을 하며 묘한 경쟁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신규 입고 음반 코너로 달려가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훑더니 총총 사라지는 백인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오사카 여행 일정 중에 교토에 들를 계획이 있고 재즈를 좋아한다면, 교토의 ‘하드밥’(hardbop) 방문을 강력 추천합니다. 가게 이름처럼 재즈 음반만 취급하는 중고 매장입니다. 가격은 조금 높은 편이지만 재즈 명반들이 창문 하나 가게에 빼곡 쌓여 있습니다. 고르고골라 4장만 구입하고 늘어지는 영혼을 붙잡아 가까스로 빠져나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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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디깅의 가장 큰 수확물은 음반이 아니라 가방입니다. 매번 엘피 전용 가방을 살까 고민을 하다가 그 돈으로 음반을 더 사자며 외면했었는데요, 이번에 드디어 55장까지 들어간다는 가방을 샀습니다. 왜 이제야 샀을까요. 음반을 10장 이상 가지고 오신다면 꼭 구입하시길 추천합니다. 피곤해지기 마련인 돌아오는 길이 훨씬 편안해집니다. 저는 23장만 담아서 가뿐하게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다음 목표는 빈티지 오디오 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클래식 음반 전문점이 있는 삿포로입니다. 저 가방 가득 채워 오는 날이 곧 와야 할 텐데요, 엔저가 끝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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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음악책 디깅
1️⃣ 『다른 방식으로 듣기』
“저는 스포티파이의 ‘디스커버’ 기능을 이용하는데, 제 음악 취향에 대한 예측이 너무 정확해서 무서울 정도입니다. … 놀랍지 않은 음악이죠. … 온라인에서 기업들의 영향력을, 그리고 우리 각자가 보는 정보의 부분집합을 생성하는 그 기업들의 알고리즘을 벗어나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터넷의 자유와 혼돈을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의 지배력과 예측력으로 바꾸어놓는 중입니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는 그와 같은 시스템을 전복하기가 쉽습니다.” (103-105쪽 갈무리)
2️⃣ 『신악서총람』
“LP 시절에는 좋아하는 앨범을 들을 때마다 앨범 재킷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고, 앨범 재킷의 이미지는 음악의 일부였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골라 듣거나 음원을 살 때는 이미지가 따라오지 않는다. … 그보다 문제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골라 듣게 되면서 앨범이 원래 하나의 개념을 가진 창작물이었다는 사실이 분해되고 마는 사태다.” (32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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홰홰
1. 가볍게 자꾸 휘두르거나 휘젓는 모양.
2. 가볍게 자꾸 감거나 감기는 모양.
“나는 유중혁의 [진천패도]를 허공에 홰홰 그으며 말했다.”
― 싱숑, 『전지적 독자 시점』, 네이버 웹소설 (회차는 잊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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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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